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

사하라84 2010. 2. 4. 20:58

이 글은 제가 처음 복음을 접했을 때 저의 믿음 성장을 위하여 2006년 1월 23일

다사랑 교회 이찬호 형제(유명탈렌트 남자친구)님이 보내주신 귀한 글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회개

『먼저 이 글을 읽기에 앞서 한 가지 부탁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평가는 다 읽고 난후 해도 늦지 않으니 제발 글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나는 이러한 체험이 있었는가 에만 초점을 맞춰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 드리 겠습니다...』

 

회개는 구원의 첫 관문

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

잘 아시다 시피 예수님께서 공식적인 복음을 선포 하시기전 제일 먼저 외치셨던 말씀입니다.

왜 제일 먼저 외치신 말씀이 회개 이였을까요?

제일먼저 외치셨다는 사실에 주목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천국은 회개 하는 자의 것입니다.

반대로 회개하지 않으면?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 .................................(눅13:5)

“만일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시7:12)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롬2:5)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 에서 옮기리라............................(계2:5)

그밖에도 회개하지 않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에 관한 구절이 많이 있지만 여기서는 이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도대체 회개가 무엇인데 이렇듯 그 결과가 가혹하단 말입니까?

한마디로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 가다는 말씀입니다.

“회개?

글쎄 한 것 같은데?

그리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데?...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난 지옥은 안가 그 이유는 내가 지 금 교회 다니고 있잖아?“...

정말 교회만 다니는 것으로 모든 것이 다 합리화 될 수 있을까요?

잘 모른다는 것은 솔직히 다 모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 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3:16)

믿음의 세계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은 없습니다.

했으면 한 것이고 안했으면 안 한겁니다.

명심 하십시오!

믿음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 평가 라는 것을...

시의 유대인들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비하시고 친절하신 주님께서는“회개하라”고 외치신후 사람들로 하여금 왜 회개를 하여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산상수훈입니다...

산상수훈을 가끔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산상수훈은 물질의 복을 받는 그런 장(章)이 아닙니다.

팔복강해 라는 신종어 까지 만들어가며 산상수훈을 통해 물질의 복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목자들이 있는데 과연 그럴까요?...

구약시대에는 실제로 물질을 복으로 봤지만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복의 개념이 천국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목사들은 이미 이론적으로는 다 알고 있지만 정작 성도들의 삶에 적용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물질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땅과 수평선상에서 바라보면 결코 그 본질을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 땅의 문제를 논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5:3) *(복=happy:복의 개념이 물질이 아닌 마음의 행복으로 되어있음)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행복하게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왜 그 행복한 마음을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물질의 복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이라고 한다면 부자들은 모두 다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부자는 천국 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마19:24)”고 말씀하십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죠!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부자의 개념정리가 잘못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부작용입니다.

이제 이글을 천천히 읽어보시면 부자에 대한 올바른 개념정리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앞에서는 회개하면 천국이라고 했는데 이번엔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 간다고 합니다.

뭔가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럼 이제부터 회개와 심령이 가난한 것과의 함수 관계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간다고 하였으니,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우리도 반듯이 그렇게 되기를 소망 하여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야 물론 심령이 가난한자가 천국을 간다고 하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보는 성경으로는 그 필요성을 느낄 수는 있겠으나 상태를 알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상태를 알아야 심령이 가난해 질 수 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자비로우시고 친절하신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고 찾는 자들을 위해 미리 예비해 놓으신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그 뜻을 알려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영어성경 NLV (New Life Version) 라는 성경입니다.

그 성경에는 심령이 가난한 상태를 아래와 같이 누구나 알기 쉽도록 잘 해석해 놓았습니다.

“Those who know there is nothing good in themselves are happy ,

because the holy nation of heaven is theirs" (MATTHEW 5:3)

직역하면

“너희 안에 선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거룩한 천국은 바로 그런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가 됩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초등학생 수준으로 해석해 봤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엔 본질적으로 선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언제부터 입니까?

아담 때부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선의 올바른 개념입니다.

“어! 난 가끔 착한일 하는데 그리고 옆집 개똥이 엄마는 나 보다 더 착한데 그렇다면 그 선은 뭐지...?”

