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귀한 말씀

[스크랩] 광야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예수

사하라84 2010. 1. 17. 21:40

 

광야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예수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우리 칸타타형제와는 일면식도 없고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놀랍게도 사이버 상에서 교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향 카페에서의 서로의 글을 통한 만남이었지만,
말씀과 성령 안에서 주의 은혜 안에서 같은 믿음과 생각을 공유한다니 정말 신비입니다.

 

 

비록 각자 살아가는 환경과 인생의 여정이 다르고 질곡과 연단의 과정들이 다르다 해도
한 주님 안에서 한 성령으로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나누고 전한다니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저는 다만 소리칠 뿐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러면 대안을 내 놓으라고 따집니다.


대안은 거기서 나오는 길입니다.


나오면 나머지는 주님이 인도하시고 보여 주시고 함께 하실 것입니다.
대안은 주님이 하실 일이지 사람이 하는것이 아닙니다.


개혁자들이 대안을 만들 수 없습니다.
선지자들이 대안을 만들 수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다만,

오실 주의 길을 예비한 자이지 대안을 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각자에게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각자의 삶가운데 주님을 증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주께서 친히 이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주님과 다른 거짓을 숭배하는 자들과 그러한 모임안에서 계속 머물러 있다면?
주님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 입니다.


광야로 나올 때 비로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침반이란?
지도란?
네비게이션이란?
광야의 길로 가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순례자의 여정으로 가는 자들을 위하여 정확하게 성령의 이끄심이 작동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안입니다.
거기서 나오지 않으면?

결코 대안이신 주님도 어쩔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오지 못하고 전전 긍긍하는 이들을 향하여
저는 과감하게 나오라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나오면 나머지는 주께서 친히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두 길이 존재합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 십자가와 성령의 이끄심으로 사는 삶과


여전히 자기 욕심과 자기 신념으로 똘똘 뭉친 종교적인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 님을 따르는 삶과...


보이는 제도나 형식과 종교적인 화려함과 익숙함이 주는 안락함과
자기 의로 만족하는 기복적인 삶으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육신적이고 정욕적이고
종교적 우월감에 빠지는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주님 오실 때가지 두 길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로서 아벨의 길이냐


아니면 자기 중심적인(인간 중심적가인의 길이냐 입니다.

 

주님을 따르노라 하면서 결국은 사람이나 어떤 사상이나 철학적인 사고를
복음의 진리 보다 더 우위에 두고자 하면 그는 은혜에서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율법 준수와 계명과 자기 관리에 의하여 증명하는 삶이기 때문에...

 

 

그러나 모든 사상과 이론과 세상 초등학문을 배설물과같이 여기고
오직 십자가와 복음의 진리로만 주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이들에게는
주의 공로만을 바라며 의지하기에 행함이나 자기 공로나 업적 따위는
기억조차 하지 않으면서,

나는 무익한 사람이라 하며

오직 주의 긍휼하심과 사랑으로 감사하며
순례의 길과 좁은 길로 가기를 즐겨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바를 모르고 오직 말씀을 따라 갈 때

비로소 주님이 친히 앞서 행하시고 보호 하시며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삭과 리브가의 보호장막을 떠나서 광야로 갈 때

비로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이며 야곱의 사닥다리가 보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을 주의 강권하심으로 떠날 때
비로소 홍해가 갈라지고 광야에서 만나와 매추라기를 맛 본 것이고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성령으로 구별하여 나실인으로 태어 났지만,
그의 부모의 가정이 아니라 빈들이며 광야에서 자란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 같이,

본토 아비 친척 집을 떠나서 주님을 만나러 광야로 간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왕궁이나 부자들과 권세자들이 있는 곳에 계시지 않고 광야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주리시고 목마르심과

인간으로서 가장 극심한 고난 가운데 마귀의 시험을 온 몸으로 맞이하심 입니다.

주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심 입니다.

 

마귀가 던진 유혹이 무엇입니까?
돌로 떡을 만들라는 것이며,
기적, 혹은 표적을 보이라는 요구(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이며,
천하 만국의 영광을 주겠다는 유혹입니다.
자기에게 경배하라는 것이 조건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러한 유혹들을 말씀으로 거절하셨습니다.


