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 사람의 의

하나님의 의 사람의 의

사하라84 2020. 4. 23. 21:23

진리와 생명과 자유,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누린 이야기

 

 

하나님의 , 사람의

 

공 영 재 지음

 

 

 

 

 

 

차 례

 

1부 꿈을 향하여

*꿈이 무너지다 *나의 꿈 *꿈을 이루리라 *다람쥐 쳇바퀴 인생

*꼬리, 꼬리~ *약자들의 설움 *첫 사랑 *행복한 날을 위하여

*건강한 몸에서 장애인으로 *분노와 슬픔 *아내와의 만남

*은인의 죽음 *우리 엄마가 왔어 *신학생이 되다

 

2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장애인 선교단 창립 *나도 시집 갈래요

*내 동생 좀 살려줘요 *거짓말을 안 합니다 *지역사회에서의 밀알

*병원교회 설립 *낙태시켜 주세요 *독 설 *병원장의 죽음

*주인 없는 병원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사라진 TV

3부 진리 안에서 자유

*소망이 보인다 *구원 없는 나 *이단에 빠졌다

*믿음이란? *무엇을 믿는가? *하나님의 의, 사람의 의

*성경의 복 *대장암 이래요 *어머니의 소천

*진리의 자유를 얻기까지

 

4부 율법과 복음

*복음시대의 거짓말 *주의 종을 잘 섬기면 복을 받는다

*주의 종을 대적하면 저주 받는다 *예배당이 성전이다

*목사가 제사장이다 *주일을 안식일처럼

*십일조의 구원과 축복 *충성, 봉사, 헌신은 축복

 

 나는 이 책을 통하여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과거의 신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통하여, 이 책을 접하는 모든 분들에게 진리의 자유를 맛보며, 하나님의 의와 사람의 의를 깨닫고 주안에서 마음껏 누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내가 진리의 자유를 알기 전에 분명히 소경 목사로써, 주의 일을 한다고 했다. 15:14“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이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 것이다. 내가 왜 소경이었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율법과 복음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분별없이 덤벼들어 이웃을 내 몸같이사랑하려 했던 것이다.

이웃 사랑 참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통하여 의로워지려 한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나는 믿음으로 의로워졌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을 살펴보면, 주님이 원하는 믿음에 이르지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 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기의 선, 공로는 하나도 없이 100% 예수 공로만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려도, 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영적 소경 목자(일부)들에게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 좋은 학문, 멋진 예배당, 많은 성도가 모이는 교회는 참이고, 그렇지 못한 교회는 참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세상의 성공은 외형의 보여지는 곳에 있을지 몰라도, 진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온다.

부족한 자가 부끄러움을 드러냈지만, 수치로 여기지는 않는다.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나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이곳에 등장하는 분들은 그들의 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을 내 몸같이 사랑하였다는 것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독자들의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구합니다.

2009년 부활절 즈음에 서재에서

 

 

 

 

 

1부 꿈을 향하여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1:2.3)

 

 


꿈이 무너지다

 

  1986년 추운 겨울날 저녁...

다른 동료들은 퇴근하고 나와 허대리, 조기사등 몇 명이 남아 새로 설치한 원심분리기 시운전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허대리의 지시에 따라 원심분리기에 전원을 공급하니 ~~, ~~~끼이익~~’ 기계가 생각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잠시 기계를 점검하고 다시 전원을 공급하니 첫 번째보다 훨씬 잘 돌아간다.

~~, ~~~~~~’

원심분리기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 허대리는 공 기사 원료를 주입해!”라는 말에, 나는 상단부에 있는 주입구에 원료를 투입하는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소리가 났다. ‘우다당~~~~’ 순식간의 일에 나는 몸의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정신은 잃지 않아 누워서도 파편에 맞지 않으려고 얼굴만 감싸고 있었다.

잠시 뒤 주변이 조용하기에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세워보니 왼쪽 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왼쪽 다리를 움직여보니 무릎근처에서 절단이 되어 말로만 듣던, 선지덩어리가 절단된 부위에 뭉쳐 있었다. 오른쪽에 있던 허대리를 살펴보니 목이 끊어져 머리가 어디론가 보이지 않았고, 왼쪽에 있던 조기사는 양팔이 절단되고, 뱃속의 장기가 밖으로 튀어나와 보기 흉측한 모습으로 사망에 이른 상태다. 나도 다리 대동맥이 끊어진 상태라 정신이 가물가물 몽롱한 상태로 빠져들었다. 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하여 시내 작은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큰 종합병원으로 옮겨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병원에 도착한 나는 잘 수술하면 본래 상태로 돌아올 줄로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용접일을 하였기에 기계가 망가지면, 언제든지 수리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수술 받기 전 내 몸의 절단된 부위를 찾아서 용접하듯이 잘 붙이면 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6시간여의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와 내 몸을 살펴보니 왼쪽다리가 없다. ‘~ 이렇게 밖에 수술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하는 자조 섞인 신음 소리만 냈다. 나중에 방사선 사진을 보고 알게 된 일이지만, 무릎 밑으로 한 뼘 정도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렇게 수술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순간의 사고로 인하여 나는 20대 중반 꿈 많은 나이에 중증 장애인이 되었고, 나의 부자되는 꿈은 내가 원해서도 아니고, 타의에 의해서 사라지게 되었다.

 

 

 

나의 꿈

 

   나는 1960년초 가난한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왜냐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가난이 무엇인지 느끼지도 못했다. ‘우리집이 가난하다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때 쯤이었다. 가끔 부모님이 다투셨는데, 내용을 들어보니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아버지는 갖고 있는 농지가 없으면서 자식은 6남매나 두셨다. 이것도 조금커서 안 일이지만, 아버지 나이 8세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고아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아버지는 남의 집 머슴으로 일하다, 17세 때 네발 마차에 등을 다치게 되어 몸이 반 곱추 모양으로 굽으신 것이다. 그런 몸으로 지게질을 하다 보니 등이 까지고, 피가 나고,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지만 자식들하고 살아보려고 몸부림 치셨다.

  아버지 나이 60세가 되어 너무 몸이 아파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담당선생님의 말씀이 마차에 치었을 때 3일만 누워있었으면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아버지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언젠가 내가 성인이 된 다음에 여쭈어 보았다.

아버지, 몸도 힘드신데 자식들을 많이 두셨어요?”라고 물으니

타지에서 형제도 없이 살다보니 설움이 많아서,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피해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라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의 다툼을 통하여 나는 생각했다. ‘얼른커서 돈 많이 벌어 부모님께 효도하겠다... 그런 마음으로 중학교에 들어갔지만 중학교 3년이란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당시에는 공부 열심히 해야 돈을 많이 벌수 있다는 생각보다, 얼른 직장에 취직하면 돈을 많이 버는 줄로 알고 있었다.

중학교 3년 졸업을 하자마자, 돈을 벌겠다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문래동의 작은 철공소에 취직은 하였지만, 전문 기술이 없으니 잔심부름만 시켰다.

~ 꼬마야! 12인치 몽키 가져와

나는 몽키 모양은 알았지만 12인치가 어느 정도 크기인지 몰라 눈에 보이는 것을 갖다 주었더니,

~ 이 개××! 이게 12인치 몽키야~”

하며 몽키로 머리를 때려 피가 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안되겠다 싶어 나보다 3개월 먼저 입사한 두현이에게 배우기로 하고, 공구 이름과 크기, 용도등에 대해 배우고 나니 쉽게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직장 생활을 하는데도 내가 원하는 돈을 벌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빨리 많이 벌 수 있을까?’ 고민해 보아도 뾰족한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주변에 들리는 말로는 탄광에 가면 돈을 많이 번다고 하기에 그래 한번 도전해 보는 거야!’ 마음에 결심하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펄쩍 뛰시며 거기는 절대로 갈 수 없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탄광 사고가 많이 일어나 인명 사고도 많은 시기였기에 부모님은 나를 그곳으로 보내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

부모님의 반대로 탄광일은 손도 못 대보고 포기하게 되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가면 돈을 많이 번다기에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니, 군대를 갖다 와야 자격이 된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만 간직한 채, 기계 기술 익히는데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나라의 부름을 받고 병역의무를 마치게 되었다. 내 마음속에 간직하였던 돈 많이 버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해외 취업의 문을 두드려 보아도 쉽게 길이 열리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두드린 결실인지, 어떤 사람이 노동부 직업안정과에 문의하면 길이 있다기에 수원노동부 사무소에 서류를 접수하였다.

그리고 한 달 뒤 연락이 와 시험에 합격 해외에 나가게 되었다.

 

 

 꿈을 이루리라

 

  19841월 오후에 소 먹이를 준비하는데, 우체부 아저씨로부터 등기를 전해 받았다. 등기를 받아보니 1 10일날 출국하니 서울 어디로 모이라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이제 나는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열린 것이다. ‘~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교회는 다니지 않았지만, 신께 감사를 드렸다. ‘하늘님 나에게 이런 기회를 주셨으니 열심히 하여 이 가난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드디어 출국 날이다. 공항까지 배웅 나온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더 굳은 결심이 선다. “꼭 성공해서 돌아올께요!” 김포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방콕, 아부다비에서 잠시 쉬었다가 목적지인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에 20여 시간 만에 도착하였다.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마치고, 트리폴리 시내에 접어들었다. 우리와 문화가 달라서 그런지 전혀 다른 이국적인 이미지였다.

3일간 본부 대기소에서 머물렀는데, 가끔 이런 소리가 들린다. ‘알라야 아끄바르 아미르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이 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알라신에게 경배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루에 다섯 차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3일 후에 리비아의 제 2의 도시 벵가지 현장에 배치되어 버스를 타고 1,100Km, 중간 휴식 시간까지 14시간에 걸쳐 이동하였다. 이동하면서 느낀 것은 리비아란 나라가 얼마나 큰 나라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벵가지의 첫 인상은 1월 날씨치고는 지내기에 아주 좋았다. 벵가지에 도착하여 일해야 할 현장으로 이동하였다. 지중해변에서 남쪽(사막)으로 20Km 들어가니, 그곳에 거대한 조립용 아파트 부품 생산 공장이었다.

앞으로 일할 현장에 도착한 나는 마음을 새롭게 하였다. 비록 계약기간은 1년이지만 열심히 하여 몇 년 동안 일을 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첫날 현장에 나가니 한국 사람들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도 있었다. 알아보니 방글라데쉬 사람들로서 한국인 기술자들이 일하는데 보조원으로 일한다는 것이다. 방글라 사람이 나를 보더니

어이~ 된장 왔어!”

이건 무슨 말인가하여 알아보니 한국 사람이 리비아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된장 맛이 빠진단다. 그래서 한국에서 갓 나온 사람에게서 된장 냄새가 난다 하여 이방인들이 된장이라고 놀리는 것이라고 한다.

 


다람쥐 쳇바퀴 인생

 

본격적인 해외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제 할 일이라고는 일하고, 잠자고, 일하고, 잠자고의 연속이었다. 아침 05시에 일어나 씻고 아침식사하고 6시까지 현장에 출근해야 한다. 아침에 피곤한 몸을 깨워 출근길에 오르면 사막에서 떠오르는 일출은 정말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였다. 이런 생활이 거의 날마다 반복되었다.

내 개인 적인 삶은 없었고, 오직 회사에서 원하는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05시에 일어나 22시나 되어 잠자리에 들게 되는 날마다 되풀이 되는 시간이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쉬게 되었다. 오전에 지중해변에 나가 바람 쐬고, 카다피 귤(후에 안 일인데 이것은 귤이 아니라 오렌지였다. 국내에 수입되는 오렌지하고 비교 할 수없이 맛있다) 한 망태기 사서 동료들과 먹고 오는 일이 고작 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관심거리라면, 현지 아가씨와 만남이다. 여자의 노출을 철저히 금지하는 나라에서 이곳에서 만큼은 그리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람들에게도 현지에서 돈을 쓰게 해야 한다, 백화점이 몇 곳 생겼다.

리비아 어느 상점에 가보아도 여자가 물건을 파는 곳을 보기가 힘들다. 그 만큼 여자를 앞세우지 않고 감춘다고 할 수 있는데, 백화점의 전략은 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예쁜 여자 점원들에게 차도르도 벗게 하여 한국 손님들을 맞이하니, 한 달에 두 번 쉬는 날은 여자 얼굴 보러 시내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리비아는 일부 다처국가다. 그러다 보니 의식이 깨어 있는 여성들은 다처제를 싫어한다. 한국 사람들이 일부일처를 행한다는 것을 아는 백화점 점원은 나에게도 관심을 갖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쉬는 날이면 가끔 들려서 귓속말로 속삭인다. ‘아나 안타 하비비’(I love you) 이 말을 들은 점원은 얼굴이 발개지며 좋아했다.

리비아는 성인의 2/3는 비밀 경찰에 속한다. 한번은 내가 좋아하는 점원과 조금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누군가 다가와 나의 뒷덜미를 잡아당기며 빨리 나가란다. 여자 근처에는 항상 감시원이 있는 것이다.

리비아는 이슬람 국가이기에 금기하는 것이 많다. , 여자, 도박은 철저하게 금지한다. 그래서 여자들에게는 차도르(히잡)라는 것으로 몸 전체를 가리도록 하고, 남자들도 능력이 없으면 장가가는 일은 생각도 못한다. 신부를 얻으려면 많은 지참금이 필요하기에 가정이 넉넉하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평생 홀아비로 지내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미국과 리비아가 원수가 졌었다. 당시 미국제품이라든지, 달러를 소지하다 불신검문에 걸리면 상당한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리비아가 미국과 원수가 된 배경은 지금의 대통령 이전에는 왕조국가였다는 것이다. 당시에 미군이 벵가지 지역에 주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어디에 가든 제약을 받지 않는지 모르지만, 미국인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술과 도박, 여자들이 생겨나 이슬람 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일어났다고 한다.

카다피, 호메이니, 후세인, 오사마 빈 라덴등은 이슬람 원리주의 자들인 것이다


                           

                       꼬리~ 꼬리~

 

   우리 고향 마을에 사는 분이 다른 현장에 근무하고 있기에 귀국하기 전에, 얼굴을 뵙고 오려고 현장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어느 여학교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다. 여학교는 보통 담장높이가 2m 가량 된다. 그래서 아무리 안을 들여다보려 해도 볼 수 없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무관심하게 지나가는데, 어디선가 꼬리..꼬리”(한국인을 꼬리라고 부른다)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 나는 쪽으로 머리를 돌려보니 여학교 담장 한쪽에 구멍이 크게 나 있었다. 그곳에서 내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다.

나도 잠시 돌아보고 윙크 한번 하고 나의 길을 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며 자동차 클락션을 울린다.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거의 다 왔기에 차를 안 태워줘도 된다고, 손사래 쳐도 계속 따라오며 클락션을 울린다. 왜 그러나 싶어 기다리니,

학교 쳐다보고 학생들하고 말을 했느냐

묻기에 절대 아니라고 하고 위기를 벗어났다. 군에서 말 년 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곳에도 귀국을 며칠 앞두고 비밀경찰에게 잡혀가면 엄청난 수치를 당하고, 나오게 되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었다.

일부 리비아 사람들 가운데는 한국 사람을 우습게 보고 멸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생각에 한국은 가난한 나라여서 수단, 차드, 필리핀, 태국사람처럼 리비아에 돈 벌러 온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의식있는 사람들은 한국인들의 창조적인 기술력에 감탄하기도 하며, 한국인들이 최고라고 치켜 세우기도 했다.

리비아는 사회주의 국가여서 그런지 군인이나 경찰의 권력이 강한 것을 보게 된다. 한번은 검문소 건물이 낡아서 새로 지어야 할 때가 되었는지, 우리 회사의 차량들을 검문소 앞에 세우고 운행을 못하게 한다. 그러면 공사가 진행이 되지 않아 차질이 생겨 직원이 찾아가면, 검문소를 새로 지어달라고 한다. 새로 지어주기로 약속을 하면 차량을 통행하게 하여 공사를 하게 한다. 그러나 동아건설의 대수로 공사차량만은 검문하지 못했다. 국가 원수인 카다피의 명령에 의하면 대수로 공사는 국가적인 사업인 만큼, 공사에 방해가 생기지 않도록 모든 국민들이 협조하도록 명령하였기 때문에 동아건설 차량은 리비아 어디라도 마음껏 다닐 수 있었다.

그 만큼 리비아에서의 한국인들의 위치는 대단했던 것이다. 세계의 불가사의한 공사중의 하나인 대수로 공사, 직접 눈으로 본 사람만이 그 규모가 어떠한 것인가를 실감할 것이다.



약자들의 설움

 

   70-80년대 한국건설업계의 해외 공사는 토목과 건축 일이 많았다. 그래서 한국인 근로자들 대부분은 고학력자 보다는 토목이나 건축기술자들이 많았던 반면, 방글라데쉬 사람들은 고학력자가 많았다.