우리 안에 선이 없다는 것은 세속적인 선 즉 착할 선(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義)즉 하나님의 공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 의가 있어야 그 의에 덫 입어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는 오늘의 주제가 아니므로 다음기회에 상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러므로 의가 없는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늘 저 먼 곳에서 낮고 추한 이 땅까지 오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의를 가지고...

우리가 본질적으로 악한 존재가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 때문 입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닌 죄짓기 전에 이미 우린 죄인이었다는 얘깁니다.

이것을 본질적 죄인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인간이 지옥 가는 것입니다.

이 절망적인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미안하지만 이 지구상엔 아무도 없습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나는 의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남에게 해롭게 안하고 비교 적 착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악하지는 않아 그러므로 난 지옥은 안가...”

보이는 현상에 근거한 선의 개념 입니다.

그러나 현상은 본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의가 없는데 악하지 않은 사람은 이 땅엔 아무도 없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19:16)

라고 하자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마19:16~17)

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선한 이는 오직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자신이 계속 선하다고 주장하신다면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상의 평가는 상대 평가입니다.

즉 1과 99는 분명 다릅니다.

1과 99사이에는 98이라는 상대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에서는 100이 되지 않는 한 1과 99를 같은 것으로 봅니다.

진정한 믿음은 오직 100이 되었을 때 만 평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절대 평가 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의가 없는 우리는 그냥 죄인입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습니다.

내가 인정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내가 지옥 가는 진짜 이유는 죄 짓는 죄인이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죄인이었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죄 사함은 죄인 된 자만이 맛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뜨거운 은혜라는 사실을...”

그래서 인류는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이 땅에 태어남과 동시에 모두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좀 억울하다고 생각되시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슬픈 운명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래서 욥은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복” 이라고 했나 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알아버린 상태!

내 안에 선이 없어 남이 아닌 바로 내가 지옥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상태!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애통해 하는 상태!

그러한 마음을 가진 상태를 심령이 가난한 상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선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복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는 진정한 회개는 지옥 안 가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짜 구원에 이르는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마5:3)말씀을 통해 이제 것 한 번도 심령이 가난한 상태가 돼 본적이 없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아직 구원받은 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항상 말씀의 검을 들이대면 자신이 체험하지 않았음에도 “~~하지만 ~~없지만 ” 이라는 핑계를 대고 빠져 나가려고 하는 매우 악한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여기서 “~~없지만”은 그냥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응! 나 이거 다 알아 옛날에 공부 한거야......!!!” 라고도 합니다...

그렇게 말씀 하시는 분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전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평상시에 당신의 입을 통해서 왜 복음이 전혀 나오 지 않습니까?..."

유명한 부흥전도자 죤 웨슬리를 구원시킨 사람은 뜻밖에도 일명 모라비안 교도라고 하는 평범한 아낙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상시처럼 자기들이 받은 구원에 대해 길 모퉁이에서 얘기를 나눴을 뿐인데, 그것을 들은 웨슬리는 그 자리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위력입니다...

사랑과 딸꾹질은 숨길 수 없다고 합니다.

구원도 이와 같이 진정으로 자신 안에 들어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표출되고야 마는 것이 구원의 속성입니다.

세월이 흐르므로 시들해 졌다고요?

천지가 개벽할만한 이 큰 구원이 과연 세월이 흐른다고 잊혀 질수 있을까요?...

혹 처음부터 아닌 것은 아니었을까요?...

진짜 구원이 있는 분은 복음을 전했을 때 한결같은 반응이

“이거 어떻게 아셨어요 저 하고 똑같네요?”였습니다.

사람도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르지만 결국 한 성령이 역사하시므로 같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위에서 말씀드렸던 “심령이 가난한 상태”로 안내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성경은 오직 NLV성경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복음을 찾아 국내에 존재하는 성경과 그밖에 구원과 관련된 서적은 거의 다 봤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에 존재하는 성경엔 그 어느 것도 마태복음 5장 3절의 말씀을“자신 안에 선이 없어 자신이 지옥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애통해 하는 상태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상태” 라고 가르치는 성경은 단 한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NLV성경은 현재 한국에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제가 보는 성경도 미국에서 직접 달러를 주고 구입 한 것입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일진데 어떻게 다 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인지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제가 드리고 있는 이 말씀을 정말 오래전에 깨달으셨다면 왜 당신은 전하지 않고 있습니까?

