예전과 다르게 성직자로써 존경받던 목사님들은 사회로부터 먹사로 통하고 봉사 그리고 사회기여를 많이 한 기독교는 개독교로 욕을 먹는 이 현실에서 기독교인으로써 돈에 미친 교회들에 대해서 비판을 하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돈이라는 도구를 그 이상을 볼 때 모두 것을 물질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하라고 한다.
돈이 많아야 교회도 크게 건설 할 수 있고 교회 교인들도 많이 올 수 있을 것이고 교인들의 헌금으로 그 돈을 채울 수 있을 것이고 교회와 목사의 명성도 올라 갈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인각적인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이런 욕심이 교회를 타락의 길로 가게 한다.
어떤 교회는 주일마다 나오는 주보에서 지난주 십일조, 감사, 선교헌금을 낸 사람들 목록의 ㄱㄴㄷ순서가 갑자기 바뀐 것이다. 알고 보니 돈을 많이 낸 사람의 순서대로 바뀌게 되었는데 교인들이 경쟁해서 더 많은 돈을 헌금하게 하기 위한 배경이 깔려져 있었다. 그리고 가정형편상 마지막에 자기 이름이 있게 된 성도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 걱정이 된 일었다. 다른 교회에서는 특별헌금 또는 돈을 많이 헌금한 성도들을 목사가 예배시간에 자리에 일어나게 해서 다른 성도로부터 박수까지 받게 한다. 헌금의 액수로 성도들을 차별하는 것은 기독교적이지 못한 행동이다.
성경 마가복음 12장에서는
“(41절) 예수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절)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라고 하였다. 과부라서 약자이고 가난 속에서도 적은 돈이지만 자기의 생활비의 전부를 헌금을 한 정성과 마음을 본 것이다. 또 창세기에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았으나 아벨의 제물을 받은 것처럼 돈의 액수가 아닌 하나님과 예수님에 따른 정성과 기쁜 마음이 먼저라는 것을 보여준 예이다.
교회에서 정치인이나 직위가 높은 사람이거나 금전적으로 부자인 사람들을 전도하면 대어를 낚은 것처럼 좋아하고 물질적으로 성도들 차별을 하는 행동은 벗어나야 한다. 실제로 돈이 많은 의사가 교회에 오게 되었는데 교회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한 달도 안 되어서 교회에서는 집사로 인정해주고 교회에서 십년동안 열심히 일한 집사도 하기 힘든 큰 직분까지 주면서 교회에 돈 좀 쓰라는 식의 교회의 행동을 보고 교회 성도들까지 시험을 받을까 걱정되었는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일들이 교회가 물질적인 차별을 부치기고 있다는 것이다.
돈과 교회의 문제는 기독교의 초대교회부터 시작 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성경 야고보서 2장의
“(1절)...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들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올 때에 (3절)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4절)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절)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6절)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8절)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 하는 것이거니와...”
라는 구절만 읽어도 초대교회 시절 야고보는 교회의 세상적인 기준으로 성도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82년 ‘낮은데로 임하소서’ 기독교 영화에서 임요한 목사의 부인의 오빠로 교회집사 설정인물에서 자리 좋은 땅을 사서 거기다가 교회를 만들고 말빨 좋은 목사만 납두면 돈이 굴려 들어온다는 대사에서도 알다시피 이 영화에서도 단편적 만이라도 물질적인 교회의 타락을 비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돈 많은 교회 장로의 돈으로 건설된 교회는 그 장로의 힘은 막강했다. 그 교회 목사도 그 장로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 교회는 구약에 대해서만 설교하고 신약에 대해서는 설교를 하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 장로의 본처 말고 다른 처가 있다 보니 목사는 구약만 설교하고 신약은 설교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교회 안에서 벌어졌다.
어떤 목사는 교회 돈이 자기 돈인 것처럼 함부로 편성하고 해외에서도 교회 돈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 사용내역도 공개하지 않자 성도로부터 항의로 받고 교회를 떠나는 목사가 있었고 어떤 목사는 노골적으로 교인들에게 무리하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겨우도 있다.
이 외에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고 성도들 중에서도 신분노출이 적은 온라인상으로 문제를 상담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교회의 일부 문제 일 것이다. 하지만 몇 목사들이 제대로 기독교적인 반향을 잡지 못하면서 이런 일부 교회의 타락이 성도들에게 아픔을 주고 반기독교를 스스로 키우게 된 원인 일 것이다.
천정웅 목사님의 저사에서 말한 것이 생각이 난다. 무지, 욕심, 그리고 잘못으로 얻게 되는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하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안에서의 봉사로 인한 고난이야말로 성도에게 유익을 주고 신앙을 성장케 한다. 허나 목회자들도 이런 한 고난에 동창 해야 한다. 영광은 자신이 모두 차지하게 되고 최소한의 고난을 부교역자에게 맡겨 버리게 되면 목회자가 탈선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 것이다. 매사 삼가 조심하여 주님을 위한 고난이라면 목회자가 먼저 자기를 희생하고 본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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