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떠나 왔던 교회에서 올해도 임직식을 한다고 합니다. 2년에 한 번 하던 임직식을 올해는 해걸이도 하지 않고 연하여 한답니다. 이 교회는 비젼 2020중에 실버타운과 수양관을 세우는 목표가 들어 있습니다. 아마 내년 수양관 착공을 위한 자금이 조금 부족한 모양입니다. 올해 임직식을 하고 나면 얼추 채워지던지 그렇지 않으면 내년에 한 번 더 임직식을 하면 될 것입니다.
한 때 교회마다 공동묘지를 조성하고 수양관이나 실버타운을 유행처럼 계획하였습니다. 노후에 오갈데 없어진 교인들을 위해 서로 아름아름으로 모여살면 외롭지 않고 그러다 죽으면 또 묻힐 곳이 있으니 이 보다 더한 복지는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 매년 여름이나 겨울 교인들 함께 모여 수양회를 하며 스트레스도 풀고 조용히 기도하기를 원하는 교인들 있으면 짐싸가지고 들어가면 영적으로 충만하게 채워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이보다 더한 천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중년이 지나고 나면 누구나 노후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고 마음은 아직 젊지만 세상에서는 찬밥 취급하는 시기가 도래한다는 울적한 생각이 들 때 교회의 이런 프로젝트는 적잖은 위로가 될 것입니다. 이런 정서를 조금만 적절히 이용하면 이런 일 못할 일도 아닙니다.
특별히 임직식은 대부분 이런 연령대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자신이 아직 실현하지 못한, 아니 꿈에만 간직하고 있는 노후 웰빙을 교회가 책임진다고 하니 이보다 기쁠 수 없습니다. 거기에 안수집사, 권사, 장로로 이임까지 해 준다는데 감사하기 그지 없는 일이지요.
교회의 비젼은 곧 자신의 비젼이라는 동일감이 물씬 솟아 오릅니다. 힘에 닿는대로 헌금을 합니다. 이렇게 많은 투자를 하였으니 목사가 잘 못되건 교회가 잘 못되건 어떻게든 그 곳에서 살아 남아야 합니다. 투자를 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목사는 흐믓합니다. 그 사람들은 본전생각에 절대 그 교회 못 떠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목사와 교인들의 공통적인 관심사입니다.
한 집사님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자신도 목사의 설교가 이상하고 목사의 교회 정치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답니다. 몇 번인가 교회를 옮겨 볼까 아내와 대화를 하였지만 결국 어떤 교회나 마찬가지이고 결국 신앙은 목사와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이니 그대로 다니기로 결론을 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이 떠나가지 않고 어느 정도 잘 유지되면 목사는 자신의 설교가 좋고 자신이 유능하여 교인들이 많다고 착각하게 된답니다. 그래서 오히려 좀 더 권위주의적으로 변하고 때로는 무리한 일을 추진하기도 합니다.
이런 목사의 교만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맘몬을 섬기는 목사의 밥줄인 헌금을 중단하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집사님 헌금은 "내 마음에 우러나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목사와 관계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드린 헌금이 하나님께 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저의 질문에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습니다. 자신은 하나님께 드린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실은 그 돈이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 없는 수양관, 실버타운 , 목사의 은퇴 자금(그것도 년 7500만원 이상 15년간 적립)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떠 올랐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들에 의해 세워진 수양관(또는 수련원)들이 거의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논리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 말은 역설적으로 이미 세워진 수양관들을 여러 교회에서 적절히 사용하면 충분히 수용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것을 말씀 드린 것입니다. 꼭 내 교회 것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내것이라는 소유 개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정성껏 준비한 헌금이고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라고 착각하였던 그 헌금은 맘몬에게 들어갔던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항변합니다. 물론 필요합니다. 구약에서도 십일조는 공회의 모임을 위해서도, 고아와 과부의 구제를 위해서도, 딱히 누가 돌 볼 수 없는 이방인을 위해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의 극심한 기근을 위해서 바울은 교회들로부터 연보를 걷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헌금은 과거에 성경에서 사용되었던 기능과 전혀 별개입니다. 필요에 따라 헌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십의 일일이라는 굴레, 각종 절기 헌금이라는 굴레, 심지어는 이제 완성된 제사의 형식을 빈 일천번제라는 헌금의 굴레를 씌워 일단 헌금을 걷고 봅니다. 이 헌금이 기초가 되어 예산이 되고 이 예산에 따라 용처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용처는 적당한 배분으로 형식을 갖추고 나머지는 교회 재산을 증식하는데 사용합니다. 단순한 재산증식은 세간의 이목이 있으므로 교인들의 복지를 위해 이것 저것 건립을 위한 기금이 됩니다. 사회적으로 보아도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을 교회에서 해 주니 좋은 일이고 교인들도 헌금한 돈이 자신도 모르는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로 사용되기 보다는 자신을 위한 복지로 사용되는데 적금한다 생각하니 흐믓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린다고 드린 헌금이 진짜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까? 어떤 것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인지 이 시간 곰곰히 고민하여 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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