진정한 구원은 천지가 개벽을 한다고 해도 요지부동 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조들은 목숨 걸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는데 어찌 흔들 릴 수 있습니까?

천국과 지옥이 눈앞에 보이는데 어찌 변할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지옥 앞에서 체면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구원은 자신에게 가혹하리만큼 냉정하게 적용해야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는 과연 예수님을 맨 처음 믿으려 할 때 이러한 사실을 알고 믿었는가 에만 초점을 맞춰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자가 누구입니까?

돈 많은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해져 본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설령 그가 지금 죽도 못 먹을 정도로 가난해도 말입니다.

다시 말해 (마태복음 5장3절)의 말씀을 통해 이제까지 단 한번도 심령이 가난해져 본적이 없는 사람의 마음은 이미 모두 부자 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부자는 천국 못갑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 할 수 있겠습니까?...

 

회개는 맨 처음에 한번만 하는 것...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예수님을 맨 처음 믿을 때 심령이 가난한 상태가 되어 단 한번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옥 안 가려고 마음을 세상에서 예수님께로 돌이키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한번으로 족한 것입니다.

이것을 단회(單回)회개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서 이런저런 잘못한 것에 대한 회개들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 그것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가 아니고 그냥 잘못한 것에 대한 양심에 따른 뉘우침일 뿐입니다.

물론 뉘우침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뉘우침만으로는 결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마치 유다처럼!...

유다의 양심은 그를 하나님께로 인도 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로 인도 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양심조차도 악한 것입니다.

*(구원사적 시각에서 바라본 착한 양심의 올바른 개념에 대해 후에 다시 자세히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유다이기 때문에 그랬겠지”가 아니라,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구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단코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것이 남이 아닌 바로 내가 그러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회개는 더더욱 요원(遙遠) 해 질뿐입니다...

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 요”......................................(마5:4)

무엇 때문에 애통해 한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왜 그 애통이 복이 된다는 것입니까?

자식이 죽어서 애통해 하는데 과연 그것이 복이 될 수 있을까요?

집이 몽땅 타버려서 거지가 되어 애통해 하는데 그것이 복이 된단 말입니까?

산상수훈의 본질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바로 자신이 지옥 가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 하지만 성경은 이 땅의 일을 가르치는 지침서가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 시피 내 안에 선이 없어 내가 지옥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버렸기에 애통해 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는 회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애통이 복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와 같이 여러분은 맨 처음 예수님을 믿으실 때 (마5:3)절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지옥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진심으로 심령이 가난해진 상태에서 지옥 안 가려고 애통해 하는 마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 이요”(마5:5)

*(온유:no pride-자랑하지 않는다)

자랑하지 않는 자를 온유한 자로 보고 있습니다.

무엇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일까요?...

한번 상식 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지금 지옥 가는데 더 이상 무엇을 자랑한단 말입니까?

지옥행 열차 안에서 세속적 가치를 자랑한단 말입니까?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에헴 내가 누군데” 라고 하시겠습니까?...

명심 하십시오!

지옥 앞에서 지금 내가 무슨 값진 일을 하고 있다거나 어떤 위치에 있는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난 목사야, 난 장로야, 난 권사야, 난 모태 신앙이야, 내가 얼마나 구제 헌금을 많이 하고 있는데, 난 일반교회도 아닌 복음적인 교회를 다니고 있어 믿음이 없으면 내가 지금 까 지 교회를 다니고 있겠어! 하지만 내 안에 성령이 있는지 솔직히 말해서 100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누군데 난 지옥가지 않아...”

자신이 지옥가지 않는다는 근거가 구원에 이르는 회개와 죄 사함이 아닌 현재의 위치와 눈에 보이는 현상에 근거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결국 온유 하지 못한 자랑하는 자의 악한 모습일 뿐입니다.

