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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복적인 <십일조, 헌금> 가르침에서 벗어나자

사하라84 2010. 2. 6. 19:42

*율법주의적이고 기복적인 

 십일조 헌금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자!  

                                        (히 7 : 12,   고후8 : 11 - 12,   9 : 5, 7)

 

현재 한국교회의 90% 이상이

소득의 십분의 일이 (십일조)하나님의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율법적인, 모세의 십일조 가르침을 철저히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넘치는 재물의 축복을 주실 것임을 말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것을 바치지 않으면 도적질한 것이 되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면 그에 따른 징계(懲戒)가 있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있는 실정입니다.

 

과연 수입의 십의 일만이 하나님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억지로라도 십의 일을 받으셔야 직성이 풀리실까?...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일찐데...


또 하나 문제점은,

십일조를 안 하면 믿음이 없는 성도이며

십일조를 온전히 하느냐 안 하느냐를 떠나서

월마다 하면, 믿음이 좋은 신앙 인으로 기준이 되어

집사나 장로의 직분에 오를 수 있는 첫 번째 자격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십일조가 믿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으며,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잘 하는 사람이 인정받고 대우(?)받고

나아가 신실한 신앙 인으로 존경받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현실은,

가난하고 헐벗은 백성은 결코 교회 안에 들어올 수 없는

세속주의와 물질만능주의의 교회가 되어버린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물신(物神)으로 섬기고 있으니,

다름 아닌 배금주의(拜金主義)와 물신숭배주의(物神崇拜主義)에

오염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축복을 빌미로

율법적 십일조의 신앙생활을 지키게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율법이나, 그중 한 가지 십일조를 지킴으로

구원받고 복 받는 것이 아니고 율법의 완성자이시고

구원의 주 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영생의 축복을 얻는 것일 찐데...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교인들이 십일조 헌금을 내지 않을 경우

어떻게 교회가 존립(存立)되겠는가 묻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운영에 대한 염려라기 보다는,

교회 재정이 풍족해야 목회비도 교회건축도,

많은 선교와 구제도, 그리고 최신형 집기나 시설들을 통하여

목회자 자신과 교회의 외적 위상(位相)을 높이기 위한 때문일 것입니다.


십일조를 많이 하던 교인 하나가 이사를 가게 되면

그 교회 목회자는 힘이 잃는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진심으로 성도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일까요?

그러다가 십일조를 전혀 하지 못하던 성도가 떠나가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이러한 문제들은

교회가 물질에, 특히 돈에 노예가 되고 있는 실정이기에,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과연 교회를 세우신 분이

누구인가 말입니까?

 

교회들에게 율법주의 적인 십일조를 가르치지 말라 하고,

율법, 그리고 십일조 시대가 끝났으며 제도는 폐지되었다고

양심적으로 학설(學說)을 전개하면, 교계는 외면해 버리다 못해

심지어 이단시(異端視) 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재정에

십일조의 위치가 80%이상을 차지하기에,

십일조의 노예가 되어버린 기독교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한 가정이 등록하였다 싶으면

먼저 신상(身上)에 대한 상담에 앞서

사회적 지위와 부(富)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이러할 진데,

특히 도시에서 돈 없이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십일조는 한마디로

교회 유지를 위한 수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선량한 어린양들에게 “축복 받는 비결 십일조!”

또는 “십일조 학교”까지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할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일일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소관 일뿐, 목사나 장로나

돈 많이 내는 사람의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를 세상에 존재케 하시든

없애시든 그것은 하나님의 소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교회의 재정을 늘이고,

교회의 외형을 크게 보이려하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방법도,

하나님의 일도, 또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도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행7 : 46 ~ 50)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교회가 커지는 양적인 것에 있지 않고

양(羊) 하나 하나가 믿음이 소록소록 성장되어 갈 때

그것이 진정한 부흥이요 교회의 발전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가르치지만,

십일조만 바치고 나면 나머지는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됨을 봅니다.

 

즉, 십 분의 구를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십의 일을 내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헌금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습니다.

 

또한 냈으니

낸것만큼 그 이상 복이

있을 것이라는 의도를 갖고 헌금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뇌물을 드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대한 바른 이해는 :『십일조를 넘어서』조누가 목사

지음, 1999년, 베틀․북 출판사 P65 - 76까지를 참조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이라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따르는

십자가와 멍에를 멘 삶인 것입니다.

결코 그리스도인은 돈으로 신앙을 살수도 없으며,

돈으로 천국열쇠를 얻을 수도 없습니다.

