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개역개정.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개역한글)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표준새번역)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한킹)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흠정역)
너는 나를 불러라. 내가 대답하리라. 나는 네가 모르는 큰 비밀을 가르쳐 주리라.(공동번역)
그러므로 너는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을 보고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고 오직 나만을 의지하여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고 엄청난 일도 이루어 주겠다. 나는 네가 이제까지 알지도 못하고,
또 전혀 알 수도 없는 큰 일들을 네게 보여주겠다.(현대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개역개정.
제가 즐겨 읽는 성경은 표준 새번역입니다. (※지금은 주로 한킹버전을 참고)
위에 똑같은 구절을 번역한 번역본을 비교해 보시기바랍니다.
한국 교회의 지대한 영향력을 충실하게 발휘하는 역할을 누가 했는가 충분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하니까 덮어놓고 부르짖는 기도(?)가 판을 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로 가는가 하면 '강청기도'까지 갑니다. 지금은 아주 '일천번제기도'로 까지
장족의 발전을 꾸준하게 거듭하고 있습니다.
제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시간이 아깝지만 예레미야 33장3절을 찾아 보았습니다.
직접 확인을 해야하였습니다만 정말 시간만 버렸습니다.
대부분의 기도를 내용으로 하는 설교가
본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터리 임에도 그것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기도원 홈페이지나 이단 사이비단체의 적극적인 전략으로 인용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기도만을 전문으로 제공하는 싸이트에서도 아주 가관들입니다.
사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기도가 만병 통치약으로 이미 전락해 버렸습니다.
저는 한국의 기독교 현실 속에서
교회와 목사와 교인들로부터 무차별 학대와 태러를 당한 성경구절이
이렇게도 많다는것에 한숨만을 쉬었습니다.
무조건 강사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유창한 성경 구절이
전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둔갑하는 것도 실망이지만
그것을 이용해도 맹목적으로 충성만 해대는 교인들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질 뿐입니다.
성경 여기 저기서 특정 구절을 끄집어 내면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아멘한다는 이 기막힌 현실....
분명 성경에 있지 않느냐? 하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생각해 보기를 거부하는 현상들...
세상 사람들은 전부 아는 것을 교회안에만 들어오면
몰라도 너무 모르는 생각없는 교인들로 전락해 버리는 현실들...(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혹자는 교회안에만 들어 오면 전부가 '무뇌' 상태가 되어서
마치 무엇에 홀린 듯이..
집단적으로 최면에 걸린듯한 교인들이라고 까지 말하던것이 이해가되는 것을...
이런 사실들을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교회안에 같힌 교인들에게는 전혀
딴세상 이야기가 되고 마는것을...
교회 밖에 사는 사람들은 뻔히 아는 사실들이 교회 안에서만 모르쇄가 되는 것을...
모르는 것이 믿음 좋은 교인이며 안다고 말하는 자들은 믿음 없는 자가 되고
교회를 분란시키는 안티나 이단으로 몰려서 쫒겨 나가야 하는 현실들...
그 속에서도 보는둥 마는둥 눈치보느라 색깔 바꿔가며 줄서기 하는 군상들...
분명 담임 목사의 불의함을 알고 보면서도 우리 목사님을 지켜야 한다면서
진실을 말하는 교인들의 입을 막고 내 치는 자들...
(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그들을 선동하고 부추기는 모략군들이 교회의 중직에 앉아서 거룩한척 하는 모습들...
그러면서도 주일 강단에서 대표기도를 하는 장로를 태러하는 목사가 있는가 하면...
서로 편을 갈라서 거룩한 기도실방으로 데리고 가서 벌어지는 폭행의 현장들...
그러면서도 예배는 거룩하게 드려야 한다고 싸움질 하는 모습들....
이렇게 분명하게 나타나는 열매를 보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다수의 교인들...
이런 모든 일들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니 암담하기 까지 합니다.
(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믿음이라는 것으로 무조건 밀어부치는 것입니다.
기도로 무조건 밀어 부치는 것입니다.
특히 '부르짖는 기도' 가 아주 한국의 정서에 딱 들어 맞습니다.
워낙 한이 많은 민족의 정서가 무속신앙과 절묘하게 결합이 되어서
새로운 한국적인 기독교 문화가 자리 잡았습니다.
사대주의 사상에 세뇌된 정서와 함께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피해 의식속에서의 울분들이...