내가 리비아에서 일하는 동안 함께 지냈던 친구는 나즈룰 이스람칸이다. 그는 방글라데쉬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했다고 한다. 거짓말이 아니라 그의 행동하는 모습 속에서 인품이나 성품이 나타난다. 이스람칸의 말을 듣노라면, 방글라데쉬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면 한 달에 50달러, 일반노동자는 30달러 정도 버는데, 이 돈 가지고는 부모님과 여러 형제가 살수가 없어 리비아에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쉬에서 리비아까지 해외취업을 위해서는 먼저 국가가 정한 기간에서 면접보고, 합격하면 1년 동안 해외에 나가서 버는 돈의 50%는 국가에 내야하고, 나머지 50%는 본인의 몫이 된다고 했다. 우리와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한국 사람들은 첫 달부터 마지막 달까지 전액 나의 몫이지만, 저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떠한 치사한 일이 있어도 한국인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

그리고 선생님, 의사등 고학력자가 해외에 나가는 것은 언어소통 때문이란다. 이스람칸의 영어 실력은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래서 나는 쉬는 날이면 이스람칸의 숙소에 찾아가 같이 공부도 하고, 같이 식사도 하게 되었다.

그들의 숙소에 가던 날, 그들은 나를 귀한 손님대하 듯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메뉴가 밥과 토마토, 카레닭볶음탕이었다. 나에게는 포크와 수저를 주며 먹으란다. 그들은 어떻게 먹는가 살펴보니, 식판에 밥을 담고, 국그릇에 카레닭볶음탕을 담아 오더니 밥이 뜨거우니 오른손으로 저어가며 식힌다. 그런 후에 카레를 밥 위에 조금씩 부어가며 손으로 비빈다. 그리고 손으로 입에 들어갈 만하게 동그랗게 만들어 입으로 가져간다. 나도 처음에는 숱 가락으로 먹다가 내려놓고 손으로 비벼가며 먹었더니 탄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그들의 전통은 오른손은 축복 받은 손, 왼손은 저주받은 손이라 하여, 오른손으로는 음식을 먹고, 왼손으로는 화장실에서 변을 보고 화장지 대신 깡통에 물을 담아 왼손으로 항문을 닦는다.

그들과 함께 지내며 손짓, 발짓 마음으로 통하기는 했지만, 급 할때는 말로 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아파트 외벽이나 칸막이를 콘크리트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아파트 외벽 하나 무게가 약 4.5톤이나 된다. 압둘 다엘 이라는 방글라데쉬 사람이 한국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있었다. 한국 사람이 누워 있던 콘크리트 구조물을 크레인으로 세우는데, 어느 정도 세웠을 때, 로프가 고리에서 떨어지면서 구조물이 넘어지게 되었다. 한국말로 비켜라고 소리 지르니 다엘은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쳐다보다가 콘크리트 구조물에 깔려(가슴이하로)눈만 껌벅이며, 고통스러워하다 이내 숨지고 말았다. ‘언어 소통만 되었어도 이런 슬픈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이스람칸에게 그들의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마음 한쪽에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방글라데쉬 말을 배워 어디에 쓰지.... 그런데 90년대 이후에 방글라데쉬 사람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들의 말로 아프니 잉그라지 볼떼 빠렌?”하고 물으면 아주 반가와 했다.

  리비아는 사회주의 국가여서 그런지 시장에 나가도 물자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주는 음식 먹고 그 뜨거운 태양아래서 일하다간 영양실조에 걸리기 십상이다. 나도 출국 할때와 비교해 보니 약 5kg이 빠진 상태였다. 리비아에는 자연 상태의 영양가 많은 짐승들이 돌아다닌다. 리비아 군인들이 정기적으로 사냥을 나가 그 개체수를 줄인다고 했다.

어느 날 한 마리 잡아 잘 삶아서 고기를 뜯어 먹는데, 살 속에서 탄환이 나오기도 했다. 그 영양이 풍부한 짐승은 다름 아닌 야생 들개였다. 나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런데 워낙 힘들고 영양이 부족하다고니,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우리 현장이 주거지역을 벗어나 사막쪽에 있으니, 야생들개들이 먹을 것을 찾아 온다. 그러면 우리는 옛날 산에서 토끼 올무 놓듯 현장 울타리 구멍에다 올무를 설치하고, 다음날 한 바퀴 돌아보면 둘이나 세 마리가 걸려 있다. 그러면 그날은 영양 보충하는 날이다. 나이 많은 김씨 어른에게 맡겨 놓으면 오전내 손질하여 오후에는 큰 스텐레스 통에 넣고 푹 고아낸다. 저녁에 우리팀 30여명이 달려들어 포식을 하고, 그날은 술이 없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숨겨놓은 밀주가 등장한다. 맛나게 회식을 마치고 뒷정리는 약자인 방글라데쉬 식구에게 맡긴다.

  다음날 출근한 후세인에게 깨끗하게 설거지 해놓으라고 하면, 싫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이 약자의 모습이다. 후세인은 이슬람교 종교심이 많은 친구인가보다 쉬는 날이면 여느 친구들과는 다르게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고, 옷도 구별되게 입는다. 좀 잘나 보이는 모습이기에 한국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설거지를 시켜놓았으니 순순히 말을 들을 리가 없다. 그는 근무 현장을 이탈하여 현지 경찰에게 한국 사람들이 개 잡아 먹었다!”고 고해 바친다. 그러면 경찰이 현장에 찾아와 사무실 직원과 돈 몇푼으로 해결하고, 우리에게는 말로만 징계가 내려지고 개사냥 금지는 내려지지 않는다. 회사 직원들도 우리가 어떻게 먹고 사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직원식당(간부)과 현장 사람들의 식당이 따로 있었다. 직원식당에는 한국에서 공수해온 포장김치와 맛있는 것들이 있었지만, 일반 근로자 식당에는 그렇치 못했다. 그만큼 근로자들의 대우가 좋지 못했던 것이다. 분개한 현장 근로자들이 직원식당을 포크레인으로 무너뜨려 간부들이 근로자 식당에서 함께 줄을 서서 밥을 먹기도 했다.

후세인도 1년 계약이 종료되어가고 더 연장 근무 신청할 때가 되었다. 앞서 말했지만 6개월까지는 나라에 내고, 6개월 이후부터 연장 근무하는 것은 다 자기 몫이 되기에 다른 사람들은 연장근무를 위해 더럽고, 치사해도 한국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야 했다. 후세인도 연장근무를 하고 싶어서 몸부림쳤지만, 이미 그는 한국 사람들의 눈 밖에 나고 말았다. 그는 1년 계약기간이 끝나고, 씁쓸히 고향으로 돌아간 반면, 이스람칸이나 다른 동료들은 자기처신을 잘하여 3년여 가까이 일하다가 돌아갔다.

  사람이 자기 조국을, 자기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다.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비록 60-70년대 어려움은 있었지만, 전 국민이 근면, 성실하게 오늘을 이루지 않았던가! 나라 지도자 하나가 올바른 정책을 세우면 온 국민이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저 감사가 저절로 나온다.

가끔 벵가지 시내에 나가보면 어떤 사람이 일방적으로 맞는 것을 보게 된다. 누군가 알아보니 가난한 이웃 나라 수단 사람이 리비아로 돈 벌려고 왔다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척이나 맞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해서도 들었을 것이다. 리비아에는 현지인이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을 보기 어렵다. 그 만큼 그들은 가난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에서 일인당 얼마씩 매월 돈이 나오니 굳이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수는 있다. 그럼 그들의 농사는 누가 짓는가! 살펴보니 수단, 차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짓고 있다.

한번은 팔레스타인 농장에 가게 되었다. 젊은 처자들이 차도르를 쓰지 않고 굉장히 반갑다고 환영을 한다. “왜 저들은 차도르를 쓰지 않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농사일에 전념하다 보니 그런 거추장스러운 것은 쓸 수가 없다고 했다. 파레스타인 사람들의 나라 없는 설움은 리비아에서도 나타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보고 느꼈다. 내가 돌아갈 조국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국민이다.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지도자가 올바른 선택을 하여 백성이 평안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첫 사랑

 

나와 같이 일하던 김 반장이 있었다. 그분이 나의 일하는 모습을 보더니 마음에 들었나보다. 리비아에서 가장 기다리는 것은 국내에서 보내는 편지였다. 리비아에서 근무한지 10개월여 지났을 때, 김반장님 왈

영재야 너는 애인이 없냐!, 어째 여자에게서 편지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라며

내 막내 여동생이 있는데 사귀어 볼래!”라는 것이다. 20대 중반이 되기까지 나는 부자 되는 꿈만 가득하였기에 한눈 팔 겨를이 없었다.

외국에서의 생활이 외로운 건 사실이었다. 가끔 가족들의 편지나 애인의 편지가 큰 힘이 되곤 하였다. 반장님은 나에게 동생의 주소를 가르쳐주며 편지해 보라고 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부산에 사는 순이에게 편지를 썼더니 얼마 후에 답장이 왔다. 처음에는 서먹하더니 여러 번 편지 왕래가 있은 뒤에 사진도 주고 받았다.

나에게는 첫 사랑이라고 할까. 두근거리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다음에는 무슨 소식을 전해올까?’ 이런 생각 속에서 일을 하니 하루 일과가 피곤한 것도 모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1년이상 편지를 주고받다보니 실제 눈으로 본적은 없지만, 그녀가 내 마음속에 들어왔으며,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하나 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편지를 통해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리비아에서 27개월쯤 되었을 때, 우리 현장 공사가 마무리 단계가 되어 나는 귀국하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장기근속으로 수고하였다며 남부 유럽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에서 이륙하여 두 시간 비행하고 나니,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여 한국 유학생의 안내를 받게 되었다. 아테네 상공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모습을 보고 감탄을 했다. 저 도시가 수백년 전에 형성이 되었다고 하는데, 제대로 계획된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슬람국가에서 생활하다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니 분위기부터 달랐다. 리비아에서 술에 굶주린 우리 일행은 러시아산 보드카 두병을 사더니 한잔씩 돌린다. 저녁식사 시간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한국산 진로소주 몇 잔씩 먹으니 취해 버린다.

낮에 세계 보물 1호인 파르테논 신전과 아크로폴리스 광장, 1회 올림픽 스타디움을 관광하고, 저녁에는 코린토 항구에 갔는데, 휘향 찬란한 것이 항구도시답다. 저녁에 먹은 술 때문에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당시 나는 무신론자였기에 성경에 나오는 고린도에 대해 알 길이 없어 대충 돌아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항구도시로써 신전도 많고, 우상도 많은 곳이라고 느껴진다.

그리스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싱가폴 항공기를 타고 두바이 공항을 거쳐, 싱가폴에서 1박하게 되었다. 싱가폴 시내에 나가보니 정말깨끗하고 아름답다. 시내에 나갔다가 싱가폴 사람을 만났다. “싱가폴에는 껌이 없고, 공중질서를 잘 지켜 시내가 깨끗하다고 한다. 쌍용건설에서 지은 건물을 가르키며 한국사람 최고라고 했다.

이제 집에 돌아간다. 집에 가면 행복이 나를 기다릴 것이라 생각해 본다. 나를 오랫동안 인내하고 견디게 해 준 가족들과 순이도 만나고, 그동안 꿈꿔왔던 사랑도 나누리라 생각하니 내 가슴은 벅차오른다.


행복한 날을 위하여

   국내에 들어오니 오랜 시차와 긴장이 풀린 때문인지 정신이 멍하고 이상하다. 마침 농사철이어서 곧 바로 아버지의 일손을 돕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너무 힘들게 농사를 지으셨기에, 이제 좀 편하게 해 드리기 위해 번돈 일부를 투자하여 경운기등 농기계를 장만하였다.

모내기를 모두 마치고 여유 시간이 되어 나는 마음속에 그리던 님을 만나기 위해 중앙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귀국하고 전화로 몇 번의 통화를 했지만, 그녀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기에 마음이 설레었다. 기장역에 도착, 순이가 직장에서 퇴근할 시간에 맞추어 약속장소에 갔다. 자그마한 몸매의 순이가 수줍음으로 다가오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순이는 9남매 중에 막내였는데 어머니는 일찍 여위고,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었다. 저녁에 순이 집에 도착하여 아버님께 인사드리고, 함께 식사를 하고나니 부친께서 말씀하신다. “궁합이 둘인데 하나는 잘 맞고, 하나는 잘 맞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궁합에 대해 잘 몰랐기에 그냥 귓가에 스치는 말 정도로 들었다.

  다음날 휴일이어서 순이와 부산으로 나와 금정산과 해운대 바닷가에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나누다 어둠이 오기전에 헤어져 나는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부산에서 올라온 나는 곧바로 직장에 취직을 하였다. 새로 신설되는 회산데 준공을 앞두고 무척이나 바빴다. 가을에 접어들어서는 그동안 휴학하고 있었던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복학하여, 한 달에 두 번 쉬는 날에는 학교에 가야만 했다. 회사일이 어찌나 바쁜지 아침 07시에 출근하면 밤10시까지 일을 했다. 준공을 앞둔 시기였기에 일요일에 출근하여도, 나는 학교에 간다는 이유로 두 번 정도 쉴 수 있었다. 몸도 피곤, 마음도 피곤, 부산에 사는 순이에게서 전화와 편지가 와도 제대로 응대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순이의 편지에 부산과 용인의 중간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럴 시간이 없다고 답장하니 오빠가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식었다며 토라진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동안 편지라는 글을 통해 사랑을 나누던 터라 순이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회사는 11월말에 준공식을 하였다. 그들의 방식대로 큰 상을 차려놓고 무사 안녕을 위하여 큰 굿판을 열기도 했다. 회사 준공식을 하고 열흘쯤 지났을 때, 회사의 운명과 나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원심분리기의 대 폭발로 인하여 회사는 일어설 힘을 잃었고, 나는 다시는 기계 다루는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건강한 몸에서 장애인으로

   198612월 중순, 나는 건강한 몸에서 장애인으로 운명이 바뀐 날이었다. 서울 순천향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일곱 번의 크고 작은 수술을 받게 되었다. 처음 절단 부위 봉합 수술을 하고 818호에 입원해 있었다. 수술 부위의 고통이 임할때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팠다. 너무 고통스러워 할때 몰핀 주사를 주었는데, 그렇게 아팠던 고통은 사라지고 침상에 몸은 누워있는데, 부웅 떠올라 어디론가 날아가는 듯 그렇게 기분이 좋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것이 마약주사라고 했지만, 그 좋았던 기분은 금방 잊게 되었다.

1986년이 저물어 가는 어느 날, 병상에 누워있는데, 영영 떠났다고 생각했던 순이가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너무 반가와 말을 잊지 못했다. 휠체어를 타고 병실 밖으로 나가 어떻게 오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오빠에게서 소식을 듣고 왔단다. 순이의 말에 의하면 병실 밖에서 30여분 망설이다 들어왔다는 것이다. ?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과 편지에 헤어지자는 말 때문에 내가 잘못 되었다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런 생각이 무슨 상관이 있으랴.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내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한 시간여 같이 지내다 서울 오빠 집에서 며칠 지내다 갈 때 또 들린다고 했다.

며칠 뒤 순이는 나를 찾아 왔다. 해맑은 얼굴로... 내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너무, 너무 좋기만 했다. 한 시간여 함께 있다가 순이가 돌아가면서 하는 말 오빠 나 내년 2월에 결혼해요!” 이 말을 남기고 그녀는 떠나갔다. 나의 모습과 처지를 보니 그녀를 붙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 나라도 그랬을 거야하고 나 자신을 다독 거렸다.

순이가 떠난 후 나는 살기위한 몸부림을 쳐야만 했다. 일곱 번의 대수술과 약물중독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이면 옆에서 간병하던 어머니는 자신의 고통처럼 힘들어 하였다. 어느 정도 수술부위가 아물어 의족을 맞추었다. 처음에 의족을 착용하여 걸어보니 영 어색하고 몸에 붙지 않는다. 몇 번 교정하고 난 뒤 다시 재활 훈련에 돌입했다. 4개월여 재활 훈련을 하고나니 보조 지팡이를 짚지 않아도 제법 걸을 수 있었다. 담당 과장님 왈 이제 병원에서의 모든 치료 과정은 끝났으니 퇴원해도 된다고 하기에 나는 9개월 동안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건강한 몸에서 장애인신분으로 세상으로 나왔다.

 

 

 

분노와 슬픔

 

   나는 무신론자이면서 신께 기도했다. ‘신이시여 이 젊은 놈이 가진 것이 건강한 몸뿐이었는데, 이제 어찌 살란 말입니까? 이 부족한 자가 이 험한 세상을 잘 이기며 살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라고....

의족을 착용하니 건강할 때 느끼지 못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병원에 있을 때는 장애물이 없어 잘 걷곤 했는데, 세상에 나와 보니 걷기가 힘들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에 걸리면 자빠지고 만다. 의족을 종일 착용하다가 잠 자리에 들때면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통증이 임할때는 이런 상태로 내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자신에 의문이 생기면서 슬픔과 분노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어머니 계신데서 표출할 수도 없고 마음만 심히 괴로웠다.