실제로 신앙생활을 오래한 분에게 “자매님은 이러한 회개의 체험이 있으셨습니까?” 라고 물으면 “글쎄~~ 하지만!... 근데 이거 왜 이래 내가 누군데 난 권사 30년이야...”라고하며 화를 버럭 냅니다.

권사 30년이 지옥보다 앞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 앞에서 권사 30년은 결코 자랑거리가 못됩니다.

지옥 앞에서 우리가 자랑 할 것은 오직 예수님의 피, 곧 예수님의 십자가 뿐입니다...

자신 안에 실체가 없는 사람은 자꾸 본질에서 벗어난 것들을 내 세우려고 합니다.

“글쎄...”는 미안하지만 이미 아닌 것입니다!

지옥 앞에서 예수님의 피 외에 다른 것을 자랑하는 자는 신성을 모독 하는 자입니다...

누차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지옥 가는 이유는 남보다 죄를 더 많이 지어서라든가, 무슨 좋은 일을 남보다 적게 해서서가 아니라,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을 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그 이전에 이미 우린 본질적으로 지옥 가게 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더 이상 빠져 나갈 구멍이 없을 때, 더 이상 이 땅엔 희망이 없을 때 벼랑 끝에선 마음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옥 가는 자신의 비참한 영혼이 보일 때 그때 비로소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옥이 빠진 회개는 가짜입니다.

이제 아래의 글을 읽어보시면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과연 어느 때에 하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니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지옥과 회개의 상관관계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부자와 거지나사로의 사건이 나옵니다.

이 부자가 얼마만큼 큰 부자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은 것을 보면 상당한 부자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자색 옷은 귀족을 의미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대 그룹의 총수쯤 됐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부자는 단순히 돈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권력과 명예와 사회적인 힘이 있습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잘살고 못살고를 떠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다면 그가 부자이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저명인사이거나 가정에 충실하고 성실한 가장 이라고 해도 그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잘 못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말해주면서 “당신은 지금 잘못살고 있으니 어서 빨리 뉘우치고 돌이키는 회개를 하시오!” 라고 한다면 탄탄대로 잘나가고 있는 성공 자가 과연 자신의 삶이 잘못 됐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이 잘못 됐다는 것을 인정 하는 것인데,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잘 나가고 있는 권력자나 큰 부자가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치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그런데 그런 부자가 드디어 회개를 거론합니다.

자신의 삶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지옥 때문입니다.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 하 리이다”.................................(눅16:30)

부자는 지금 죽어서 지옥에 있습니다.

지옥에 가보니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너무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이제까지 그렇게 잘나가던 자신의 삶이 잘못 된 삶이었다는 것을 지옥에 와보니 비로소 깨닫고 후회하며 뉘우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지옥 때문에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옥이 빠진 회개는 가짜입니다.

만약 당신이 회개를 하고 믿고 계신다면 이 시간을 통해 과연 나의 회개는 무엇에 근거한 회개 이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 이요”(마5:6) *(의:Right with God)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우리에겐 선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은 착할 선(善) 이 아닌 하나님의 의(義)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그 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그것 얻기를 갈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경 말씀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말입니다...

우리에게 의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는 결코 목말라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을 갈망 할 수 있는 것은 마치 병든 자만이 의원을 찾는 것처럼 지극히 상대적인 것입니다.

왜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까?

바로 그 의가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산상수훈은 3절과 모두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상태”가 돼야 나머지말씀도 풀어진다는 얘깁니다.

성경은 구절별로 나뉘어 있지만 사실은 전체가 하나의 의미로 연결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뒤 또는 전체 장을 다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마태복음은 더욱 그러합니다.

마태복음의 말씀은 (do) 가 아닙니다.

마태복음의 말씀을“하라”로 받아들이면 살아남을 자는 솔직히 아무도 없습니다.

마태복음은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지옥가야 마땅한 죄인이 되게 하는 것이 마태복음의 진정한 의도입니다.

죄 사함은 죄인 된 자 만이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뜨거운 은혜입니다...