약할 때는 잠잠하다가도 힘만 생기면 거침없이 발생하는 것을 봅니다.
(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자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얼마나 우리 민초들의 삶이 고통과 억압의 삶이었는가를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에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는 어쩌면
민초들의 삶의 유일한 비상구 였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양반과 상놈으로 분리된 암울한 시대 상황속에서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기독교사상은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거기다가 원한과 억울함이 가득한 민초들에게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성황당에 돌맹이 올려 놓고 빌거나
정한수 떠나 놓고 목욕제계 하며 치성을 쌓고
하늘을 향하여 빌고 또 빌기를 얼마나 지극한 정성으로 하였던지...
동지섯달 눈보라 치는 혹한의 추위속에서도
'칠거지악' 을 벗어나고자 처절하게 빌고 빌었던 며느리들의 몸부림들...
신을 감동시키기 위하여 목숨 걸고 빌고 빌었던 문화적인 배경속에서
기독교역시 '부르짖어 기도하자'라는 말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이 쉬었었던가....
(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기도에 대한 오해들이 사실은 신앙을 많이 병들게 하였는지 모릅니다.
기도를 하는 것이 신자들만의 의무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과 같이 변했습니다.
보이는 교회 건물이 성전이라는 인식이 성역 처럼 신성시 된것과 같습니다.
아직도 성전 건축에 누구라도 건드리면 공적이 되는 한국 기독교만의 불문율...
늘 되풀이되는 성공한 목사의 눈물 어린 성전 건축과 봉헌 예배를 간증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것 처럼 맹종하며 가르치는 교회의 저속한 문화 수준들...
유명 목사의 입에서 조차 일천번제와 십일조와 성수 주일과 성전건축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자랑스러이 말하며 당신들도(개척교회들) 나 처럼 해보라는 듯이 부추기는 모습들...
(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정말 부르짖어 기도하면 응답해 주십니까?
부르짖어 기도 하지 않아서 망하는 것입니까?
누가 누구에게 부르짖는지 혹시 알고 있습니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는 이 말씀을 교회 목사의 설교에서 단골 메뉴로 인기가 있습니다만
이렇게 부르짖음만을 강조하다보니까 교회 나온지 얼마안된 초신자들까지도
덩달아서 부르짖는 기도 모임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 나오는 이들이 전부 복음을 듣고 거듭나서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성도라고
볼 수는 없는것이 현실이고 보면 더욱 위험 천만한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 교회 나온 교인들이 가정이나 개인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니까 나오는 경우일것입니다.
특별히 사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제발로 교회에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믈겠지요.
아니면 어떤 친교나 사업적인 인맥관리 유지나 영업을 목적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는 교인숫자가 최소한 2~3백명은 넘어야 하는 교회에 해당할 것이겠습니다만....
이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와서 듣는 설교의 대부분이 어떤 내용일까요?
인생의 어려움이나 문제가 있다면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일것입니다.
물론 틀린 설교는 아닙니다만 바른 설교도 아닙니다.
설교는 언제나 누구를 대상으로 하든지 '복음의 진리'만을 전달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고
예수와 나와 어떤 관계인가를 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믿어야 하는가 그리고 나의 실체는 어떤 존재인가를 철저하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진정한 복음이란 십자가를 전하면서 그 십자가 앞에 온 인류가 죽음이며 죄악덩어리며 부패한 존재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놓여있다는것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앞에 나온 사람이 스스로에게 절망하도록 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깨어지는 심령으로 어찌할꼬 하는 애통하는 심령과 함께
자기의 벌거벗음과 비참한 것을 보여주고
깨달아서 절망할 수 밖에 없도록 그렇게 낮아지도록 해야 하는것입니다.
그래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앞에 전 인생을 맡기는 대 변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교회에 나가면 무엇부터 듣습니까?
당신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라는 긍정부터 듣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하나님으로 부터 얼마나 귀한 존재임을 아는가 부터 배웁니다.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는데
그것은 당신의 삶이 능력있게 변하며 성공하며 승리하는 것이라고 배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성공한 모델들을 열거하며 가르칩니다.
저들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궁금하게 만들고는 그들의 삶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십일조와 주일 성수를 귀하게 지켰다더라
새벽기도 했다더라
록펠러를 보라고 자랑합니다.