퇴원과 동시에 나는 어머니와 작은 슈퍼를 운영하였다. 통증이 심할 때마다 소주 한 병을 큰 컵에 따라 벌컥, 벌컥 마시면 술에 취하여 잠이 들곤 하였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다보니 걱정이 앞선다. 이러다 알콜 중독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나는 과거에도 술을 많이 마셔본 일이 있었기에 몸도 불편한데, 알콜 중독자까지 된다면 나 자신뿐 아니라, 가족까지 힘들게 되는 것이다. 몸의 고통이 임할 때마다 술로 그 고통을 잊어보려 했던 어느날, 신비한 체험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일을 마치고 소주를 마시는데, 목에 가시 걸리듯 술이 넘어가지 않는다. ‘이상하다술을 먹어야 잠을 자는데... 걱정이 돼서 다시 넘기려 해도 넘어가지 않는다. 열 일곱살에 배운 술이 10년만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 되었다.

그 날 이후 내가 술 잘먹는 것을 알고 친구들이 술을 사주어 억지로 먹게 되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따라 더 이상 술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

  

아내와의 만남

 

  나와 어머니가 운영하는 슈퍼는 공단 지역에 있어서 회사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어느날 어머니와 함께 오랫동안 일하셨던 분이 오셨기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집사님, 나 중신좀 해 주세요!”했더니

한 참 생각하시더니, 아가씨 한명 아는데 말을 해 보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나보다도 어머니가 먼저 가셔서 선을 보고 오시더니 나더러 괜찮아 보이니 잘하고 오라며 나에게 선을 보도록 했다.

아내 될 처자를 만나려고 약속된 장소에 갔더니 키는 자그마하고 커트머리에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 인상등 괜찮아 보였다. 실은 내가 키를 쥐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상대방이 나를 좋다고 하면 그저 감사합니다. 해야 할 입장이었다. 처음 만난 날 저녁식사하고 차 한잔 마시고 헤어졌다. 내 마음이 울렁거리고 이 사람을 꼭 붙잡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주 만나다가 미래를 약속하게 되었다.

  아내는 결혼을 앞두고 우리 집으로 왔다. 함께 슈퍼를 운영하면서 미래를 약속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얼마나 이기주의자였는지를 알수 있다. 당시 나는 하루에 담배 두갑을 피고 있었다. 따로 하는 일이 많지 않아 무료하게 앉아 담배만 피고, 슈퍼일은 거의 아내가 하고 있었다. 큰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 그 좁은 공간에서 나와 어머니, 손님들까지 담배를 피웠으니, 아내의 고통이 얼마나 켰으랴...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담배를 안 피우고 보니 흡연자의 담배연기가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가!’ 지금에서야 느끼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죄스럽고 미안하다. 그런 환경에서 우리 두 아이를 낳았는데, 몸에 이상 없이 태어나 잘 자라주는 것으로도 감사하다.

  아내와 만날 때까지 나는 무신론자였다. 중신하는 집사님이 아내의 가족들에게 우리 식구들이 믿음 생활을 잘하는 집안이라고 소개하였으니 열심히 교회에 다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교회에 가본일이 없다. 옛날 시골 교회에서 과자 준다하여 가본일은 있으나, 성인이 된 이후에는 가난의 한을 풀려고 했었기에 교회 나갈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힘들고 고달픈 가운데서도 아내는 주일이면 교회에 가야 한다며, 나를 재촉하였으나 나는 마음이 가질 않으니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쩌다 한 번 가는 날이면 설교 시간에 코를 골며 잠을 자서 망신만 당하였다.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찌 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내는 어찌든지 살아 보려고 애를 썼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기회만 되면 잡기로 도박을 즐겨했다. 토요일이 되면 회사 사람들도 일찍 퇴근하고, 슈퍼도 조용하다. 그렇다고 일찍 문을 닫을 수도 없기에 아내에게 먼저 들어가 자라고 하면 아내는 피곤해서 이내 잠이 들어 버린다. 그러면 나는 슈퍼 문을 닫고 그날 장사한 돈 전부를 챙겨가지고, 근처 회사 경비실로 간다. 그러면 꾼들이 모여 나를 기다린다.

나는 잡기를 즐기기는 했어도 돈을 따진 못했다. 밤을 새워가며 갖고 나간 돈을 다 잃을 때면 날이 밝아온다. 그러면 경비실 밖에 아내가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죄인의 심정으로 집으로 간다.

  한 두시간 잠을 자고 아내의 권유에 따라 교회에 간다. 왜 교회를 가야 하는지 모르고, 설교 말씀이 무슨 뜻인지 관심이 없으니 그냥 코를 골며 자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도 치맛폭에 이끌려 다니다 보니 신앙생활에 차츰 눈이 떠진다.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믿음의 선배들을 따라 직분도 받고, 봉사, 헌금등을 행한다.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채워줄 줄로 믿고...

 

                            은인(恩人)의 죽음

 

   1992년 초 엄동설한 한겨울 슈퍼에 앉아 있는데,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무슨 일이 났는가 하여 밖으로 나가보니, 집 앞에 있는 회사에서 폭발사고가 나서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저 정도의 사고면 많은 사람들이 다쳤겠구나생각하고 있는데, 부상자들이 여러대의 차량에 실리어 병원으로 향했다.

잠시 후 부상자에 대해 알아보니 나의 생명의 은인도 그 가운데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 그 친구 살아야 합니다. 불쌍히 여겨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내가 천이를 알게 된 것은 아주 어릴때였다. 옆집에 나와 같은 또래의 아들이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집 막내딸이 이천 어디엔가 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를 데려다 그 집 아들로 입적을 하였다는 것이다. 천이와 함께 초등학교를 다니며 우정을 쌓아왔다.

  어느 날 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가를 말하라고 했을 때, 동이는 운전기사가 된다고 하더니 지금도 운전을 직업으로 살고 있고, 나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고 했다가 엔지니어의 길을 가다가 사고로 중단되었고, 천이는 농사꾼이 되겠다고 하더니 정말 1등 농사꾼이 되었다.

천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무슨 일을 해도 정말 마음에 들도록 꼼꼼하게 잘 했다. 천이의 양아버지는 일찍 그의 몸에 맞도록 지게를 만들어 주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하든, 들에서 소 먹이를 베어오든, 멋지게 한 짐 지고 오는 모습은 모두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천이와 학교에 다니는 것도 나는 항상 즐거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 운동장 절반은 5학년이, 절반은 3학년이 청소를 하게 되었다. 얼마 전 초등학교 총동문회가 있어서 잠시 모교에 갔더니 운동장이 아주 작아보였다. 그런데 그때는 어찌나 크게 느껴졌는지 10여명이 운동장 청소를 마치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300여 미터 떨어진 냇가로 달려갔다. 냇가의 넓이가 10여미터 일심으로 뛰어들어 건너가는 것이다.

나는 수영이 미숙하였지만, ‘저 정도쯤이야~’ 하고 뛰어들어 다 건너겠지하고 일어나니 2/3 지점에서 빠진 것이다. 발 뒷꿈치를 들면 간신히 숨을 쉴 수 있고, 뒷꿈치를 내리면 물을 먹게 되어 허우적거리며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물놀이의 즐거움 때문인지 내가 물에 빠진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 누군가 내 뒤로 다가오더니 나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나는 간신히 나와 보니 천이가 수영하면서 나의 뒤에서 밖으로 밀어냈던 것이다. 천이는 지혜롭게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밖으로 밀쳐냈던 것이다.

  나의 생명의 은인인 천이가 사고를 당하다니, 그냥 어디 조금만 아프고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전신 60% 3도 화상이란다. 수원에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화상전문병원이 아니라 하여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수소문하여 서울에 화상전문 병원이 있다기에 그리도 갔더니, 응급환자가 많다며 받지 않는다. 밤을 새워 가며 다른 병원을 찾다가 다시금 그 병원으로 들이 밀고 갔더니 받아준다. 담당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상태가 매우 안 좋다고 한다. 사고 난 뒤 2-3일 사이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중상자 중에 친구와 젊은 실습생한명이 있었는데, 친구는 그런대로 힘든 치료를 잘 받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의 부인이 말한다.

저런 모습으로 퇴원하면 나는 어떻게 살죠?”

누가 보아도 정말로 흉측한 모습이었다. 한강성심병원에 입원한지 5일이 지난 뒤부터, 정신도 차리고 음식을 주면 잘 받아먹으며 농담도 할 수 있었다.

 

 

우리 엄마가 왔어

 

입원 10일째 되었을 때 친구가 말한다.

친구야

?”

나 고무신 좀 신겨줘, 저 밑에 우리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천이는 현실에 맞지 않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천이는 6살때인가 우리 옆집에 입양되어 온 것이다. 두 어른을 부모처럼 섬기며 20여년 함께 살다가 두 분 다 이 세상을 떠났다.

  천이의 부친은 많은 농지를 소유하고 계셨기에 부친이 돌아가시고, 나서 형제들의 재산 다툼이 벌어졌다. 우리는 생각했다. 다만 친구에게 20%는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의 형제들이 법원에 친자확인 소송을 했다는 것이다. 법에서 판결을 받으면 뻔한 일이기에, 다만 친자는 아니더라도 그 친구가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는 탄원서와 친구의 학교 생활기록부(농번기때 결석일수확인)등을 법원에 제출하였어도, 친자확인소송에서 패하고 말았다.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있던 천이는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된 것이다. 거주하던 집에서 쫓겨나 남의 땅위에 조그만 조립식 집을 지어 아내와 두 아이와 살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과 살아보려 해도 마땅한 기술이 없어 취업이 쉽지 않았던 그가, 정화조 차량 조수로 일하다가 무슨 일로 인하여 해고 되었단다. 농사철이 지난 시골에 특별한 일이 없던 천이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가까이 하게 되고, 화투도 치다보니 집안일에 소홀하게 되었다.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한 아내에게서 호되게 책망을 받고,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네 사람에게 부탁하여, 우리 집 앞에 있던 0금속에서 작업보조원으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회사에 취업한지 20여일만에 사고를 당해 생명의 위기에 놓여 있던 것이다.

  내가 리비아에 일하고 있을 때 천이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 그렇게 힘들게 살았는데, 너도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구나. 고맙다 친구야~’하고 축하를 해 주었다. 내가 결혼 하는 것 이상으로 정말로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다.

이런 나의 생명의 은인이 병상에 누워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성인이 되었을 때, 천이에게 물었다. 1983년 이 나라가 이산가족 찾기에 온 국민이 울음바다가 된 적이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엄마를 찾고 싶지 않아

그랬더니 한동안 생각하다가

지금 찾았다가 나보다 더 어렵게 살면 어떻게 해

하고 포기했던 것이다.

엄마가 왔다는 소리를 하기 전에 음식도 잘 먹고 하기에 이제 살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분투하다가 3일후에 가기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생각해 본다. ‘죽음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저리 두려워할까?’ ‘죽음 너머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때는 내가 성경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던 때라 깊이 생각지 못하고, 그냥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다.

 

신학생이 되다

 

  천이 이름만 생각해도 늘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제 그에게 내가 빚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친구가 떠나고 잠시 그 가정을 돌보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친구 부인의 재혼으로 인해 그 가정을 돌봐줄 기회가 점점 없어지고 말았다.

친구를 보내고 마음에 슬픔이 가득하였지만, 이렇게 있을 수 없기에 무엇인가 시작해야 할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고 신앙생활에 열의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아내는 낙심이 많이 되었나 보다. 아내와 결혼 한지 5년이 되었어도 나의 믿음의 변화는 거의 없고,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신앙인 이었다.

  해가 바뀌어 아내는 신년축복 대성회에 다녀왔다. 신학교 입학원서를 갖고 와서 나에게 신학교에 갈 것을 권유하였다. ‘그럴까?’ 나는 5년여 신앙생활을 하였어도 변하지 않는 내 자신에 실망하고 있었기에 아내의 말에 순응하였다. 신학교에 가면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면 유익할 뿐 아니라, 내 신앙이 자랄 것으로 믿고 신학에 입문하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신학에 입문하게 되었다. 다른 분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자기 생활을 정리하고 신학에 입문 한다는데, 나는 내 자신의 신앙 성숙을 위해 신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물론 목사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2년여 신학교를 다니며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하였지만, 내가 왜 신학을 해야 하는지, 과연 목회자의 길을 갈수 있을 것인지, 의문가운데 3학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나를 왜 이 길로 인도하셨나요?’아무런 응답이 없다.

  어느날 국민일보 광고란에 0회 장애인 복음화 대회광고문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 문의해 보니 장애인과 봉사자 1,000여명이 모여 하나님의 말씀 잔치를 연다는 것이다. 서울 충현교회에서 복음화대회가 열려 참석하게 된 것이다. 담당 목사님과 상담하니 장애인 사역에 대하여 알려 주었다.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까닭을 알게 된 것이다. ‘너의 몸이 장애가 있는 것은 너와 같은 약자를 위해 복음을 전하라고 부른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장애인 선교를 준비하며, 지역에 있는 장애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신학교 졸업할 때까지 나는 한국 밀알 선교단 월요모임에 참석하면서, 장애인 선교 사역에 대한 공부를 해 나갔다. 가을에 밀알의 밤 행사가 서울 남서울 교회에서 열리게 되어 참석하였다가, 장애인 선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장애인들이 고난을 겪고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모습과 간사님들의 수화찬양은 나를 장애인 선교 사역에 올인 하도록 만들었다. 용인에서 장애인 사역을 꿈꾸며 신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2 .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12)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내 신앙은 어찌 보면 너무 무모한 면이 많았다. 신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나의 사명이 무엇이며, 어떻게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이웃에 약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중 과거에 같이 군 생활을 하던 동료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30대 후반에 접어들었는데, 아직도 알콜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저 사람을 예수 믿게 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하고, 저 친구의 집안을 구원시키자라는 마음으로 그 친구를 교회로 인도하였다. 처음에는 그도 순순히 잘 따라 주었다.

얼마 후에 안 일이지만, 이 사람은 알콜 중독이 너무 심한 상태라, 예배 중에도 알콜 기운이 떨어지면 몸살이 나서 견디지를 못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친구를 열심히 교회에 나오게 하는 일이며, 그의 집을 심방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면, 언젠가는 알콜로부터 자유로워 질것이라는 굳센 믿음이 있었다.

  하루 이틀, 운이의 상태는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그의 가족들에게 말씀을 드리고, ‘1주일 가량 기도원에 다녀와야겠다는 마음으로 강원도 태백에 있는 예수원으로 출발했다. 1월 맹추위를 뚫고 제천, 영월, 정선을 거쳐 태백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려왔다. 가는 길이 눈과 빙판으로 얼룩진 도로여서 8시간이 걸려 도착하니 나는 넉 다운이 될 지경이었다.

예수원 사무실에 접수하니 운이의 하는 말...

친구 먼 길 오느라고 고생했으니 숙소에 올라가 좀 쉬어, 나는 잠시 쉬었다가 올라 갈게하기에

얼른 올라와

하고 나는 3층 높이의 숙소로 올라갔다. 몸이 너무 피곤하여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운이가 없다. 큰일 났다. 그 친구는 6남매의 외아들로서 아직 장가도 못간 상태로 집안에서 귀히 여기는 아들이었다.

주변은 온통 눈밭이고 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찾아 헤매었다. 한참을 찾으며 아래 마을 슈퍼에 내려와 물어보니, 어떤 사람이 들어오더니 소주 한 병을 열더니 다 마시고, 한 병 또 열더니 반병 마시고, 가져가면서 친구가 와서 돈을 낼 것이라고 했단다. 친구가 술에 취하여 어디에 쓰러져 있을 거란 생각에, 예수원으로 올라오면서 자세히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찾지 못하면 얼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날씨였다.

낙심하여 사무실에 들어가 자초지종을 말하니, 어느 분이 하는 말

올라오는 길에 어떤 사람이 길가에 쓰러져 있기에 파출소에 데려다 주었다

라는 것이다.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겨 태백에 상사 파출소에 갔더니 순경이 말한다.

이 양반아 친구가 이 정도가 되도록 당신은 뭐했느냐!”

며 야단이다.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이 친구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태백시청으로 넘겼단다.

급히 태백시청으로 갔더니 술이 너무 취하여 당직실에 재울 수 없어 태백역 앞에 있는 여인숙에 투숙시켰다고 한다. 여인숙에 도착하니 정신없이 자고 있다.

나도 몸이 너무 피곤하여 주인에게

밖에서 문 좀 잠가주시라하고 잠이 들었다.

새벽 2시경 일어나더니 화장실 간다고 난리다. 만약 문을 열어주면 이 친구는 몸이 나보다 건강하기에 따라 잡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쓰레기통에 소변을 보게 하고, 아침에 청소해 드리고 나왔다.

예수원으로 다시 갈 수 없어서, 이왕 나왔으니 태백에서 경북 봉화, 영주를 거쳐 죽령고개를 넘어 올라오면서, 철원 대한 수도원 쪽으로 향하다 장호원에서 피곤하여 여관을 잡아 투숙하였다. 나는 녹초가 되어 방에 들어가 누었더니

내가 내려가 물을 떠 올테니 먼저 쉬라

고 한다.

얼른 올라와

하고 누웠다가 눈을 떠보니 새벽2,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한밤에 장호원 거리를 찾아 헤메고 다녔지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어느 곳에서 소리가 나기에 살펴보니, 술 좋아하는 사람과 마음껏 술을 마시고 있다.

아이고 이 친구야 당신 찾느라고 죽을 뻔했어!”