거절하심입니다.

 

그러나 과연 오늘날 현대 기독교를 본다면?
절묘하게도 마귀의 유혹을 덥썩 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물질 숭배와 기복주의 신앙의 넘치는 현상들...
자칭 주의 종이라며 온갖 세속의 성공만을 추구하는 자들...
뷰자되는 것이 하나님이 복주심이라고 큰소리 치는 목사들...
거기 어디에 주님의 길이 있는지요?

 

주님의 사랑이 부족하여서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을 향하여서
'독사의 자식들' 이라고 화를 선언 하셨을까요?


그들의 조직과 신념과 체제는 주님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바벨탑처럼 쌓인 것입니다.


견고한 종교의 영으로 성을 쌓고 만족하는 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더 이상 관심 두지 않으십니다.


이미 창세기의 바벨탑을 더 이상 쌓지 못하게만 하신것으로서 심판은 시작 된것입니다.


다만 흩으신것입니다.

 

흩으시고 내어 쫒으신 다음에

당신의 백성들을 광야로 몰아가시면서 거기서 찾으십니다. 모으십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계속해서 서로 모이고 단결하자고 합니다.


화합과 일치를 주창하며 세계 평화를 위하여 모이자고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온 땅에 충만하기를 원하시고 그래서 흩으셨는데
사단은 기를 쓰고 모이자고 합니다. 흩어짐을 면하자 합니다.


하늘 꼭대기까지 닿도록 견고한 성을 높이 쌓아보자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 없이 영생을 구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 공학과 유전학과 인간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동원해서

복제도 하고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서 새로운 나를 복사해서 육신은 버리고

새로운 나로 이전, 복원 시켜서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심판이 온다해도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과학으로 버틸 수 있으며
하나님과 비견할 자신감으로 충만한 것이 바로 사단의 속셈입니다.

 

사단이 가장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 가운데 기독교라는 집단이 가장 좋은 장소이며 센터입니다.


거기에 충실한 부하들이 종교 먹사들이며 그들과 짝 하는 자들이 신학자들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좋고 하는 관계입니다.


이러한 것을 아무리 말해줘도 알아 듣는 자들은 알아 듣지만,
마치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당시 복음을 전할 때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기득권 자들이 귀를 막고 이를 갈며 돌을 던져서 살인하는 것처럼,

오늘날에도 복음의 소리가 들려지면
악을 쓰며 비방과 회유와 물타기를 충실하게 하는 자들이 버젓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교단 교리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한술 더 뜨는 자들 가운데 꼭 믿음 훌륭한 자들도 더러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로 맡기고 입다물고 너~나 잘하세요 하는 자들...)


자기가 추종하는 신념과 신학과 교리를,

어찌하든지 변호하고 지켜 보려는 당치도 않는 의협십이 안쓰러울 지경입니다.

 

사도들이 언제 자기 사상이나 생각들을 위하여 목숨 걸었을까요?


그들은 오로지 예수 이름과 복음 때문에

모든것을 버리고 빼앗기고도 감사하며 살았던 삶이었습니다.


바울이나 베드로가 비록 배움과 환경과 형편이 달랐지만,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는 동일한 십자가의 복음으로 말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하였고 그 십자가 복음 안에서 형제의 악수를 한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내가 가말리엘의 학문을 배웠다고 자랑한적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놀랍게도 바울사도나 베드로 사도가 전한 복음이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전문가인 바울과 어부출신 베드로가,

복음과 성령 안에서는 한 마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학문의 길고 짧음은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이며,

오직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 뿐이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그러기에 대안이란 광야에서 주님을 뵈오는 것입니다.

일단 주님을 대면하면 나머지는 주께서 친히 행하실 것입니다.

 

제 글을 보고 하도 대안을 말하라 해서 이렇게라도 제시해 드립니다.

 

대안이라면 주님이 하십니다.

 

광야에서 주님을 만나는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풍성하기를 소망하면서

 

 

2009/11/07.ⓒ사랑그리고편지.

 

출처 : 거짓 신앙,거짓 교회에서 탈출하자!!!
글쓴이 : 사랑그리고편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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