십일조를 잘 했더니 록펠러가 큰 부자가 되었다고만 자랑합니다.
록펠러의 뒷 모습은 안보여줍니다.
그가 부를 이루기위하여 얼마나 불의한 방법으로 착취와 억압과 폭력을 사용해서
돈을 벌었는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결과만 좋으면 동기는 문제가 없다는 무서운 누룩이 교회와 신앙에 퍼졌습니다.
부흥사들이 말하지 않는 록펠러의 비밀 (펌)(클릭)
그래서 무조건 교회 충성하고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응답해서 자손 대대로 성공하고 잘되었다더라...만이 들려집니다.
죽을 병에 걸렸는데 부르짖었더니 살았다더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모든 문제가 바뀌고 은혜를 받는다고 함께 부르짖자 하며 가르칩니다.
일명 주여 삼창 기도입니다. 통성으로 부르 짖어서 하늘의 보좌를 움직이자는 기도입니다.
강청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여서 소원을 이룩하자 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교회 나오면 기도모임은 연일 불야성을 이룹니다.
한국교회의 기도열풍은 식을 줄 모릅니다.
이정도의 열정과 정성과 믿음이라면 당장에 주님의 나라가 한국교회 위에 내려 올 것만 같습니다.
주님과의 바른 관계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모두들 열심으로 부르짖느라 야단들입니다.
목사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교인들을 다그칩니다.
목사는 이 부르짖는 것을 이용해서 성전하나 건축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교인들은 까짓거 성전 건축하는데 동참해서 손해 볼게 뭐가 있는가 하며
댓가성을 바라는 기복주의로 열심히 동참해 줍니다.
이것을 하는대 보탬이 되면서 부르짖어 기도하는데...
우리 자식들이 잘 될것이고 사업이 성공 할 것이고 병이 고침을 받을 것이고...
이렇게 정성들여서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는데 하나님이 설마 내 소원 한가지쯤
안들어 주시겠는가 라는 ...
생각대로 하면 되고...되고...되고...
(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부르짖는자들이 성공했다는 것을
얼마나 자주 들었으면 사람들이 무조건 부르짖자는데 반대를 하겠습니까?
그들에게는 복음이 부르짖어서 성공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큰 유익과 은혜와 경험을 체험하는 분들이야 있겠지요.
그러나 사실 은혜나 기적이라는 것들이 부르짖는것 만이 아니라
어느 종교든간에 세상살이 가운데는 기적같은 일들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기적아니겠어요?
기적을 특이한 종교적인 체험이나 믿음만을 대비시킨다면
지금 교회 안나가거나 예수를 알지 못하거나
안믿는 사람들은 전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기서 부르짖는 기도가 과연 정말인가에 대하여 살펴 보셨습니까?
예레미야가 정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것이 사실입니까?
다시한번 관련 성구를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개역개정.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개역한글)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표준새번역)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한킹)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흠정역)
너는 나를 불러라. 내가 대답하리라. 나는 네가 모르는 큰 비밀을 가르쳐 주리라.(공동번역)
그러므로 너는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을 보고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고 오직 나만을 의지하여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고 엄청난 일도 이루어 주겠다. 나는 네가 이제까지 알지도 못하고,
또 전혀 알 수도 없는 큰 일들을 네게 보여주겠다.(현대어)
유독히 한글 개역과 개정판 만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로 번역했습니다만,
다른 번역성경은 나를 부르라 로 되었습니다.
현대어 성경은 주님만을 의지하여라고 번역합니다.
사실 개역판 외에는 전부가 공통적으로 주를 부르라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부른다는 말은 찾는다 구하다 의지하다 신뢰하다 바라보다로 의역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잠잠하게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 보는 것 입니다.
구약의 출애굽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군사들이 병거를 타고서 쫒아 오고
이스라엘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고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오늘날 처럼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까?
모세가 백성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가만히 서서,
주께서 오늘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여라.
너희가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주께서 너희를 구하여 주시려고 싸우실 것이니, 너희는 진정하여라."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왜 부르짖느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여라.
너는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너의 팔을 내밀어, 바다가 갈라지게 하여라.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출14:13-16)
처음 이스라엘 자손들이 두려워서 주께 부르짖었지만 다시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였습니다.
그때 모세가 한 말이 오늘의 핵심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주께서 오늘 너희에게 보여 주실 주의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이집트인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잠자코 있을지니라." 하더라.