라고 하자. 태연히 말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침이 되어 우리는 다시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철원 대한 수도원에 가서 같이 며칠이라도 지내보려 했지만, 마땅치 않아서 23일만에 돌아오고 말았다. 집에 데려다주고 그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인사드리고 돌아왔다.

이후 주일날이면 예배 시간 전에 태우러 갔다가, 예배 마치면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알콜 중독자...

안수하고, 술 귀신을 내쫓으면 된다고 하기에 그리 하려다가 나는 거반 죽을 뻔하였다. 그 친구는 가족도 포기한 상태로 어머니가 돌봐 주면서 살고 있다. 어리석은 나는 10년이 지난 후에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복음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장애인 선교단 창립

 

  오직 장애인 선교에 대한 비젼을 갖고 있어서 신학교 졸업하고, 선교단 창립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였다.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준비하니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동참해 주시기도 하고 물질로 후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신학교를 마칠 때까지 사역지가 없었지만, 용인장로교회 장광섭 목사님이 나를 교회 전도사로 불러 주셨다. 목사님께 장애인 선교 비젼에 대하여 말씀드리니, 흔쾌히 승낙하신다. 용인교회 안에 장애인 부서를 만들고, 교회 사무실을 선교단 사무실과 겸하여 사용하도록 하신 것이다.

  19972, 용인지역 각 교회 목사님들과 지역 유지, 선교단 목사님들의 축복 속에 용인밀알선교단이 창립예배를 용인장로교회 본당에서 드리게 되었다. 선교단을 창립한 나는 마음이 설레었다. 이제 수 많은 장애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다는 생각에 기쁨과 감사가 넘쳐 났다. 20대 중반에 장애인이 되어 평생을 남을 의지해야 할 처지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 변한 나의 모습이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했다.

어느 단체든 재정이 넉넉한 곳은 없을 것이다. 우리 선교단도 모든 재정이 후원자에 의해 움직이기에 항상 부족한 상태여서, 함께 사역할 사역자를 두기가 어려워 거의 모든 일은 내가 움직여야 했다.

너무 힘들어 간사님을 한명 구하려고 면접을 보면, 현실적인 보수를 요구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봉사 차원에서 함께 해 줄 사람을 찾았지만 쉽게 구할수 없었다. 

 

 

 

나도 시집 갈래요

 

  밀알선교단 창립이전부터 나는 용인시 장애인 협회 운영위원으로 활동 했었다. 그때 알고지낸 장애인들이 있어 함께 하며,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밀알선교 사역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더니, 많은 장애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한명이 금이 씨였다.

그 당시는 사례금은 구경도 못할 시기여서 금이 씨에게

교통비만 드릴테니, 함께 일을 하자

고 했더니

교통비 안줘도 괜찮다

며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란다.

금이(당시28)씨는 한쪽 팔이 없는 2급 장애인이다. 6세 때 군용트럭에 치여 한쪽 팔을 잃었고, 9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다고 했다. 살림이 그리 어렵지 않아 아버지가 주는 용돈으로 먹고 싶은 것은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고 한다.

13세쯤 되어 병원에서 검사를 하게 되었다. 소아 당뇨 판정을 받아 눈에 합병증이 생겨 시력이 아주 좋지 못한 상태였다. 20세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살게 되었다. 아버지가 남겨둔 집이 있어 월세를 받으며 살았다고 한다. 비록 한쪽 팔은 없고 시력이 약한 상태였지만,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했다.

금이 씨와 같이 10여 개월 정도 함께 했을 때,

전도사님 나도 시집가고 싶어요

라는 말에 깜짝 놀랬다.

아니 무슨 시집을 가느냐?”

고 물으니,

여자로서 시집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어요

라고 했다.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에서 시집을 가면 몸 관리가 어려울 테니 깊이 생각해 보라고 했다.

금이 씨가 결혼하고 싶은 동기는 이렇다. 같이 친구처럼 지내던 정희 씨가 있었다. 정희 씨는 20대 초반에 위험한 일을 피하기 위해 3층에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머리를 크게 다쳐 정신지체 장애인이 되었다. 그런 정희 씨가 아는 분의 소개로 이천에 사는 우모씨(지체3)에게 시집을 가서 딸을 낳아 재밌게 산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나는 금이씨 몸 상태가 좋지 않기에 극구 반대하였지만, 마음에 결정을 하였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천에 사는 정희씨 남편의 친구 황모(지체3)씨와 교제를 나누더니, 다음해 5월 장애인 합동 결혼식을 통해 가정을 이룬 것이다.

금이 씨가 떠나고 다른 간사님과 사역을 감당했다. 밀알의 활동은 점점 더 왕성해져 갔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금이 씨가 어찌 사는지 이천으로 심방을 갔다. 남편 황씨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금이씨 혼자 조그만 슈퍼를 운영하고 있었다. 물건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내 마음이 심히 아팠다.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금이 씨는 어디론가 숨어버리려고 했다. 남편이란 사람이 가정은 돌보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좋은 가정 이루기를 기도하고 돌아왔다.

  얼마 후 들리는 소식에 금이 씨가 많이 아프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알아보니, 당뇨합병증으로 복막투석을 한다는 것이다. 시력이 너무 약하고 한손만 사용하기에 누군가가 옆에서 투석을 도와주어야 했다. 왜냐면 투석하다가 감염이라도 되면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상황이 안 좋게 흐르기에 우리 집으로 오도록 했다. 우리 집에 와서 복막 투석하는 것을 보니 혼자서 하기에는 무리인 듯하여, 우리 가족들이 시간에 맞추어 투석을 도와주었다. 6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네 번 투석을 하였더니, 두달 후에는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금이 씨는 집으로 가서 지내야 겠다고 하여 보내주었다.

한 달 후에 병세가 급속히 악화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용인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금이 씨는 병으로부터 회복되지 못하고 30세의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내 동생 좀 살려줘요

 선씨는 내가 신학교 다닐 때 밀알선교단 사역을 하기 전, 우리집 근처로 이사 온 아가씨였다. 어느 날 집으로 찾아온 선씨는

아저씨, 내 동생 좀 살려줘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네 동생이 감옥에 들어갔어요

라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동생이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와 다투다 칼로 배를 찔러 살인 미수혐의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이웃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요, 내 사명중 하나가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주님의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선씨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전심 전력을 다하였다. 먼저 수원교도소에서 면회하고, 법률구조공단에서 상담한 후, 피해자가 사는 화성시 정남면에 가서 백배 사죄하고, 얼마의 합의금을 내고 합의서를 받아 탄원서와 같이 법원에 제출하니, 초범이고 정상 참작하여 두달 여만에 나올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선씨에 대해 깊이 알수 있었다. 선씨 모친은 칼부림을 했던 동생을 낳은 후 산후풍으로 앉은뱅이가 된지 20년이 넘었다고 했다. 자신은 10여년 전부터 악성피부병으로 인해 온 몸이 가려워 고통가운데 있었다. 위로 언니 두분은 출가하고, 어머니와 본인, 그리고 동생과 함께 사는데, 동생은 취업하면 직장 숙소로 가고, 모친과 둘이 살았다고 한다.

 얼마 후에 그가 사는 집을 가보게 되었다. 방문을 여는 순간 악취가 코를 찔러 방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모친이 방안에서 대.소변을 다 해결하는데, 제때 처리하지 못해 냄새가 방안에 가득 차게 된 것이다. 집 주인은 집을 너무 지저분하게 쓴다하여 나가라고 했다. ‘저런 사람들에게 방을 줄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도 답이 없기에 용인시청에 의뢰하여 생활보호를 받게 하고, 거처할 곳을 요청하였더니 컨테이너 집을 하나 마련해 주었다.

후에 밀알 선교단 사역을 할 때도 선씨는 늘 함께 하였으며, 밀알 사랑의 캠프에 단원들과 함께 참석하였다. 캠프를 마치고 보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어떤 휠체어를 탄 장애인(지체1) 우리 사무실에 찾아 온 것이다. 경남 통영에서 왔는데, 캠프에서 선씨를 보고 한 눈에 반해서 왔으니 전도사님께서 잘 말해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한쪽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선씨가 결혼하면 그 모친은 누가 돌봐준단 말인가!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선씨를 만나 상의하니 결혼 생각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모친 문제 때문에 어렵다고 했다. 큰 언니는 구미에 살고, 작은 언니는 용인 주변에 살았다. 어떻게 연락이 되어 작은 언니에게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니 동생이라면 치가 떨린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 선씨는 모친과 생활을 해야 하는데, 돈 벌이가 없으니 여러 가지로 언니를 힘들게 했던 모양이다.

  구미 사는 큰 언니에게 모친을 모실 것을 부탁 드렸더니 어려워하면서도 승낙을 했다. 내가 모친과 선씨를 헤어지게 하려고 한 이유는 두 분의 생활이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모친을 큰언니 집으로 보내고, 선씨가 결혼을 하면 두 분다 깨끗한 환경 가운데서 삶을 영위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이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선씨의 결혼준비를 하였다. 통영에 사는 친구가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사무실에 찾아온지 두달 만에 결혼하게 되었다. 나와 간사들은 축복을 빌어주며 행복한 가정 이루기를 기도했다.

결혼 한지 6개월쯤 되었을 때, 선씨 남편의 전화가 왔다.

전도사님, 큰일 났심더!”

선씨가 검찰에 잡혀갔다는 말에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무슨 잘못이 있기에 검찰에서 잡아가는가!’ 하여 통영지청에 전화하니 선씨가 절도죄로 감옥에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형집행 정지 중이므로 몸 상태(피부병)가 좋아지면, 다시 구속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담당 검사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 하고, 힘든 가운데 결혼을 하여 몸 불편한 장애인을 섬기고 살고 있으니 도와 달라고 하였더니, 몸 상태가 좋지 못하여 구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1년 반 가까이 결혼 생활을 하던 선씨의 남편이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하고 말았다. 그 남편 명의의 재산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의 가족들은 선씨의 주민등록도 말소하고, 약자라 하여 아무 보상도 없이 쫓겨냈던 것이다. 용인으로 다시 왔기에 동사무소에 가서 말소된 주민등록을 살리고, 생활보호 혜택을 받도록 하고, 내가 병원원목으로 떠남으로 인해 선씨와 모든 장애인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던 병원이 폐업되고 충주에 거주할 때 낯선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선씨였다. 어디냐고 물으니 청송감호소라고 했다. 내가 용인을 떠나고 난 뒤 몸이 조금 완쾌되니, 다시 구속이 되어 감호소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청송감호소로 그를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 서너 시간 걸려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 만나보니 얼굴이 깨지고, 터지고 망신창이가 되어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함께 있던 동료와 싸우다가 다쳤다는 것이다.

누가 선씨 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는 불편한 모친을 모시고 살며 악착같이 살아 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살기위해 돈이 필요한데, 어디 취업이라도 할라치면 피부 문제로 취업을 할 수 없어 택한 것이 절도였다. 생존을 위한 절도인 것이다. 그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지만, 그가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지 않고 누가 그를 탓할 수 있으랴...

  

 

나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나에게는 호기심이 많다. 누군가를 알게 되면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내 손길을 필요하지 않은지 궁금해 했다. 홍이는 내가 밀알 사역을 하기 전에 만난 친구다. 홍이는 뇌성마비 3급 장애로 용인시 주관 장애인 행사에서 만났다. 그의 말에 의하면 84세된 할머니와 둘이 살고, 아버지와 새 어머니, 이복동생들은 서울에 살고 있다고 했다. “왜 할머니와 둘이 사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결혼하여 자기를 낳은지, 3개월 만에 어머니와 헤어지고, 새어머니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새 어머니가 자기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지 않기에 할머니와 둘이 산다고 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하여 여기 저기 몇 곳의 직장을 알아보고 취업을 시켜 주었다. 가끔 만날 때마다 직장 잘 다니고 있느냐?”고 물으면 그는 잘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다니는 직장 사람의 말에 의하면 회사에 나온지, 일주일도 안 되어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얼마 후 선교단을 설립하고 나니 장애인들이 많이 찾아왔다. 거의 직장이 없는 실업자들이었다.

나는 천성적으로 비장애인일 때나 장애인이 된 후에도 빈둥거리고 노는 것을 못한다. 내 성격 때문인지 실업자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찾아 여러 곳에 취업을 시켜 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고 만다. 왜 장애인들은 직장에서 오래 견디지 못하는가! 연구해보니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각 가정에서도 그가 스스로 설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그냥 집에서 지내라고 자유분방하게 살다가, 성인이 되어 직장에 들어가도 조직된 사회에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견뎌내지 못했던 홍이가

전도사님, 나 화장지 장사하면 잘할 것 같아요!”

그러니 장사 밑천 조금만 빌려달라는 것이다. 하도 믿음이 가지 않는 친구이기에 수익금의 통장을 우리 간사가 관리하기로 하고, 선교단 기금에서 일부 융자해 주어 화장지 사업을 시작하였다.

한 달쯤 장사하니 50여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반은 할머니와 생활해야 한다기에 주고, 반은 통장을 개설하여 예금해 두었다. 또 한달 가까이 다가오니 홍이의 하는 말

화장지 사업을 사촌과 해야겠으니 모든 관리는 사촌이 해줄 것

이라며, 우리와 결별을 선언하였다.

왜 그러지 우리가 이익을 보고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삶이 윤택해 지도록 도우려 하는 건데....

하도 이상하여 간사님께 홍이의 통장 잔고 확인을 요청하니, 간사님 왈

지난달 수입금의 절반을 예금했는데, 이틀 후에 본인이 와서 통장을 분실했다며, 재 발행하여 돈을 다 인출해 잔고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한일에 대해 탄로 날 것을 알고 미리 우리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들을 미워할 수 없는 것은 많은 장애인들의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홍이는 화장지 사업을 독자적으로 자기 동역자와 함께 해 나갔다.

 한번은 우리교회 집사님이 어느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는데, 이 친구가 오더니 식당 주인에게 화장지를 사 달라고 했단다. 거절하니 무릎을 꿇고 주인의 바지춤을 붙잡고,

사장님 이 화장지 못 팔고 들어가면 우리 전도사님에게 맞아 죽는다

고 했다는 것이다. 또 한번은 시청 사회복지과에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화장지를 팔아서 우리 선교단체가 장애인을 앞세워 장애인등이나 등쳐먹는 불량스런 단체로 한동안 인식이 되었다.

처제가 병원 간호사로 있을 때다. 이 친구가 화장지를 갖고 들어오더니 이렇게 말하더란다.

나는 84세된 할머니와 살고 있으며, 교회에 다녀 거짓말을 안 합니다

라고 하더니

내게 강같은 평화,

내게 강같은 평화,

내게 강같은 평화 넘치네 할렐루야

라며 복음송을 힘차게 부른 뒤에 화장지를 팔더라는 것이다.

홍이가 아무리 뛰어나도 화장지 사업을 혼자서는 할수 없다. 왜냐면 누군가 그가 장사할 곳으로 화장지를 차로 운반해줘야 한다. 후에 안 일이지만 어느 건달 같은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은 화장지를 운반해주고, 이익금의 50%씩 나누기로 하여 더 절박한 상황에서 판매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

당시 우리 사무실에서 도와 줄때는 공장에서 화장지를 갖다가 장사하는 각 도시로 운반해 주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미워할 수 없는 그였기에 끝까지 주님의 사랑으로 안아 주었다.   



지역사회에서의 밀알

 

  나는 이 일이 너무나 좋아서 뛰어들었다. 나는 좋아서 뛰어들었지만, 그만큼 가정은 엉망이 되었다. 제일 큰 문제가 된 것은 생활고였다. 가장이 집에 돈을 갖다 주지 못하니 건강치 못한 아내가 직장에 간들 얼마나 받는지 뻔한 일이었다.

지역교회 목사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장애의 몸을 가지고, 우리도 못하는 일을 한다면서 여러 모양으로 힘을 실어주니 더 신이 난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밤 10시는 좀 이른 편이고, 자정이 넘어서 집에 들어가는 날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힘이 그렇게 넘쳤는지 상상도 못할 일을 해 냈던 것이다.

장애인들의 병원가는 일, 때에 맞추어 나들이 가는 일, 매주 화요일 날의 모임, 장애인 가정의 심방, 후원자의 개척, 각 교회에 장애인에 대한 계몽, 수화교실, 사랑의 캠프, 밀알의 밤등 수많은 행사를 치뤄 냈다. 물론 자원 봉사자들의 수고는 잊을수 없이 감사하다.

  이렇게 분주하게 사역을 하는 동안 어느덧 4년이 지났다. 수 많은 장애인들이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 나 혼자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20여년 동안 집안에만 지내던 경아, 중도 장애인으로 삶을 포기했던 산이, 오토바이 사고로 전신 마비가 되어있는 찬이, 많은 장애인들이 소망을 갖고 세상을 긍정적인 사고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재능을 발굴하여 음악을 한다든지, 문학 활동을 한다든지, 나름대로 각자의 재능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용인장로교회 전도사로 사역하다가 목사 안수를 받음으로 교회 전도사직을 사임하고, 선교단과 개척교회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용인지역 각 교회에 장애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전했더니, 각 교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4년 반 동안의 장애인 선교 사역은 지역 사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기쁨과 감사 속에서 주님의 뜻을 행한 나는 또 다른 사역을 준비하게 되었다. 다른 사역을 위해 장애인 선교 사역은 다른 목사님에게 위임하게 되었다. 내가 4년여 장애인 사역에 밑거름이 되었다면, 새로 오신 목사님은 그들이 더 전진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한 것이다.

