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교회가 성경적으로 바른 교회입니다 ... [대구 우리교회 이근호 목사] 옮겨 온 글입니다...
첫째, 계속해서 못난 사람들이기를 원하는 교회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린도전서 1:27,28)
교회에 들어 왔다고 해서 점차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주님만 의존해야 할 정도로 점점 못난 사람이라는 점을 자각(自覺)해야 합니다.
둘째, 일체 경쟁이 없는 교회
기도 경쟁, 전도 경쟁, 헌금 경쟁, 봉사 경쟁, 성경 공부 경쟁, 선교 경쟁, 구제 경쟁, 등등을 시키지 않는 교회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린도후서 9:7)
셋째, 일체 계획이나 목적이 없는 교회
큰 교회라고해서 교회인 것이 아니요, 작은 교회라고 해서 교회 아닌 것이 아닙니다. 교회란 누가 모였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 때문에 모인 모임인가가 중요합니다. 단지 주님을 사랑해서, 숫자는 생각지 않고 모인 교회라면 이미 이것으로 완결된 상태입니다. 주님 사랑, 이것만이 교회의 변함없는 목적이요 계획의 완성형입니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고린도전서 3:7)
넷째, 일체 강요(强要)가 없는 교회
실제로 주님이 관리하고 주님이 상주(常住)하는 교회는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운영(運營)됩니다. 인간이 지도자 노릇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한일서 2:27)
다섯째, 설교의 한계가 오면 자진해서 강단에서 물러설 줄 아는 설교자가 있는 교회
참 교회는 말씀의 능력으로 생성(生成)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없는 교회는 이미 사람의 교회로 탈바꿈한 종교 단체일 따름입니다. 인간의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설교하는 것은 사이비 종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말씀이 떨어지면 주님도 떠난다는 것을 아는 자라면 자신부터 먼저 그 교회를 떠날 줄 알아야 합니다.
“ 내가(사도 바울)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사도행전 20:33)
여섯째, 돈이나 재산 증식을 시도하지 않는 교회
개인이 돈을 사랑하면 죄이지만 교회가 돈을 사랑하면 죄가 되지 않는 다는 주장은, 마귀가 이 악한 세계에 퍼뜨린 유언비어(流言蜚語)에 불과합니다. 돈을 탐하는 것은 개인이나 교회나 어느 쪽이나 악한 짓입니다. 돈이 모여 있는 그 곳에 우상이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하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전서 6:10)”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립보서 4:11)
일곱째, 자신의 욕심과 싸우는 교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에 가장 장애(障碍)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욕심들입니다. 이 욕심은 마귀가 심어 줍니다. 욕심이 있기에 죄가 찾아드는 법입니다. 악마를 탓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탓해야 합니다. 욕심은 악마를 친구로 삼는 짓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이용하려는 속셈을 지니게 만듭니다.
그리고 교회 생활의 나태가 결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린도전서 9:27)
여덟째, 인위적(人爲的)으로 친교와 봉사와 예배와 교육과 전도(傳道)를 실시하지 않는 교회
참된 교회는 성령 안에서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로마서 14:17) 성령 안에서 행하는 모습의 특징은 자기를 부인(否認)하는 모습을 띱니다.
아홉째, 행함의 원칙에 대해서 양보 없는 전쟁을 하는 교회
성도는, 정말이지, 그저 주시는 의(義)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 의(義)는 오직 예수님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에서만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고액(高額) 뭉칫돈이나 순교(殉敎)나 공로(功勞)나 공적(功績)으로 지난날의 노고(勞苦)를 거론(擧論)하는 자가 있으면 가차(假借) 없는 추방과 양보 없는 싸움을 벌리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로마서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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