마태복음을(do)로 받아들이고 해보려고 안달을 하니까,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기고 자기 갈등과 좌절과 두려움과 죄의식에서 늘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마태복음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절대로 지킬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통한 첫 번설교도 역시우리를 본질적으로 선이 없는 죄인 되게 하여 회개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 따르면 단 한번이라도 음욕을 품고 못된 짓을 한 나의 눈과 손과 발은 모두 잘라내 버려야 하고, 단 한번 이라도 형제를 미워하고 욕한 나는 마땅히 지옥가야 하며, 오리를 가자고 했을 때 십리는커녕 일리도 못가주고, 속옷을 달라고 했을 때 겉옷은커녕 속옷도 주지 못한 나는 지옥가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말씀의 검에 내 자신을 비추어 보면 갈기갈기 찢겨져 난도질 당해야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자신을 말씀의 검에 비추어 봤을 때 죽어 마땅한 죄인중의 괴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부인하고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 가를 지고 나를 쫒을 것이 니라”...(마16:24)

명심하십시오!

구원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의 현재의 영적 상태를 그대로 숨김없이 들어 낼 줄 아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만 허락하시는 비밀이라는 것을...

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 을 것임이요”(마5:7) *(긍휼:불쌍히여김)

왜 그리고 누구를 무엇 때문에 불쌍히 여긴다는 얘깁니까?

본질적으로 선이 없는 인간이 갈 곳은 오직 지옥뿐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내 이웃의 끝을 안다면 어찌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말씀하시는 긍휼이란 가난한 이웃의 비참한 삶을 불쌍히 여기는 그런 세속적 긍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내 이웃을 돕는 것도 분명 중요하지만 정작 그에게 영원한 지옥을 알려 주지 못했다면 그를 진정으로 불쌍히 여긴 것일까요?

아니 오히려 지옥에서 원망을 하고 있겠지요!

“물질은 안줘도 좋으니 차라리 구원을 주지”그랬냐고 이를 갈며 슬피 울면서 말입니다...

(눅23:26~28)을 보면 십자가를 힘겹게 끌고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슬피 우는 큰 무리의 여자들에게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희의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매정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이 당시에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것이 표면으로 들어나 버리면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 걸고 자신을 위로해 주러 온 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어도 부족 할진데 “나를 위해 울지 말라” 는 다소 냉소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은 그들의 영적 결과를 보시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모르고는 결단코 나올 수 없는 큰 자비요 긍휼입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이들은 아직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하늘로 오라 가시면 곧바로 개인적인 심판이 시작됩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마3:10)

예수님은 인생들의 끝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 갈 너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또한(눅6:21) 에서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무엇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자신이 지옥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 버렸기 때문에 우는(애통) 것이며 그러므로 바로 그 지옥 안 가려고 회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복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심령이 가난한 상태가 되어 본적이 있는가 없는가 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으면서 예수님에 관한 슬픈 영화나 소설 같은 것을 보면 금방눈물을 흘립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가 막힐 일이지요!

사단의 간교한 속임수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옥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동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믿어야할 대상입니다.

정작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제 정리를 할까 합니다.

노파심에서 한 말씀드린 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를 아시는 분들 중에 저에게 초점을 맞추시는 분이 간혹 있는 것 같은데 제발 그렇게 하지 말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초점을 맞추시면 실망만 합니다!

부디 “만삭되지 못한 것 같은” 저에게 초점을 맞추지 마시고 오직 말씀에만 초점을 맞추시는 지혜롭고 온유한 여러분이 되 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자랑하지 않는 온유한 자에게 하나님은 천국의 복을 내려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옥 앞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지옥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저 우리는 하늘을 제대로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이로 소이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는 세리의 마음만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경은 이 땅엔 도저히 없는 것 즉 영(靈) 의 문제를 가르치기 위해 존재하는 하나님 그 자체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계신다면 성경 말씀도 함께 믿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은 진짜 믿는데 왠지 성경은 잘 믿어지질 않 아!”

이것도 결국 안 믿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알고만 있는지 냉정히 판단하셔야 합니다.