밀알 사역을 그만 둔 나는 새로운 사역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 새로운 사역은 병원에 있는 환우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얼마 후에 나는 지방에 있는 종합병원에 원목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병원의 원장님이 원목을 구하는데, 꼭 장애인 목사님을 청빙하여 환자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그들이 병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병원교회 설립

 

  나와 아내, 그리고 안전도사는 충북음성 S병원에 도착 원장님과 면담을 하였다.

우리 병원은 기독병원으로써 환자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실 목회자를 찾고 있다

하기에 제가 병원에 입원하여 환자로서 경험도 있어서 환자들의 마음을 알고 있다

며 대화를 하였다. 원장님은 나에 대한 첫 인상이 마음에 안 드는지, 그리 기뻐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나와 아내는 이곳은 내가 와야 할 곳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웬지 마음이 그리 편하지 못했다.

다시 마음을 정리하고 목회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수요예배 시간에 정장을 차려 입은 신사 한분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나는 생각하기를 우리 교회 근처에 소규모 기업체가 많이 있어 믿음이 좋은 사장님이 수요예배에 참석했을 것이라 여겼다. 예배를 마친 후 차 한잔 나누며 대화를 나누니 충북 음성에서 왔다는 것이다.

음성S 병원 기획실장인데, 목사님 우리 병원으로 가지죠!”라고 하는 것이다.

기획실장의 말에 의하면 원목을 청빙하는 일은 원장님께 위임을 받았다며, 나를 살펴보러 온 것이다. “더 기도해 보고 결정하겠노라!” 하고 기도하며 아내와 상의를 했다. ‘원장님과 면담했을 때의 생각보다는, 병원150여명의 직원과 환자들을 위해서 가겠노라!’ 결정하고 2002년 늦 가을에 S병원 원목으로 부임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신우회장이 반겨주며

"목사님~ 잘 오셨어요, 우리는 병원의 환자와 직원들을 위로하고 기도해 주실분이 필요해요

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병원은 지난 5월에 파업으로 인하여 직장이 폐쇄되었다가 현 원장님이 병원의 모든 것을 인수하여 아직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한 상태였다.

나의 모든 일은 기획실장 장로님과 진행이 되었다. 병원 안에 예배처소를 만드는 일, 병원직원과 교제 나누고, 환자들에게 인사드리기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한 달여 시간이 지나 예배처소가 예쁘게 만들어져 입당예배를 드렸다.

나의 하루 일정이라면 새벽5시에 출근 새벽 기도 드리고, 중환자실 환자 돌아보고, 일반 병실의 환자들 돌보다 보면 하루해가 저물고 저녁 8시쯤 중환자실 환자 돌아보고 퇴근하였다.

모든 일이 순조로이 진행되던 어느날 원장님 말씀이 목사님, 저 미국에 다녀와야 겠습니다

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우리 둘째 딸이 미국에서 약혼을 하는데, 혹시 우리 사위가 누군지 아세요?”

아니요 저에게 말해 주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웃으며

제 사위가 유 0 0입니다

네 그러세요. 축하드립니다. 제가 기도해 드릴테니 미국에 잘 다녀 오세요

라고 헤어졌다. 원장님의 사위는 유명 연예인으로 어떤 사유로 인해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는 친구였다.

모든게 새롭게 시작된 때문인지 병원도 직원들도 교회도 활기차게 움직였다. 신우회원들의 활동은 병원내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열심을 냈다. 그렇게 2002년이 저물어 갔다. 원장님과 사모님이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여 새로 시작하는 교회에 큰 힘이 되었다. 

 

 

낙태 시켜 줘요

 

  20021227일 나는 서울 국립의료원 산부인과에 있었다.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예쁜 딸 아이를 낳은 선씨는 아이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미국으로 입양을 보낸 것이다. 내가 밀알사역을 그만 둔지 한참 되었어도, 나의 기쁨이 되었던 친구들은 우리 집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전화를 하기도 했다. 내가 병원 원목으로 떠나기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선씨가 우리 집에 왔는데, 임신 몇 개월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랬다. 그 몸에 무슨 임신이냐고... 선씨 말로는 아이 아빠가 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도저히 아이 키울 능력이 없으니, 낙태를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다. 홍이의 가족들도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낙태비용의 얼마를 드릴테니 없었던 일로 처리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참 난처한 일이다. 한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목회자가 어찌 생명을 죽이는데 앞장설 수 있는가!’하여 홍이 가족의 부탁을 뿌리치고,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고심을 했다.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고민하고 있는데, “낙태반대 연합회란 단체를 알게 되어 그곳에 도움을 청하기로 하였다. 그곳의 도움을 받아 앞으로의 일에 대하여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선씨의 동생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

목사님! 우리 누나 아기를 빨리 낙태시켜 달라!”

고 난리를 친다.

우리 누나 몸이 저런데(피부병과 위생불결)밥은 먹지 않고, 라면만 먹고, 담배도 피우고, 술을 먹기에 온전한 아기가 태어나지 못해요

라며 낙태시켜 달란다. 누가 봐도 선씨와 홍이를 본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저런 상태에서 아이가 정상적으로 태어나면 기적이라고...

선씨의 배는 점점 불러오고 대책을 시급하게 세우기 위해 낙반련 간사를 만났더니, 홀트아동 복지회를 소개시켜 준다. 선씨와 밀알 후임 이재학목사님과 수원홀트 아동복지회에 갔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아이를 낳은 즉시 입양시키는 쪽으로 결정하고, 그곳의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일을 처리하고 나는 병원 원목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출산이 임박한 선씨는 국립의료원에 입원한 뒤 나에게 전화를 했다. 찾아가 보니, 이미 출산하고 몸조리를 하고 있었다. 신생아실에 있는 아이를 보았는데, 이런 기적이 있을까! 아이가 너무나 예쁘게 태어난 것이다. 그날 밤 아이는 홀트를 통하여 이 나라를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돌아와 2002년 송년의 밤을 보냈다. 

 

독 설

 

병원 환자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위로하는 일을 하던 어느 날, 한 형제분이 나를 부르며 하는 말

새로 목사님이 왔다기에 두 달 정도 지켜보았는데 조금 마음에 든다

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수 형제는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못했다. 척추를 다쳐 오랫동안 병원생활을 하며, 교인들에 대한 악감정은 극에 달해 있었다.

어느 날, 병원 현관에 있던 수 형제는 시내 모 교회 장로가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손가락질을 하며

××가 교회 장로래, 이 개××야 여긴 왜 와!”

하고 독설을 퍼 붓는다. 왜 그렇게 교회와 교인들에게 악감정이 많은가 들어보니 사연은 이랬다.

딸이 J교회 학생부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교회에 여자 교육전도사가 갓 부임하였는데, 승합차에 정원을 초과하여 학생들을 태우고, 음성꽃동네로 봉사를 가는 도중 전도사의 운전부주의로 전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 사고로 인하여 자신의 딸과 여러 학생들이 중.경상을 입었는데, 사고 후 수습 문제로 교회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고 후 J교회는 모든 책임을 갓 부임한 교육전도사에게 지우고, 교회쪽에서는 손해배상이라든지 여타 해결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연을 듣고 난후, 수 형제를 자주 만나 상담을 하였다.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줄려고 해서 그런지, 그도 마음을 열고 다가와 속에 감추고 있던 고민을 하나씩 꺼내기도 했다. 자주 만나 친해져서 그런지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는 말, 본인이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형이 되고, 나더러 동생이 되어달라고 하기에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이미 서로의 마음을 열고 있었기에 무슨 말을 해도 오해가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J교회 목사가 심방차 병원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더니 또 독설을 퍼붓는다.

저 목사 ××는 왜 오는 거야!”

하기에

목사동생을 둔 사람이 그렇게 욕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

고 하니 머슥해 하며 앞으로는 조심하겠다고 한다.

수 형제는 외로운 사람이다.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한 사람이다. 오랫동안 병마와 싸우다보니 그 마음에 악한 감정만 쌓여있고, 그의 성격 때문인지 아내와 큰 딸은 집을 떠 난지 오래되었고, 작은 딸과 둘이 살고 있었다. 내가 그의 삶속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마음을 위로하고 함께 해 주었더니, 음성을 떠난 지금까지 교제하며, 좋은 꿀이라도 따게 되면 나에게 주려고 찾아오는 사람이다. 

 

 

병원장의 죽음

 

  2003년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모든 일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주일 예배에 원장 내외분이 참석치 않는 것이다. 나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 목회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하고 고민이 되기도 했다. 여러 가지로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기획실장 장로님께 무슨 일로 교회에 안나오는가? 여쭈어도 당신도 모른다고 했다.

얼마간 계속해서 안 나오기에 원장 비서에게 여쭈어 보니 병원 운영이 어려워, 토요일에 운영자금을 구하려 백방으로 뛰어다닌다고 한다. ‘참 이상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병원 운영에 대한 지혜를 구해야 할 텐데... 토요일 오후에 나가 월요일 아침에 나오니 주일을 지키지 않고서도 돈을 구할 수 있을까?’ 의아심만 가득 들었다.

이런 의문 가운데 6개월이 지난 첫 주일날, 원장 사모께서 교회에 출석하더니 예배도중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

목사님, 예배 마친 후에 저와 상담 좀 해 주세요!”

무슨 어려움이 있는가 하여 예배 후에 점심식사하고 상담을 하였다.

원장님과 30여년을 살아오면서 어려웠던 것을 말하였다. 누가 보아도 멋진 부부로 보여서 그렇게 어려운 일이 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저녁 예배 전까지 6시간에 걸쳐 고통스런 세월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때 병원 상태는 운영난으로 인하여 임금이 몇 달 체불되고, 병원 운영도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분위기가 뒤숭숭 하였다. 원장 사모와 상담을 한 며칠 뒤, 원장님이 심히 피곤해 보이는 모습으로 교회로 찾아왔다.

목사님!, 제가 아무래도 자살을 하든지, 감옥을 가든지 해야겠습니다

아니 무슨 그런 말을...

예수 믿는 사람에게서 그런 말이 나오니 나도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깜짝 놀란 나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목숨을 끊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냐고 물으니,

제가 공금을 횡령했는데 갚을 길이 없으니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아무리 큰 잘못을 하였더라도 법적인 체벌을 받으면 되는 것이지, 무슨 자살까지 생각을 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날 이후 병원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부도가 날 것이라는 말과 어느 투자자가 새롭게 나타날 것이라는 말이 흘러 다니고 있었다. 노조원들은 나름대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그들이 움직일수록 원장님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병원 전체 흐름을 알 수 없기에 나와 기획실장 장로님은 답답하기만 했다. 20여일간 수시로 원장님과 상담하며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자살은 안 된다

고 권면 하였다.

그 날도 병원 운영문제로 심신이 피곤한 상태에서 원장, 기획실장과 같이 저녁식사를 하였다. 원장님은 입맛이 없다며 몇 숟갈 뜨더니 내려놓는다. 식사 후 원장실에 모여 새로운 대책을 강구해 보아도 특별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12시경 기획실장은 나를 부르더니

오늘밤 느낌이 안 좋으니 잘 살펴보라

며 퇴근하고, 나는 원장실에 남아 대화를 나누었다.

잠시 후 노조 간부가 들어오더니, 병원운영이 정상적으로 회복되기 어려운 것을 알았는지, 모든 의료기기와 집기를 노조에 위임한다는 각서를 요구하니 원장님은 순순히 각서를 쓰고 서명해 주었다. 노조 간부가 돌아가고 둘만 남아 새벽2시까지 이야기 나누던 중,

목사님 피곤하신데 좀 쉬세요하기에

원장님도 좀 쉬세요

하고 교회 침대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새벽기도 시간이 되어 일어나 잠시 기도하고, 나가니 잘 계시기에 다시 들어와 눈을 붙이고, 0730분경 나가보니 원장님이 보이지 않기에 찾다가 이사장실 문을 열어보니 아무도 없다. 돌아서는데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피곤 할텐데, 집에 들어가 쉬고 오세요

한다.

그때까지 아무이상 없기에 기획실장과 산업의학과장, 셋이서 병원 정상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 원장님께 말씀드리러 갔더니 의자에 앉아 있는데 머리를 숙이고 있다. 탁자 위에는 제초제 농약병이 있다. 10여분 사이 잠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자살 시도를 한 것이다.

급히 병원 응급실에서 위세척을 하고, 천안 순천향 대학병원으로 옮겨 위세척과 혈액 투석을 하여 살려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복용량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5시간 만에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가족들이 모두 미국에 체류하고 있어서 장례절차를 원장 동생하고 상의 했다.

원장님이 두레마을에 헌신을 많이 했으니, 0 0 목사님을 모시고 장례 치루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아닙니다. 목사님이 집례해 주시면 좋겠다고 한다.

원장님의 시신은 고대 안암병원 영안실에 안치 되었고, 장례절차에 접어들었다. 미국에서 작은 딸과 사위가 들어왔다. 사위의 유명세 때문인지 취재진으로 인해 장례식장이 발디딜 틈도 없이 붐볐다. 성남 승화원에서 화장절차를 밟고 한 줌의 재로 변한 원장님, ‘그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는 없지만, 당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을 정도로 고통이 컸는가!는 당신만 알 것이다. 


주인 없는 병원

 

모든 장례절차를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오니 어수선하다. 병원의 주인이 없으니 진료도 그렇고 입원환자들도 불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당시 병원에는 진폐 환자가 90여명 있었다. 진폐 환자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맑은 공기다. 전국에 많은 진폐 병원 중에 음성S병원이 생활하기에 가장 좋다고 했다.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다. 먼저 입원한 환자들을 이송해야 한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진폐 환자중에 이송 중에 숨진 사람도 있다고 했다. 주인 없는 병원은 두달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절차에 들어갔다. 150여명의 실직과 3개월의 급여 체불, 오랫동안 근무한 분들은 퇴직금도 받지 못한 상태로 떠나야 했다.(후에 노동부를 통해 체불임금과 퇴직금은 정리되었다)

나도 내일부터는 병원에 출근할 일이 없다. 병원문은 닫히고 환자도 없으니 말 그대로 실직자가 된 것이다. 병원 문을 닫고 난 뒤, 노조원들은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받아야 한다고 병원을 떠나지 않은 것이다. 후에 노조 위원장을 만나니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목사님 오는 것을 많이 반대 했어요. 목사님 사례 줄 돈으로 노조원 복지를 위해 쓰라!”

고 했지만 원목 채용하는 일에 대해서는 원장님이 양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알아보니 병원 직원 채용하는데 있어서 노조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하나 채용하는데도 노조의 간섭이 있었으니 병원 운영 하는 데는 어떠했으랴....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집에만 있던 나는 무엇인가 해야 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이 상황에서 교회를 개척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예배 처소를 알아보려 시내에 나갔더니, 몇 군데 좋은 곳이 있어도 월세를 감당할 힘이 없었다. 당장 집안 생활이 되지 않는다. 병원에 있을 때는 한 달에 얼마의 사례를 받아 살아갈 수 있었지만, 지금 상황은 돈 나오는 곳이 없다.

아내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 날 아내는

우리 다시 용인으로 돌아가요, 거기는 우리 집도 있고 예배당도 있으니 돌아가자

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집과 교회는 다른 목사님이 목회하고 있었고, 계약 기간도 많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아내는 후임 목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다시 돌아가자고 보챈다. 참 나의 나쁜 점이라면 고집과 독선이 심하다.

모든 일을 아내와 상의 하여 결정하기보다는, 이미 결정된 사항을 통보하고 따라오라는 식이다. 이런 점이 아내와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아내의 말에 나는 생각했다. ‘하나님이 이곳까지 오게 한 것은 무슨 뜻이 있을 것이다며 그 뜻을 찾아보려 애를 써도 답은 보이지 않는다.

당장 시급한 민생고 때문에 움직여야 할 때가 되어 청주로 나가 택시 운전자격증 시험에 응시하였다. 이미 나는 중증 장애인이어서 아무 일이나 할 수도 없고,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도 없다. 그렇지만 택시 운전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한 달후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충주에 있는 택시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근무조건은 24시간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이다.

나에게 있는 장점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충주 지리를 모르면서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길을 모르고 헤매면 손님께서 잘 가르쳐 준다.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 길을 몰라 헤맬 일은 없었지만, 지나친 과로로 인하여 몸이 견디기 힘들었다. 충주에서 음성집까지 26km, 새벽2-3시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려면 정신이 혼미해지기까지 한다. ‘이러다간 제 명에 못죽겠다싶어 택시 일을 그만두고, 아내의 말을 거부한 채 충주로 이사를 한 것이다.

충주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내는 근처에 가까운 교회에 나갔다가 심한 충격과 상처만 받고 왔다. 그 교회 목사님 왈

사모가 기도를 안 해서 목사님이 고생이 많다

라는 것이다. 충주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 힘을 써봐도 좋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 서너 달이 지난 어느날 아내가 말한다.