 

500년 전 종교 개혁의 시발점(始發點)은

그놈의 “돈” 때문이었습니다.

중세시대 엄청난 성당들을 지어서

하나님을 기쁘게(?)해 드린다하였으나,

지금은 텅텅 비어있는 고물에 불과 한 것을

두려운 믿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바치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어떤 성도가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 가운데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쳤다면

참으로 잘하는 것이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가르치시기를

교인의 의무인 것으로 설교하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모세 율법에 의한 십일조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구약의 율법으로부터 자유 함을 얻었음으로

율법에서 명한 십일조를 바칠 의무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다 이루시고, 완성하시고,

마치심이 되신 율법의 실체(實體)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의 전부를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면

율법을 믿고 행하는 우(愚)를 범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는 길로 부름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 견해는 우리의 견해뿐만이 아니요,

루터와 칼빈에 의한 종교개혁 이후의

유럽과 북미와 남미 등 전통 있는 주요 개신교(改新敎)의 입장인 것입니다.


십일조는,

구약시대 성전에서

제사장과, 회막에서 봉사하던

레위인의 생계를 위해서 모세의 율법으로 제정된 것입니다.(민 18:21)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이 드리던 동물제사의 제도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인류의 속죄를 위에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폐지되었습니다.(히 9:11-12, 10:8-9)

 

“제사직분이 변역 한 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 한다”(히 7:12)는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 이후

옛 언약과 모세의 율법은 폐지되고

더 좋은 새 언약과 새 법이 들어섰습니다(히 7:18, 8:6-8.13)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으로 대체되고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인은

모세의 율법아래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법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그러나 지금도 십일조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면

첫째 :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사도 바울의 초대교회는

          십일조를 가르쳤다는 기록이 신약에 전혀 없다.

둘째 : 갈라디아서 4:5절의 “율법아래 있는 자들의 속량하시고”

          갈라디아서 (5:1, 2:4) 의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할 때에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셋째 : 율법의 613가지 중에 십일조 등 한 두 가지만 골라서

          지키게 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한편 신약의 성경구절에 대한 (마 23:23-24, 눅 18:9-14)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게된 배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새 언약”(눅 22:20)과 새 법이 발효되기 이전의 말씀이며,

예수님 자신 또한 율법의 시대에 오셨기에 십자가의 완성을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가 아닌 율법만을 신봉하는 유대인을 상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새 언약과 복음이 온 후에는

옛 언약과 모세의 율법은 폐지되었습니다.

십일조 또한 모세의 613가지 중 한 가지이기에

역시 지킬 의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십일조를 지켜야 한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요,

우리는 여전히 신약이 아닌 구약의 종교인 유대교를 믿는 것이 됩니다.

 

더구나 구약에 말라기 3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현대인들에게 지나가 버린 조선시대의 법을 지키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축복을 받기 위한

십일조의 헌금이라면 그것은

일종의 “뇌물” 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도대체 왜 성도들에게

온전히, 정확히 지키지도 못할 십일조를

지키라 하여 죄책감과 불안감을 조성하려 한단 말입니까?  

어찌하여 우주 만물을 지으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돈으로

만족시키려 하며, 돈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는가!

 

우리 그리스도인은

복음 안에서 자유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을 가르치는 말씀의 종교로 돌아가야 합니다. 

 

더 이상 바르지 못한

십일조의 해석으로 인하여

도둑놈의 멍에를 쒸우지 말아야 할 것이고,

 

율법이란,

하나님께서 정하신 완전한 법이기에

예수그리스도 외에는(하나님 자신) 지킬수 없는, 

어느 누구도 100% 이땅 어떤 기독교인도 정확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수는 없는 것임을 깨닫고 기복적이고 율법주의적 십일조 생활을

가르쳐서도, 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또한 물질 만능주의가

교회 안에서 가르쳐져서는 안됩니다.

부귀공명(富貴功名)을 가르치는 일에서 십자가의 삶을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눅 12:15)

 

어서 속히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1 : 11 ~ 15)


오늘날 신약의 교회에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폐하여지고 이미 완성 되어진

(주께서 전 존재를 드림으로) 율법적인 십일조 헌금을

가르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의 시대에는

십의 이든, 삼이든, 십의 일이 안되어도 상관 없으며,

또한 수입이 없거나,마음에 없으면 안 내도 되는(고후8 : 11 ~12,  

9 : 5, 7)기복적이고 뇌물성 없는 순수하고 자발적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지는 헌금의 자세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글쓴이 : yes24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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