바리새인도 사두개인도 부자도 모두 모두 하나님을 알고 있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끝으로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맨 처음 예수님을 믿으려고 작정 하셨을 때 (마5:3) 말씀을 통해 자신이 지옥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지옥이 무서워 지옥 안 가려고 탄식하며 애통해 하는 마음으로 회개를 한 체험이 있으셨습니까?

성경을 통째로 외울 정도로 많이 알고 교회를 수십 년 다녔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영적 체험 같은 것을 하여 감당 할 수 없는 벅찬 뜨거움이 있었다고 하여도 맨 처음 위와 같은 상태에서의 회개의 체험이 없으셨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아직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믿음은 이미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귀를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믿고 있는가 알고 있는가 정신 바짝 차리고 구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중에 심판 때 “몰라서 그랬습니다 우리 목사님이 하라는 대로 했는데요 와 같은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이미 성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학습에 의한 신념만으로도 얼마든지 천국에 대한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신념만으로도 자기 목숨까지도 충분히 내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런 물리적인 현상으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려 하지 마십시오!

진정한 믿음은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물리적이 현상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으나 내 마음은 아무도 가져 갈수 없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치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 주시므로 우리는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말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구원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한 단계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안타깝게도 이제까지 말씀드린 회개부분이 빠져 있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회개가 빠진 구원관은 믿음이 아니라 그냥 신념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은 세상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상태에서 수십 년간 머물러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내 안에 선이 없어 내가 지옥 가는 존재라는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회개는 미안하지만 모두 가짜 입니다...

내가 가진 믿음이 신념인가 아닌 가 스스로 구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 라”(고후13:5)

그렇습니다.

결국 믿음은 자기 자신이 판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천국도 지옥도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심판 때 슬피 울며 이를 갈지 않는 현명한 길을 선택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제 왜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회개를 외치셨는지 에 대한 이유를 분명히 아셨습니까?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할 수 있는 상태는 바로 심령이 가난한 상태라는 것도 아셨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상태란 내안에 선이 없어 내가 지옥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애통해 하는 마음 이라는 것도 아셨습니까?

그러므로 구원에 있어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게 하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제 확실히 아셨습니까?

회개 없는 구원은 죄송하지만 속된말로 앙꼬 없는 찐빵입니다.

이상은 회개가 구원의 첫 관문이 되는 이유였습니다...

회 건물이 하늘을 찌르듯이 크고 웅장하고 목사가 제아무리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분이라고 해도 위와 같은 말씀을 근거로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회개시키지 못하고 있다면 그 화려한 경력과 웅장한 교회건물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오늘밤 잠자리에 들기 전 조용히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나는 예수님을 제일 처음 믿을 때 심령이 가난한 상태에서 구원에 이르는 회개의 체험이 있었던가?”

라고 말입니다.

만약 없었다면 왜 없었는지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또한 있었다면 무엇이 있게 하였는가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반듯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을 시인하여야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까?

“나 예수 믿어”이런 것이 시인입니까?

그렇다면 영어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시인:(How)

어떻게(How)를 시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내가 과연 어떻게 구원받았는가에 대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구원받으셨습니까?

“그냥교회 다니면 구원 받은거 아냐?” 이런 것이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5장 3절 말씀에 입각한 심령이 가난해진 상태에서 즉 내 안에 선이 없어 내가 지옥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지옥 안 가려고 애통해 하는 마음으로 회개를 하고 난후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의 신앙고백으로 시인하고 있습니까?

모든 일에도 순서가 있듯이 구원에도 반듯이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일 처음 “회개하라”를 외치셨던 것입니다...

가 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결국 내 영혼이 지옥 간다는 사실을 인정 하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사람들이 자신이 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지옥 앞에서까지 자신의 상태를 숨기려고 하는 그런 사악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지옥 가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마귀입니다...

이글을 읽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솔직히 자신을 들어내 놓고 다시 한번 냉철히 자신의 구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새털만큼 이라도 위의 말씀과 같은 회개의 체험이 없으셨다면 과거가 아무리 화려해도 그 시간에 미련 갖지 마시고 과감히 다 털어 버리시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이제까지 몰라서 그랬습니다 저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솔직하고 순수한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말입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18:3)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가호가 있으시길 진 심으로 기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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