우리 평택으로 가요

평택

네 평택은 동생도 있고 서로 의지할 수 있으니 평택에서 재기를 꿈꾸자

라는 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평택에는 처제의 시어머니 권사님이 계셔서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 고집만 피울수가 없어

그럼 그렇게 할까

이 소리 한마디에 아내와 아이들은 살았다는 듯이 기뻐했다. 새 학기가 다가오지만 사는 집의 임대 보증금이 빠지지 않아 아내와 아이들 먼저 처제 집으로 전출 시키고, 나는 한달 후에 보증금을 받아가지고 평택으로 이사를 했다.

2004년 봄 평택 지하방으로 이사 온, 나는 어떻게 하면 목회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며 근처 교회에 출석하며 열심히 기도했다.


사라진 TV

 

  하는 일이라곤 새벽기도 다녀오고, 낮에는 교단 총회 사무실 업무를 잠시 보고, 집에 오면 그리 할 일이 없다. 다른 분들은 안 그렇겠지만, 시간이 많으면 성경도 많이 보고 더 열심히 기도할테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컴컴한 지하 방에서 지내다보니 점점 기력도 잃어가고 전쟁에서 패배한 군인처럼 낙망한 상태로 변해간다. 다시 장애인 선교회 사무실에 나가 일을 해보아도 예전처럼 활력이 없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는 CTS-TV 안내 자막에 '생명의 법 세미나', 가까운 오산 광은 기도원에서 무료 집회로 열리고 있으니 한번 참석해 보잔다. 월요일 오후부터 수요일 저녁까지였다. 아내나 가보라며 외면하다가 수요일 오후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날의 말씀은 율법에 관한 말씀이었다. 11: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내가 성경에 대해 얼마나 무지 했는가! 탄로 난 순간이었다. ‘성경에 저런 구절이 있었나?’ 하고 반문해 본다. 그동안 무수히 성경을 보았어도, 이런 말씀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말씀을 듣기보다 정신없이 뛰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모르고 불편한 몸으로 이웃을 사랑하겠다고 달려들었으니, 당연히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날 집회에 참석하여 율법과 복음은 구분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온 것이다.

새로운 말씀을 들었으나 지속되지 못하니, 피폐된 생활로 빠져든다. 영화채널, 스포츠채널,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내 본성이 살아나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영화와 스포츠 경기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나 혼자만 미쳐서 있으면 괜찮은데, 아들까지 같이 보고 있다.

얼마동안 이런 생활을 하니 아내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TV가 없어진 것이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아내가 TV를 집밖에 내 놓았더니 누군가가 집어간 것이다. 막내아들 하는 말

엄마 TV 누구 준거야, 2만원 받고 팔지 그럼 맛있는 거 사 먹을 수 있는데

라며 상당히 아쉬워했다. 그만큼 우리 생활이 궁핍했었다.

이날 우리 집에서 TV가 사라진 이후 새로 TV가 등장하기 까지는 1년 반 이상 걸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경기는 하나도 보지 못했지만,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3 . 진리 안에서 자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2:4)



소망이 보인다 

  아내의 이런 결단으로 새로운 것을 찾기 시작했다. 먼저 번 집회에 신상명세를 적어냈더니, ‘00차 집회가 있으니 참석하라기에 이번에는 첫날부터 참석 하였다. 나에게는 독특한 습성이 있다. 무슨 일이든 내 마음속에 옳다 인정만 되면, 집중하여 몰두하는 습성이 있다. 장애인 사역에 전심 전력하다 무엇인가 만족을 느끼고 다른 사역을 찾는다. 밀알 사역을 그만 두고 개척교회를 할때다. 성도들의 믿음 성장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어느 목사님의 말에 의하면, 성도들의 믿음 성장을 위해선 방해요소인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기에 인천 모 교회 목사님에게 내적치유를 받으러 다녔다.

 내적치유를 하는 목사의 말을 들어보니 성도들이 축복받지 못하고,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는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들으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후에 어느 목사님이 쓴책 중에 당신의 말이 기적을 이룬다에서 처럼, 당시 무슨 말을 듣든지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그 길을 향해 달렸다.

8개월여 다녔을 때, 무엇인가 느낌이 그렇다. 성도들의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목사는 성전 건축을 위해 은연중에 헌금을 강요한다. 오히려 아내와 처제는 상처만 더 입게 되어 그만 가겠다고 하니

목사님! 정신 차려, 사모님과 처제가 정신병원에 가게 된다

며 나라도 열심히 참석하여 아내와 처제의 상처를 치유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정신병원을 가도 내가 감당 할테니라며 돌아왔다.

그 목사는 며칠 뒤 우리 교회로 찾아와

멀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라는 독설을 남기고 떠나갔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심판보다는 내 지혜가 부족하여 고난을 당했던 것이다.

한번은 수원의 모 기도원에 있는 원장 목사님이다. 어느 집회에 참석하여 말씀을 들어보니,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 마음속으로 목회를 하려면 저분처럼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목사님의 말에 의하면

하루 세 시간 잠자고, 기도를 몇 시간 하고, 14년 동안 15번집에 들어가고, 오직 주님만을 위해 충성하고 있다

는 것이다. ‘~대단하다. 저분에게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어 배울 것이 많겠다라는 생각으로 아내와 성도들과 함께 기도원집회에 참석했다.

 수 천명의 성도들이 운집하여 목사님의 말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분위기가 너무 뜨거워 침체된 나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될까 싶어, 목회자 특별반에 들어가 한 학기를 배웠다. 결론은 그 목사님 처럼 하려면 내 몸이 건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나는 그분처럼 할 수 없기에 기도원 출입을 그만 두었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나는 단순 무식형인가? 이 성격 때문에 가족들과 성도들을 힘들게 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성격의 내가 생명의 법 세미나에 첫날부터 참석하게 된 것이다. 나는 성격상 학교에 가든, 세미나에 참석하든, 뒷자리에 앉지 않는다. 맨 앞자리에 앉아 강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침이 튀면 맞을 정도의 자리에 앉는다.

저분은 어떻게 무엇을 하였기에 이런 세미나까지 인도하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23일간의 세미나는 나에게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주었다. 세미나를 마친 주최 측에서는

집중적으로 공부를 해야 생명의 법안에서 살고 누릴 수 있다

며 전남 광주에 있는 교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12일로 집중 세미나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강사님의 책과 강의 테잎을 들으니 생명의 법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며, 한 달에 한 번씩 광주로 내려가 1년 여간 공부하니 무엇인가 느껴지는 듯 했다. 강의 요지는 이런 것이다. “우리가 예수 생명 안에서 풍성함을 누리고 살아야 하는데, 죄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그분과 함께 살아야 하는데, 그분과 함께 살지 못해서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자꾸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이다. 살전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제 생명의 법을 통하여 그분과 함께 살기만 하면 죄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영적, 육적 축복과 신유의 능력이 나타나 교회도 부흥하고, 성도들도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목사님들이 고생하는 것은 그분과 함께 살지 않고, 내가 목회를 하려고 해서 그런 것이니, 그분께 맡기고 그분과 함께 살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성격 장애인지 모르지만, 교회의 대 부흥이나 땅에 축복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열심히 해서 부흥하면 좋겠지만, ‘왜 내 마음속에 진정한 평안이 없는가?’에 관심이 많았다. 8:32절의 말씀처럼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말씀에 따라 진리가 나를 어떻게 자유케 해 주는 것인가에 관심이었다. 1년여 집중세미나와 중간, 중간 기도원 세미나까지 이 정도면 무엇인가 결론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왜 나는 사마리아 우물가 여인처럼 갈증을 느끼고 있을 것일까? 내 자신에 대해 의아심이 생겼다. 강사님은 율법 세미나를 인도하면서, 7:19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하며2:22 “율법은 쓰면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간다율법은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집중세미나 때문에 강사님의 교회에 가보면 율법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건 또 무엇인가? 나를 깊은 고뇌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런 고뇌 가운데 서재 의자에 앉아 책장을 쳐다보니, 구원의 커드라인과 율법의 커트라인 두 권의 책이 보이는 것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일곱 번의 이사를 다니며, 아내가 간증책이나 신학책 중에 보지 않는 것은 이사할 때 힘들다며 많이 버렸다. 그런데 이 두 권의 책은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무엇인가 고민이 풀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얼른 꺼내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생명의 법 세미나를 통해 율법에 대해 조금 눈을 뜬 상태여서, 율법의 커트라인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 율법이 이런 것이구나하고 감격을 하였다.

내 성격 중에 또 하나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좋은 것을 발견하면 참지 못한다. 책을 읽고 난 뒤 즉시 서울 다사랑 교회 신만철 목사님께 전화하니, 매주 목요일 오전에 율법 세미나를 인도한다는 것이다. 목요일날 성경공부에 참석해보니 소경이 눈을 뜨는 것처럼 성경의 진리가 무엇인지 눈이 떠지게 된 것이다.

너무 좋아 그동안 나에게 사랑을 많이 베풀어준 목사님에게, 다음 주에 꼭 와서 같이 듣자고 하니 참석하였다. 그날 성경공부는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이 말씀을 통해 신목사님이 강의하니, 함께 동참한 목사님이 당신이 행한 업적을 가르키며, 교회를 몇 곳 개척한일, 재산을 팔아 이웃을 사랑한 일등으로 두어 시간 논쟁을 벌였다. 나에게는

이단에 빠졌다고 가더니 3년여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200511월 말까지 율법 세미나는 계속 되었고, 나는 성경 보는 눈이 열리기 시작했다. 후에 살전5:10 말씀을 생각하며, 내가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니 참 부끄럽다. 구원이 없으면 성령도 없고, 내 속에 예수도 없다. 구원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려고 몸부림쳤으니, 진리가 주는 자유를 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구원 없는 나

  구원의 커트라인과 율법의 커트라인은 이미 10년 전에 읽었던 책이다. 그때 왜 금 같은 보석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이미 내 마음에 장애인 사역, 즉 불쌍한 장애인을 내 몸같이 사랑하겠다고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과 진리하고는 너무나 반대쪽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예수님이 23:15 “교인하나를 얻으면 배나 지옥자식을 만든다라는 말씀처럼, 나는 소경이 되어 복음을 왜곡시켜 내가 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킨 것이다.

두 달여 세미나에 참석하니, 영적의사가 내 형편을 보니 어떠했으랴! 신목사님께서는

“12월 중순경에 목사님 교회에서 구원세미나를 하자

라고 하기에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준비하였다.

200512월 중순...

월요일 저녁부터 4일 동안 저녁에, 2시간씩 집회를 하기로 했는데, 하루 연장하여 5일동안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니, 내 영혼의 구원은 없었던 것이다. ‘주님의 사랑을 행해야 한다며 몸과 마음이 지치도록 하였던 그것이, 내 영혼의 구원까지 이루어진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거울에 비쳐본 나는 구원, 영생, 생명, , 거듭남이 없이 주의 일을 한다고 날뛰어 다녔으니 얼마나 비통한 일인지 모른다.

예수님 말씀에 15:14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는 말씀처럼, 그 동안 나는 영혼의 소경이 되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덩이에 빠뜨렀는가! 소리 지르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그날 강대상에서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동안 구원도 없이 여러분들을 인도했습니다. 구원 없는 목사의 말을 따랐으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저도 저를 가르쳐준 저의 스승이 영혼구원의 길이 아니라, 이웃 사랑의 길로 인도하여 사랑을 한다고 몸부림치다 여러분만 고생을 시켰습니다. 진심으로 사죄드리니 이제부터 열심히 복음의 말씀을 듣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바라건대 대한민국 교회 목사님들 가운데 소경목사가 나 혼자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200512월은 교회 다닌지, 18년 만에 내 마음에 새롭게 구원이 정립된 잊을 수 없는 겨울이었다.

 

이단에 빠졌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 예수를 만나고, 너무 기뻐서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라고 동네에 전한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이 구원의 기쁨을 전하고 싶었다. 장애인 사역을 하는 동안 나를 사랑해 주시고, 헌신, 봉사해 주신 분들이 생각나, 그들에게 진 빚을 갚을 길은 구원의 복음을 바르게 알게 하여, 구원의 기쁨을 함께 누리다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옛 교회에 함께 계시던 k집사님이 생각이 나서 그 분도 이 기쁨을 알면 기뻐 뛰리라, 생각하고 복음의 말씀을 전하니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라 너무 시시하단다’ ‘구원은 벌써 받았고, 이제 축복만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집사님은 일찍이 혼자 몸이 되어 자녀들을 대학까지 마치게 하고, 자녀들이 다 잘 된 것으로 하나님이 축복도 받고 구원도 받았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레 무슨 구원이냐고 묻는다.

아닙니다. 집사님 구원은 100%예수님의 공로로만 됩니다

라고 하니

나 예수 믿고 있으며, 예수 믿었으니 구원받았다

라며 더 이상 성경에 대해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분명히 땅의 잘된 것으로 생명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12:15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내가 교회 나와 이전보다 마음도 평안하고, 자식 잘되고, 사업 잘되고, 성공한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요, 영혼구원이라면 성경 말씀이 틀린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바울은 예수 믿고 오히려 생활은 더 궁핍해지고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받은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시대가 달라 지금은 축복을 받아야 예수 잘 믿는 증거라는 것이다.

내 자신을 돌아보니 내 속에 욕심, 시기, 질투, 정욕등 하나님께 원수 되는 것들이 너무도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예수의 이름을 빌려 내 속에 잠재되어 있던 욕심을 이루며 그것을 축복이라고 말한다면, 그 예수는 성경속의 예수와 다른 것이다.

나는 또 다른 고마운 분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들어보라 권하지만,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기보다는 지금까지 헌신하고, 봉사하고, 주를 섬겼으니 천국은 당연한 것이고, 이제 올 것은 축복밖에 없다며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집사, 권사, 장로, 목사님들에게

복음이 이런 것입니다!”

라고 전하면 이런 말로 되돌아온다.

공목사 참 안됐어, 그렇게 열심히 장애인을 위해 헌신하더니만, 어느 목사 잘못만나 이단에 빠졌으니 조심 해야겠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단인가?

'육체의 행위로 의로워지려 하는 사람에게 믿음으로 의로워지라'하였고, 율법에서 벗어나 진리의 자유를 맛보라고 하니 이단이라고 하면 예수님 시대에 이단은 누구였는가?

그동안 내가 주를 위해 충성 봉사할 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못 누리고, 나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아내를 사단으로 치부하고, 폭력까지 휘둘렀던 과거의 나, 복음을 듣고 함께 기뻐하며, 천국을 소망하며,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나, 어느 때가 구원받은 모습인지 독자분들이 판단해 주기 원한다.

 

 

믿음이란? 

  내가 주안에서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과거의 나의 모습은 이랬다. 몸이 불편한 가운데 나보다 더 연약한 장애인들을 돌보고, 그들이 기뻐할 때 같이 기뻐했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의 기쁨은 이런 것이다. 내가 연약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였다는 뿌듯함으로 인한 순간의 기쁨이었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하여 칭찬을 받은들 그 기쁨이 영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기쁨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것이다. 하박국의 고백처럼 세상에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기쁨인 것이다. 이 기쁨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은 교회에 나가면 저절로 생기는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전하는가에 따라서 듣는 사람의 믿음이 결정되는 것이다.

율법을 들으면, 율법대로 믿는다.

축복을 들으면, 축복받으려고 예수를 믿는다.

이웃사랑을 들으면, 이웃사랑하려고 예수를 믿는다.

복음을 들으면 예수는 구원 때문에, 곧 땅의 축복이 아니라, 하늘의 영생 때문에 믿는다.

내가 왜 죽도록 충성했는가!’ 하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의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10:17)인 것이다. 곧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 나가서 행함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 듣고, 그 사실을 알 때 믿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성경의 핵심은 땅을 추구하지 않는다. 곧 땅의 축복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 성경의 핵심은 영혼의 구원 곧 영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말씀드린바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어떻게 말씀을 들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로부터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섭리를 가르침 받아, 그 사실이 마음으로 믿어질 때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성경은 비밀의 책이기에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장애인 사역에 몸담고 있을 때는 예수는 장애인 때문에 이 세상에 오신 것 같다. 병든 자가 보면 병을 치료하는 예수로 보이고, 가난한 자는 축복의 예수로 보이는 것이다. 일반 성도들은 잘 모른다. 나를 인도하는 목자가 소경인지 아닌지, 분별하지 못하고 따라가고 있다.

그러면서 겉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면 능력 있는 목사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학력, 능력이 부족해도 진실한 복음의 말씀을 전하면 외면당한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이것 때문에 슬퍼할 전도자는 없을 것이다. 다만 평생을 주여, 주여 하고 부르다 지옥가는 영혼들 때문에 슬퍼할 뿐이다.

  

무엇을 믿는가?

내가 무엇을 믿는다라는 것은 그 믿음의 대상과 왜 믿어야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교회 다닌다고 나도 가는 것이 아니며, 교회에 가는 목적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나는 예수를 믿음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내가 어떤 대상을 믿을 때, 결론 없이 무조건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수를 믿어 얻을 것이 무엇인가?

땅의 축복인가! 하늘의 영생 축복인가!

아니면 영혼구원도 받고, 땅의 축복도 받는 것인가!