그러나 오늘 교회 목사의 설교는 어떻게 나옵니까?
모세와 같이 주님의 구원하심을 지켜 봅시다 하고 말하는지요?
우리도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처럼 주께 부르짖으면 삽니다 하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하지만 예레미야가 왜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말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를 먼저 알아야 하지요?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개역개정판).렘33: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개역한글판)
예레미야가 여전히 근위대 뜰 안에 갇혀 있을 때에,
주께서 그에게 두 번째로 말씀하셨다. (표준새번역)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번역성경이 동일합니다.
그렇다 해도 지금 부르짖는 자의 조건이 누구냐면
주님의 말씀을들은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의 죄악상과 유다의 타락에 대하여
경고와 심판(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주님의 뜻)을 말하자 시위대 뜰에 구금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치 교회 신자들의 개인적인 어려움과 고통스런 현실로 대비시켜서
적용시켜 버리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렇다해도 이것을 그런식으로 덮어놓고 적용시켜서
누구든지 어려운 일이 있다면 예레미야처럼 부르짖어 기도하자 하면 됩니까?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개역개정)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개역한글)
땅을 지으신 주님, 그것을 빚어서 제자리에 세우신 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이름이 '주'이신 분께서 말씀하셨다.(새번역)
땅을 지으신 주, 그것을 빚어서 제자리에 세우신 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이름이 '주'이신 분께서 말씀하셨다.(표준)
"땅을 만든 나 야훼가 말한다. 땅을 빚어 든든히 세운 나의 이름은 야훼다."(공동번역)
그곳의 조성자인 주, 그것을 형성하여 견고히 세우는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주가 그의 이름이라.(한글킹)
그것을 만든 자 주, 그것을 조성하고 굳게 세운 자 주가 이같이 말하노니
주가 그의 이름이니라.(흠정역)
`나는 온 세계를 창조한 주인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도
내가 모조리 일으켜 놓고 있다.
무엇이든지 내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것이 바로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현대어)
개역 개정과 개역 한글의 구절과 다른 번역의 구절을 읽으면
같은 상황속에서도 적용하는 기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욱 가관인 것이 다음 구절입니다.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삯군들입니다.
다시한번 살펴 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개역개정.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개역한글)
이것만을 말하고 적용을 하면 이렇게 되는것입니다.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들에게 응답하는 하나님.
간절함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들에게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밀한 일을 아는 자는 누구라는 것입니까?
부르짖는 자들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특별한 자들에게 비밀을 말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주가 나오고 사이비가 판을 치는 것입니다.
지금 정통 교회라고 하는 교회 안에서조차 부르짖어 기도합시다로만 가르치니까
사이비 이단들이 거기서는 크고 비밀한 것을 듣지 못하고
여기로 와야 우리 교주님이 듣고 깨달은것을
들을 수 있다고 속이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목사부터 모르니까 교인들도 그 수준 밖에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믿음만을 강조하니까...
의심하고 질문하고 따지는 것을 불신앙으로 몰아가는 현실 속에서
교인들의 믿음 좋다는 기준은 무조건 아멘파와 아주 성경 말씀을 전혀 볼 수 없는
바보 멍청한 교인들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목사가 맘대로 주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제가 너무 극단적으로 말하는 것 같습니까?
크고 비밇한 일이 감춰졌기에
특별한 주의 종만이 알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것에 모두들 속아 버립니다.
그러니까 종말론적인 신자들이 나오고 광신자들이 나오고
당장 끝장나는 것처럼 현실 도피를 하는
어리석은 신자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곤 하는 것입니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까요?
잘나신 목사님들 아닙니까?
잘나빠진 교리나 신학들을 공부하신 분들께서
'부르짖어 응답 받는 방법론'에만 열중하니 교회온 교인들이 정신을 차려서
복음을 듣기도 전에 기복주의신앙과 번영신앙과 긍정의 복만을 잔뜩 세뇌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 놓고는 교회를 향하여 문제를 지적하면 이단 이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이 되고
오직 교회만 들어와서 등록 교인만 되면 천국행 티켓을 보장하고 무슨 짓을 해도 교회 충성하고
부르짖어 회개하면 용서 받는다는 심리적인 위장된 평안함을 남발하고
당신이 일이 꼬이는 것이 목사 말 안들어서 그런 것이고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는 불신앙 때문이라고 말하는등...