그 동안 나의 신앙은 영혼구원은 물론이요, 땅의 축복도 받으려는 마음이 있었다. 왜냐면, 죽도록 충성하면 가정은 모두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6:24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두 마리의 토끼를 좇다보면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영혼구원과 축복을 동시에 좇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부끄러운 신앙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 이런 신앙생활을 하며 그렇게 가르쳤는가하면 성경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구약은 율법, 신약은 복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경을 볼 때 잘 구분하여 십자가 이전과 이후의 말씀이 어떻게 달리 보아야 하는지, 구분하기보다는 소경된 눈으로 이해하여 또 다른 사람을 소경으로 만든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며, 악보다는 선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세상 사람들의 삶속을 보노라면, 무슨 덕을 쌓거나 선한 일을 하다가 죽으면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악행을 저지르던 사람이 죽으면 나쁜 곳으로 갔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말은 성경 밖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성경 속에서는 착한 일이나 인간의 공로로 천국(영생)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18:18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어떤 부자 관원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 얻습니까? 라고 예수님께 질문하자,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하는 부자는 자기 것이 많은 자, 곧 자기 의가 많은 사람이다.

물질적인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그 어떤 행위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이다.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 공로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인간은 이웃을 사랑하려 희생을 하거나, 헌신하면 그 속에 의가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이웃을 사랑해도 자기의가 생겨나지 않는다)

아직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 자는 자기의 행위를 주 앞에 내놓으려는 속성이 있는 것이다.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율법(모세율법, 이방인은 양심의 율법.2:15)의 행위로 무엇인가 의롭게 되려는 자는,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냐면, 율법은 진리가 아니기에 우리를 자유케 하여주지 못한다. 율법은 행하면 행할수록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율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행위로 의로워 지려하지만, 율법의 요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하게 된다.

인간에게는 영원히 죽지 않으려는 영생본능이 있다. 그러나 우리 조상 아담이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인해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다. 내 속의 영은 하나님과 단절된 사망상태이며, 내 육신은 때가 되면 죽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구원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구원에 이르러 영생하기를 원하신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성경말씀을 통해 내 처지가 어떠한가에 대해서 깨달아야 한다. 아담의 씨로 태어난 인간은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속사람 영혼은 이미 사망 심판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죽음의 과녁을 향해 달려갈 뿐 아니라, 그 영혼의 종국은 지옥이라는 것이다. 다만 나나 여러분의 육신이 살아 있어서 내 속사람, 영혼이 지옥에 도달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육신의 생명이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그 누구도 모른다.

예수님은 13:4-5 “실로암 망대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 회개하고, 가장 시급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3:16절에서 말하듯이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곧 지옥가고 있는 내가 예수께서 은혜를 베풀어준 사실을 믿고, 구원에 이르면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원을 받아 영생 곧 내 속사람 영혼이 영원이 산다는 것이다.

에이! 살아서 잘 살아야지 죽어서 영생하면 무엇해!” 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가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은 영생에 목숨을 건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그러한 삶을 산 것이다. 땅에서의 행복보다는 저 하늘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음으로 나아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통해 땅의 축복을 받으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의 핵심을 놓친 사람들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 놓인 문제로 울고 불고,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몸부림친다.

그러나 하나님은 땅의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문제를 말하기에 땅의 문제에 관심이 없다. 땅의 문제는 신자나 불신자에게 일반 은총으로 주신 것이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나는 영원히 지옥갈 존재였다는 것과, 그 지옥갈 죄값을 예수님이 대신지고 십자가에서 치룬 그 사실만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예수는 내 영혼의 구주가 될 뿐만 아니라, 내 영혼이 지옥으로부터 구원 받은 그 은혜로 인하여 그분만 생각하면 감사하고 기쁨이 넘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 사람의

 

하나님의 의는 무엇이며, 사람의 의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물에 빠지거나 불속에 있거나, 위험한 곳으로부터 사람을 구하면 그를 의롭다, 또는 의인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모르거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그는 의인이 맞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의인의 동상을 세워 그의 정신을 본받고 기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선을 추구하려 한다. 그런 마음에 십일조, 주일성수, 새벽기도, 헌신, 봉사, 충성을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고, 구원을 받게 된다고 가르침을 받으면, 과거의 나의 모습처럼 몸이 부서져라 하고 달려드는 것이다.

그런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좋은 자리에 앉을 것이라는 믿음이 발생한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아무리 땅에서 충성되게 주를 섬겼다 하더라도, 나의 행위로 말미암아 천국에 가려는 자는 그리스도와 관계 없고, 은혜에서 떨어진 곧 불법을 행한자 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에 어떻게 이른다는 것인가? 익히 알다시피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무엇을 듣는가! 첫째, 우주의 창조자인 하나님에 대해 듣고 믿는다. 하나님은 이 땅에 일반 은총과 특별은총을 허락하셨다. 일반 은총이란, 믿는자나 불신자나, 이 땅에서 수고한 만큼 소득을 얻게 하고, 태양, , 공기를 주어 악한자나, 선한자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은총은 일반 세계에서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 신이 인간에게 영혼의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신의 세계에 있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지옥을 향해 가는 인간들에게 회개를 선포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왔노라”(5:32) 도덕적인 죄인이 아니라, 내가 지옥갈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둘째,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내 영혼은 이미 심판받았고,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영혼의 세계에 대하여 관심이 적고, 땅에 관심이 많다. 땅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면 최고인 것이다. 왜냐면, 마귀가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속였기 때문이다.

셋째, 내 영혼이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지옥가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인간은 천국 가는 방법을 모르기에 본인이 선행을 쌓아, 하나님의 나라에 갈려고 하는 것이 일반종교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인간의 선행으로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지 못함을 인식한다.

넷째,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내가 치루어야 할 죄 값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믿을 때, 하나님이 그의 의를 인정하고, 내 죽은 영혼을 성령을 통해 살리는 것이다. 곧 영원한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내가 어느분에게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아

나는 의인이다라고 말하니 롬3:10말씀을 인용하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며 많이 교만해 졌다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구원과 성경의 구원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10:10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When we believe in our hearts, we are made right with God. We tell with our mouth how we were saved from the punishment of sin. NLV)

사람들은 말한다.

마음으로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는 것이므로 의인이 된 것이고, 입으로 믿는다고 말하였으니,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했다고 하나님의 의에 이른 것인가! 마음으로 믿어 하나님의 의가 언제 만들어지고, 어떻게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았는지 입으로 말하라는 것이다. 우리 교회 토양에서 내가 어떻게 지옥을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았는지, 당당히 나는 의인이다!!!”라고 외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왜 그럴까? 미안하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성경의 핵심인 구원을 놓쳐버리고, 당장 시급한 육체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예수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 많은 사람을 만나보면,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으면서도 천국에 갈 신념에 찬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할 일이 아니라, 마귀만 경사날 일이 이 땅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15:6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섭리를 알았을 때, 의로 칭함을 받았다.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완벽했다는 것인가? 육신적으로 죄도 없이 깨끗하여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창세기 156절에서 의인이라 칭함을 받고, 16장에서 하갈을 취하는 우를 범한다. 무슨 말인가? 인간은 하나님의 의에 이르렀다 하여도 그는 육신의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구원받았다, 의인이 되었다, 거듭났다, 중생하였다 하여도 그의 육신은 여전히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지옥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기에 그에 감사하여 기쁨으로 천국을 소망하며 살기에 죄가 줄어들 뿐이라는 것이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그의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사람을 의로 칭하시고 영생 구원을 주는 것이다.

 

 성경의 복  

 사람은 복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좋아한다. 얼마나 좋으면 우리 속담에 돈이라면 발가벗고 엄나무도 기어 올라간다라고 한다. 엄나무는 굵은 가시나무다. 발가벗고 엄나무에 올라가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릴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축복만 준다면 어느 신이라도 모시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 아닌가!

거기다 예수는 복도 주고, 구원도 준다하니 얼마나 금상첨화인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재물이 많은 것이 복인가!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많은 재물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아니 기쁨과 평안을 주는가! 물론 없는 자에게는 꼭 한번 소유하고 싶은 것이 재물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축복해 주기를 기도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만약, 하나님이 이 땅에 70-80년 사는 동안 축복을 주기위해 예수를 이 땅에 보냈다면, 그를 믿고 따르는 모든 자에게 이 땅 사는 동안 가난, 질병, 고통뿐만 아니라, 죽음까지 없애줘야 진정한 축복이 아닌가? 열심히 기도해서 물질 축복받아 살만하니까 병들어 죽는다면, 그것이 무슨 진정한 축복이란 말인가! 겨우 70-80년 사는 동안 축복 주는 예수라면 차라리, 나는 그를 믿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리라.

예수 믿지 않아도 이 땅에서 지혜롭게,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면 그만큼 소득을 얻는 것이 법칙이다. 예수 믿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것을 달라고, 신의 이름을 빌려 간구한다면 그것이 신을 찾는 목적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생각하는 또 다른 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땅의 소유에 있지 않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인 죽음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성경은 죽음, 심판, 영생, 구원을 다룬다. 이 모든 말씀은 이 땅에서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 저 죽음 너머의 세계에서 성취되어질 일이다. 무슨 말인가! 인간에게 죽음이 있고, 심판이 있고,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 예수를 믿는 것은 저 영원한 세계를 알고, 준비하는 자가 지혜로운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지옥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나면 재물의 소유에 관계없이 육신의 삶도 행복해 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어떠한 복을 받아야 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다윗은 말한다. 4:7-8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 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성경에서의 복은 불법의 사하심을 받고 죄 용서함 받고, 심판 때 의인이 되어 그 죄 값이 없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죄와 죄값을 구분하지 못한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했다면, 구원받은 사람은 절대로 죄가 나오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혈기내고, 미워하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을 책망하고, 죄의식과 죄책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오히려 죄의 짐만 가중될 뿐 아니라, 죄를 안지어 보려고 몸부림 쳐 보지만 더 큰 죄악의 터널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에 반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 값을 치루시고, 죄 값이 없는 자가 의인이요, 구원받은 것이라면 확신이 설수 있다. 6:23 “죄의 값이 사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가 지옥 갈 죄 값을 해결한 사실을 믿는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이라 우리가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 해도 사망이 이미 우리에게 왕노릇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사망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고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와 같다. 왜냐면 죄값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죽음이 오는 것은 죄의 값, 값을 치루기 위해 죽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나의 죄값 곧, 내가 예수 믿기전에 지은 죄의 값, 현재의 죄의 값, 미래에 지을 죄의 모든 죄 값을 해결한 사실을 믿을 때, 죄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고, 구원받은 후에 실수로 죄를 지었다 할찌라도 그 죄의 값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땅의 아브라함의 가축의 축복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지옥갈 내 영혼이,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아 천국 갈 수 있게 된 것이 성경의 축복인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예수 믿고 땅의 축복이 없다면 예수를 왜 믿는가? 이런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고상함이 무엇인지 안다면 땅의 것은 이방인이 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축복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그것을 어찌 땅의 축복에 비교할 수 있으랴!

없어진 다리가 다시 생겨난들 그 기쁨이 얼마가 갈까?

땅의 것으로 생긴 기쁨은 잠시지만, 하늘에서 오는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이런 비유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소경이 눈을 떴다면 어떠할까? 상상해 보라.

 

                                                           대장암 이래요

  전에 같이 신앙생활 하던 권사님이 계셨다. 젊은 나이에 홀몸이 되었고, 어린 자녀들이 있어 같은 약자로서 서로 관심을 갖고 살았다. 내가 이 복음을 조금 깨닫고, 그 권사님 생각이 나서 복음을 전하던 중, 권사님에게 유방암이 발견된 것이다. 그 권사님은 심한 충격을 받은듯했다. ‘내가 젊은 나이에 혼자되어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다른 사람들 재혼할 때 예수를 벗 삼아 살아왔던 터라, 그 충격은 실로 대단 했던 것이다.

불쌍한 마음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검사, 입원, 수술, 퇴원, 외래진료까지 서울 종합병원을 오가며, 복음을 전하며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했다. 퇴원 후에는 수시로 우리 집으로 오게 하여 식사를 대접하며, 유방암에 이르기까지의 말씀을 들었다. “나는 정말 깨끗하게 살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하였다며 새벽기도, 주일, 십일조와 장애인들의 아픔에 동참하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먹을 것 아껴가면서, 이웃 사랑을 실천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신만철 목사님의 구원 세미나에 참석하여,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에 대하여 말하니, 당신 나름대로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다며 돌아가더니,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

그런 후에 들려오는 말로는 공목사가 배운게 없어서, 이단에 빠졌다고 소문이 났다는 것이다. 참 슬픈 일이다. 이미 율법 신앙으로 젖어 있어, 복음의 말씀이 들어갈 곳이 없는 것이다. 그 성도님의 구원은 이런 것이다. 내가 예수 믿고 있으며, 교회와 이웃을 열심히 사랑하고, 95%의 믿음과 5%의 자기 선행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후 그분은 3년 몇 개월 후에 초기 유방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일생을 주님을 위해 살았다는 자신의 고백처럼 어찌 보면 당신의 암은 신으로부터 배반 받았다는 느낌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장영숙 장로님은 여걸처럼 대단한 활동가다. 장로님을 알게 된 것은 6년 전이다. 장로님은 용인 양지면에 살면서 30km떨어진 수원 본 교회에 주일예배,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철야, 구역예배등 주를 위한 일이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충성하고 있었다. 돈이 없을 때는 카드로 대출을 받아 십일조를 드릴 정도였으니 얼마나 대단한 신앙인인가! 그런 장로님도 주를 위해 헌신, 봉사, 충성을 다 했어도 가정의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예전부터 아내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기에 우리 교회에서 구원세미나가 있으니 참석해 보세요라고 하였더니, 참석하게 되어 구원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 예수 믿는 것은 땅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구원의 기쁨을 갖고 그동안의 어려움을 하나, 하나 헤쳐 나가고 있었다.

구원 세미나 이후 신목사님은 1년여 동안 우리 교회에 오셔서 말씀을 지속적으로 전해 주었다. 더욱 구원에 확신을 갖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나와 전 교인이 구원에 확신을 갖고 살던 어느날, 몸에 이상을 느껴 검사를 하였더니, 대장암 3기라는 것이다. 장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사님! 대장암 3기라 수술을 받아야 한데요전혀 떨리지 않는 목소리를 들으니 누구도 슬퍼할 일이 아니었다. 수술후 병원에 찾아보니 장로님은 하나님이 주신 평안 가운데서 육신의 아픔을 잘 이겨내고 있었다. 지금도 치료 중에 있지만 장로님의 고백의 말,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면 나는 충격이 심했을 것이라며 복음의 능력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앞서 율법으로 충성을 다한 권사님은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내다 암을 극복하지 못했다. 당시에 권사님의 마음에 조롱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믿음 좋은 권사님이 암이 뭐야! 혹시 무슨 죄가 있는 것 아니야이런 조롱은 율법 신앙 안에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지만, 우리 복음은 그런 말 할 사람이 없다. 육신의 일과 영혼의 일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으며, 예수는 영혼구원에만 치중하기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육신을 치료해 주지 않았다고 섭섭할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 분의 은혜가 내 영혼으로 왔는가!

아니면 육신의 축복을 기대하고 있는가!

 

 

어머니의 소천 

  어머니는 전라도 지역 부유한 가정에서 예쁘게 자랐다. 어머니의 이모가 서울로 시집보내준다하여 용인에 왔다가 아버지를 만난 것이다. 집도 없는 아버지를 만나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농사일과 6남매의 자식을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다. 어머니는 여장부의 기질이 있었고, 아버지는 일찍 고아가 되어서 그런지 늘 소심하였다. 자식은 많고 살길은 막막하니 두 내외가 열심히 뛰어도 형편이 나아지지 못했다.

남의 농지를 빌려 새로운 작물을 재배하려 하여도, 소심한 아버지는 도전도 못하지만 어머니는 일을 만들고 본다. 이모부의 도움으로 인삼 농사를 지어 집안이 일어서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노년이 되어 어머니는 당신의 의가 대단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이 집은 망했다

고 늘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그런 어머니께 보인 아들의 목회는 어땠을까?

어머니 집과 우리 교회는 3Km가량 떨어져, 동네 교회와 우리 교회를 많이 비교하였다.

“J교회, J목사는 설교도 잘하고, 찬송도 잘하고, 능력도 좋아 교회가 날로 부흥하는데, 너는 왜 그리 못하냐!”

고 야단이었다.

공목사는 귀가 얇아서 이리 저리 좇아다니기만 하고, 이번에는 신목산가 누구에게 빠져 더 이상해졌다

고 했다. 사실 겉으로 보이는 우리 교회와 나는 형편없어 보였다.

그런 어머니에게 10여전 전부터 육신의 병이 있어 함께 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이미 율법 신앙으로 굳어버린 어머니에게 복음을 들려주어야 믿음이 생길 것이다. 함께 병원 가는 날이면 전도하는 날이다. 함께 식사하고 차로 드라이브 하면서 예수는 왜 믿어야 하는지, 인간의 의와 하나님의 의는 어떻게 다른지, 인간이 왜 아파야 하며, 왜 죽어야 하는지, 왜 지옥에 가야 하는지, 왜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차근차근 복음을 전해 드렸다.

어느 때는 죽음을 부정하더니 죽음 너머의 영원한 세상에 대한 확신이 섰는지, 어느 날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난 것이다. 지난 20085월 중순,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하더니 그 다음날 소천하신 것이다. 당신의 죽음을 예견하였는지, 모든 준비를 하신듯하다.

입원 다음날 03시경 숨이 가빠지더니 죽음과 사투를 벌인다. “어머니 천국이 보이세요라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후에 구원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물으니 또 고개를 끄덕인다. 한참을 호흡이 가빠지더니 평안함 가운데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내가 이 구원의 복음을 깨닫지 못했다면, 어머니의 영혼은 어찌 되었을까? 영원한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면 자식으로서 내 마음은 너무 슬펐을 것이다. 당신이 교회에 다니며, 새벽, 주일, 십일조, 금요철야, 충성, 헌신등 이 모든 것으로 천국 간다는 확신을 가졌던 어머니지만, 그 어떤 공로로 천국가려는 것은 불법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 값을 해결한 구원의 통로가 된다고 말씀드리니,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당신이 쌓은 공로는 없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늘나라에 가신 것이다.

 

 

진리의 자유를 얻기까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 받고 10년 만에 의롭다 인정함을 받았다. 나는 몇 년이 걸렸는가? 성경의 잘못된 이해로 말미암아 18년 동안 곁길로 가다, 복음 전도자 신만철 목사님을 만나 진리가 무엇이며, 회개가 무엇이며, 왜 예수를 믿어야 하며, 구원이 무엇이며, 예수님의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눈을 떴으니, 그 동안의 세월 얼마나 자유하지 못한 삶을 살았겠는가!

목회를 쉬고 있을 때, 가정의 궁핍함으로 택시 핸들을 잡았을 때의 불안함은 잊을 수가 없다. 주의 종이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땅의 일을 했으니, 하나님이 언제 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나를 짓눌렀다.

몇 년 전에 목사님들과 강화도 수양관 세미나에 참석했다. 목사의 직업에 대한 토론을 하다 두 패로 갈리어 논쟁이 크게 벌어졌다. 한쪽에서는 주의 종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이 주는 대로 먹어야지 어떻게 땅의 일을 하느냐!”고 야단이고, 반대쪽은 바울도 어려울 때 일을 했고, 살전3:11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며 대든 것이다. 두 패 가운데 일하면 안 된다는 쪽은 거의 자립교회를 담임하고 있었고, 반대쪽은 개척교회나 기관에서 목회하는 목회자들이었다. 나도 기관에서 일을 하기에 세상일도 해야 한다며 일을 했지만,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늘 불안한 가운데 일을 한 것이다.

지금도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지 못하신 목사님들은 가족을 위해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언제 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가운데 일하는 분들을 보게 된다. 지금이야 전도하려면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 많이 만나는 일을 찾아 교회를 돌보는데, 지장이 없는 가운데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구원을 받는데 율법을 쓰지 않는다. 구약의 율법은 십자가에서 완성되었고, 이제 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자, 곧 교회에서 무엇인가 충성하고 그 의로 구원받으려 하는 자는 십자가의 원수인 것이다. 4:5 “일을 아니 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내가 주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십자가 강도처럼 죄만 지었다 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고 하는 자를 믿으면 의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지난 시절 장애인을 내 몸같이 사랑하려 할 때, 구원의 기쁨과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으니 하나님의 의로 인정받고, 내 속에 성령이 임하니 성령의 음성이 들린다. ‘예수 믿는 것은 지옥으로부터 내 영혼이 구원받고, 천국백성이 되었노라....

찬송가 135장 후렴에 이런 구절이 있다.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 하리" 진정한 십자가의 사랑은 무엇인가?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인가!

그 사랑의 기준은 어디인가!

 

4 . 율법과 복음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 (7:15)

                           


                                                 복음시대의 거짓말

 성경에서 말하는 핵심을 놓치게 되면 곁가지를 붙잡고,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전하기도 하고 축복을 받으려고 한다. 성경의 본말이 전도되어 예수를 통해 인간의 본성인 땅의 축복을 받으려 한다. 율법과 복음을 구분해서 보지 못하면, 예수 앞에 나와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한다. “주여, 주여하고 부르지만 아직도 그들은 예수님이 말하는 소경인 것이다.

 구약과 신약, 십자가에 대한 이해가 되어야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현혹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는 구원을 받고 기쁨으로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다. 구약은 곧 옛 언약이다. 옛 언약이 온전함에 이르지 못하기에, 신약 곧 새로운 약속이 필요한 것이다. 8:7 “저 첫 언약이 무흠 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7:18-19 “전 옛 계명이 연약하여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고, 그의 뜻을 이루려는 것은 인간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함이다. 첫 언약 율법은 흠이 없고, 거룩하고, 선한 것이며, 나름대로 율법의 기능을 갖고 있지만, “율법을 지켜 인간이 신 앞에 온전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율법이 선포되고 예수님 오시기까지 1,500년 동안 율법으로 의로워진 사람이 없다. 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선포한 것이다. 전 옛 계명 곧 율법(행위의 법)이 무익하므로 십자가에서 폐하고, 둘째 것(믿음의 법) 곧 행위의 법이 아닌 믿음의 법을 허락한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하기에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하지 못한다라는 것이다.

10:1 “율법은 장차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이 말씀은 십자가 이후에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 하는 말이다. 율법의 시대가 지나갔는데 계속해서 율법을 지켜 의로워 지려 하는 사람들에게, 장차오는 좋은 일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에 이르는 믿음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율법의 완성이므로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받으려 하는 자들의 무거운 죄의 짐을 해결하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자가 없느니라”(14:6)라고 선포한 것이다. 곧 하나님 계신 천국에 가기위해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교회에서 이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율법과 복음을 적당히 섞어서 목회자 편리한대로 사용한다. 이런 자들은 거짓 선자자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를 조심하라고 했다. 교회 지도자 중에 영적 소경이 판을 치며, 수많은 사람들을 어둠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주의 종을 잘 섬기면 복 받는다 

  우리는 예전부터 이런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몇 년전에 어느 부흥사는 말하기를 목사님이 심방 가는 것은 하나님 대신으로 가는 것이니, 잘 받들어 섬겨야 그 집에 큰 축복이 임한다는 것이다. 간증자들이 나와 내가 주의 종을 이렇게 섬겼더니 하나님이 사업과 자식에게 큰 복을 주었다라는 말을 들으면 듣는자는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과연 그럴까? 이렇게 말하는 간증자나 부흥사는 영적 소경인 것이다.

왜냐면, 율법시대에 살고 있는지, 복음시대에 살고 있는지, 구분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구약을 인용하여 어리석은 자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하면 교인들은 엄청난 축복 가운데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불신자나 이 나라 전체가 다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구약에 엘리야 선지자나, 엘리사 선지자를 잘 섬겨 복 받은 예가 있다. 그러나 복음시대에 와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도와주었다가 복을 받기보다는 핍박을 받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왜 성경이 앞과 뒤가 맞지 않는 것일까?

구약에 엘리야를 섬겨 복을 받았다면, 신약에서는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한 예수를 믿어야 복을 받는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예수님이 주는 복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생천국의 복인 것이다.

 

주의 종을 대적하면 저주 받는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23:8) 복음 시대에는 구약의 제사장처럼 구분되어 있지 않다. 예수님이 왕, 제사장, 선지자의 사역을 다 감당하여서, 이제는 어느 사람을 세워서 제사장의 일을 맡기지 않은 것이다. 신약의 목사도 제사장이 아니다. 다만 교회 안에서 성경의 비밀을 깨닫고,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장로가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 목사인 것이다.

목사는 교회에서 목회하다 속썩이는 교인들이 대들거나, 자기가 어려운 일에 처하거나,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낄 때 이 말을 많이 사용한다. 모세에게 대들었다가 문둥병에 걸린 미리암의 예를 들면서, 목사에게 대적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주의 종에게 대적하면 저주받을 정도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벌써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모아, 모아 한꺼번에 죄인의 영혼에다 저주한다.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이 신약의 저주인 것이다.

속지 마십시오! 오늘날 목사의 손에는 축복과 저주의 권한이 없다는 것을, 구약의 제사장과 선지자, 왕에게는 있었지만, 십자가 이후 곧, 신약의 저주권과 축복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약시대에 목사의 손에 축복과 저주가 없어진 것이다. 구약의 저주가 육체에 임했다면, 신약의 축복과 저주는 영혼의 천국과 지옥이라는 사실이다.

 

 

                                                          예배당이 성전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르지 않는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른다. 성전(Holy temple)은 구약성경에 이스라엘 백성이 세 번 세운 하나님의 성전이다. 이 성전은 예수님이 오시고, AD70년 예루살렘 멸망할 때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회 건물을 지을 때 성전건축 한다고 야단이다. 개척교회 할 때는 성전이 아니다가, 어느 날 땅을 사서 건물을 지으면 성전이라고 둔갑한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하나님이 인간 세상을 떠난 후 성전은 같이 없어진 것이다. 벽돌 성전은 구약의 용어인 것이다.

십자가 이후에는 몸의 성전, 곧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들의 몸이 성전인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우리 몸도 성전이고, 잘 지어진 교회 건물도 성전이라고 한다. 동시대에 살면서 성전은 한 곳에만 있어야 성도들이 헷갈리지 않는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벽돌 건물을 성전이라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은 아직 그리스도의 구원하고 관련이 없는 것이다. 왜냐면, 아직도 율법 가운데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기도원에 다녀온 적 있었다. 그 곳에는 성전도 많다. 할렐루야성전, 에덴성전, 베델성전, 시온성전, 베데스다 성전등 참 많기도 하다. 한 예로 에덴 성전(聖殿)을 보자. 한글로는 에덴 성전인데, 영어로는 Eden chapel 이라고 쓰여 있다. 이게 무슨 행태인가! 외국인에게는 예배처소라 하고, 한국인에게는 성전이라 하고, 이런 가운데서 영혼의 구원을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기도원의 모든 목표는 땅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천국도 가야한다고 주장하나, 이 땅에서 축복받아 예수믿는 증거를 보여, 하나님께 많은 영광 돌리자고한다. 이 땅에서 부자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바울이나 베드로에게 큰 축복을 주어 본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성경이 잘못될 일은 없을 것이고, 그들이 거짓 선지자인 정체를 드러내고 만 것이다.

건물 성전은 없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어떻게 지옥으로부터 구원해 주었는지 그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만 몸의 성전이 건축된 것이다.  


                                                        목사가 제사장이다 

  예전에는 강대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인간의 모습을 감춘다고 까운을 입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날부터 박사 까운이 등장하더니,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어 입는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보편화 된 모습이다. 신약 시대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제사장의 복장은 필요치 않은 것이다.

왜냐면, 목사가 제사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장차림의 옷을 입고 복음을 전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당신들은 모든 일에 흠이 없는 것처럼 강대상위에서 율법을 사용하여 호통을 치며, 더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하도록 독려하지만, 율법은 행할수록 죄인으로 드러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가르치기는 한다.

그렇게 가르치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인간은 복음을 듣고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서, 율법을 사용하면 점점 더 악해져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율법의 힘은 자기의 공로를 나타나게 만들고, 하나님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는 내가 지금 온전하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아니면 땅에서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하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주의날을 안식일처럼

    주변에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노라면 가슴이 탁 막힌다. 어떻게 같은 성경을 보면서도 저렇게 할 수 있는가! 오히려 복음을 듣고 모이는 사람보다, 율법을 듣고 행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을 본다. 지역에 큰 교회의 모습이다. “주일날은 돈을 사용해서도 안되고, 일을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이게 언제의 말씀인가! 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었던 율법의 말씀인 것이다. 우린 이방인이며 율법을 받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잘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만히 살펴보니 목사가 그렇게 가르친 것이다. 율법 안에는 축복과 저주, 제사장, 성전, 안식일, 십일조등이 있어 그것을 행하고 잘 지키면 복을 준다고 하니, 어리석은 백성들(영적소경)은 축복을 받겠다고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바치는 것이다.

누가 보아도 성공한 목회처럼 보이지만, 정말로 하나님이 원하는 목회인가를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가만 두어도 돈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그런 마음에 예수 믿으면 축복도 받고 구원도 받는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가!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며, 예수님 자신이 안식일을 파해 버린 것이다.

오늘날에는 구약의 안식일을 지켜서도 안 된다. 주일을 잘 지킨 사람에게 물어보라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주일 성수 잘했고, 십일조, 새벽기도등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하여 천국에 갈수 있다라고 한다. 성경에서 이것을 잘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하지 않는다. 성경의 핵심은 영혼의 구원이다. 소경 성도들이여 속히 깨어나서 영혼의 지옥으로부터 구원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십일조는 구원과 축복

 어느 기독교 TV 설교에서 들은 말이다.

십일조 떼어먹고 어떻게 천국가려고 하는가?”

예수님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이야기다. 유명한 강사 목사님도 예수 믿는 것은 믿는 것이고,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꼭 드려야, 말라기 3:10절의 복이 임한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이나 기독교 방송에 나오는 유명한 목사가 말을 하니, 그것이 성경과 다르다 할찌라도 듣는 사람은 그대로 아멘하고 실천하려고 달려든다.

, 구원도 받고 축복도 받아야 하니까!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십일조도 구약 율법에 속한다.

예수님이 2:15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바울은 율법을 원수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율법의 행함은 구원에 이르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율법의 행함으로 구원에 이른다면 예수는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곧 안내자의 역할만 할 뿐인 것이다. 다른 율법은 다 폐지되어도 십일조 만큼은 하나님이 받으신다면, 이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돈을 좋아 하지 않는다. 성도들의 물질 축복도 그리 기뻐하지 않는다.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물질은 좋은 것이로되 많은 물질이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자기 백성들에게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족하게 여기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죄인들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만 원하신다. 예수 믿고 물질 축복 받으라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속지 마시고, 주어진 일에 열심히 땀 흘리는 대로 거두시기 바랍니다.

 

                                         충성, 봉사, 헌신은 축복 

   대개 부흥사들의 스토리는 이렇다. 아무개 집사가 어려움이 많았지만 성전건축을 하는데, 드릴게 없어 전세 보증금 빼서 하나님께 드렸더니, 큰 축복을 내려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자주 듣게 되면 미혹을 당한다. ‘나도 저렇게 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이다.

교회 성장에 목을 매는 목자들, 성전건축에 목을 매는 목자들, 그들의 안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보이지 않는가 보다. 몸과 영혼을 죽인 후에 지옥에 던져 넣은 권세 있는 하나님”(12:5) 말씀은 보이지 않는가 보다. 그런 목자는 하나님의 진실한 종이 아니다. 다만 양의 탈을 쓴 이리로서 양들을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미혹하여,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성공에 있다. 사람의 성공은 구원과 관계 없다. 무조건 많이 모으고, 예배당 크게 지으면 성공한 것이다. 그런 곳에 관심을 갖은 성도도 그 목자가 능력이 있는 것처럼 나중에는 목자가 아니라, 신의 자리에 올려놓고 나의 가정과 사업과 성공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한다.

목자가 영혼 구원에 관심이 없는데, 어찌 양들에게서 구원받은 성도가 나올 수 있는가! 목자가 이리면, 이리 새끼를 낳는다. 율법에 속한 목자는 율법에 속한 성도를 만들어 내고, 진리의 자유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죽도록 충성하면서도 두려움에 떠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오직 구원에 관심이 있는 목자는 구원받고 기쁨을 누리는 성도를 만들어 낸다.

그 성도들은 예수 믿으면서 땅의 축복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나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여 그 소득에 만족해하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공 기준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라고 하시며, 한 영혼 구원하는데 관심이 많다.

비록 교회가 외모로 보아 보잘 것 없어도, 그 안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이 진리인지 아닌지, 구분하고 예수를 찾고 믿어야 할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을 그대는 느낄 수 있는가!

참고로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산상 수훈이 있다. 이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려 한다면 큰 오류를 범할 것이다. 성경은 역설이 참 많다. 예수님이 말씀을 하였지만, 그것을 지키라는 말인지, 아니면 지키지 못한다 라는 말인지 구분해야 한다. 5장 말씀가운데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무슨 말인가? 그 앞에 있는 말씀, 눈을 빼버리고, 팔을 자르고, 이웃을 위해 속옷을 주어야 하고, 돈을 주어야 하고등.... 이렇게 해야 하나님의 아들 곧, 의인이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어느 인간이 이 일을 다 할수 있는가?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못하니 예수께로 나오라는 말씀인 것이다. 5인간은 행할수 없다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과 구원에 대해 더 깊이 알기 원하면 신만철 목사의 저서 율법의 커트라인과 구원의 커트라인을 권하고 싶습니다. 오직 25년 동안 구원과 율법을 연구한 귀한 보석과 같은 책이니 꼭 보시면 영생의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지은이 공영재 복음 전도자는

한국신학원 졸업

피어선신학연구원 졸업

평생교육진흥원 문학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사

숭실대학교 기독대학원 ALP수료

숭실대학교 기독대학원 APC수료

기독 상담사

사회 복지사

()대우건설 리비아벵가지 현장근무

전 용인밀알선교단 단장

전 음성S병원 원목실장

전 국제장애인선교회 사무국장

현 용인 생명의 빛 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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