(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아주 점을 치는 점쟁이 목사들이 수두룩한데도
교단이나 노회는 그저 교세 확장에만 눈이 멀었는지...
관리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정통운운하는 모습들...
교회 분리가 마치 성경적인 것인양 또 화재를 몰고가는 군상들하며....
청부론을 마치 거룩한 부자 만들어 주는 그럴듯한 논리로 장사해 먹는 달변가들하며...
(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이런 저런 것들이 혼합된 교회를 보면서도
누구는 완전하냐며 그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자며
교만하지 말자느니 성도들의 눈과 입을 통채로 막으려고 물을 흐리는 지능적인 군상들 하며...
은혜와 달콤한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면서
정작 바른 복음을 가로 막는 사람들이 자칭 교회를 사랑하는 자라는 인식으로 세뇌를 시키고도
정작 복음의 진리가 어떤 것인가를 말하는 자를 향하여서 점잖게 충고하며 주의 말씀을 똑 때어다가
은근하게 협박까지 하는 대담함들....
대놓고 험한 말은 슬쩍 피하면서도 온갖 저주스런 성경 구절을 들이밀면서
자기들의 반대자가 되면 주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리라는 암시를 조장하는
얄팍한 거짓에 능숙한 자들이
교회를 장악하고 있으니....
어쩌란 말입니까....(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예레미야가 이렇게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같혀서 죽을 순간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의설교들은 무슨 일만 당하면 부르짖자고 하니....
그리고 부르짖으라는 것이 아니라 주를 기다라는 것이며 바라 보라는 것이며
주님만 구하라는 것인데도...
부르짖어서 개인적인 소원을 달성하자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으니....
크고 비밀한 일은 예레미야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비밀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개역개정)렘33:14,1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개역한글)
"나 주의 말이다.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약속한
그 복된 약속을 이루어 줄 그 날이 오고 있다.
그 때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새번역)
"나 주의 말이다.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게 약속한
그 복된 약속을 이루어 줄 그 날이 오고 있다.
그 때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표준)
주가 말하노라. 보라, 그 날들이 오나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약속한 좋은 일을 행하리라.
내가 그 날들, 그리고 그 때에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 자라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심판과 의를 실행하리라.(한킹)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에 약속한 선한 일을 이행하리라.
그 날들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의 가지가 자라나게 하리니
그가 그 땅에서 공의와 의를 집행하리라.(흠정역)
[약속한 대로 지키시는 주님]
여호와께서 더욱 확실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에게 약속한 일을
그대로 성취할 그날이 오고 있다. 그때가 되면 내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한사람을 뽑아 세우겠다.
그러면 그가 다윗의 이름을 다시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
그는 내가 준 가르침을 그대로 준수하면서 내 백성을 다스리기 때문에 지상에서
법과 정의를 실현하는 의로운 통치자가 될 것이다.(현대어)
이상으로 알 수 있듯이,
크고 비밀한 일이란 예레미야의 전한 예언처럼
이스라엘과 유다가 바벨론에 함락되고 포로로 잡혀갈 것이고,
그 기한이 70년이나 길기에 모두가 이젠 끝장이 난것 이라고 할 그 때에도
기약이 이르면 포로된 백성들을 다시
돌려보내고 사로잡혔던 백성들을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입니다.
결코 이스라엘과 유다의 행위나 공로나
의로움이나 부르짖음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자격도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불의함과 죄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신다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예레미야에게 보여 주신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무슨 특별한 능력자나 목사나
영성가들에게만이 부르짖어 기도잘하는 은사자에게 만이 보여주는
계시라고 거짓말들을 하는 자들때문에 아주 속이 탑니다. 타요...
(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 안수 받은 정통교단 소속 교회 목사들에게서도
아마 부르짖자는 설교는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안믿겨지면 구글 검색을 통해서 렘33:3절 성구를 확인해 보시기바랍니다. 거의 똑같습니다.
그 때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표준)
자, 보십시오. 이 말씀이 크고 비밀한 일입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렇습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공통적으로 무엇을 가리키고 있습니까?
미래에 오실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에게 하신 크고 비밀한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사도 역시 하나님의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합니다.
이미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사셨고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온 세계에 다 알려졌습니다.
더 이상 감추인 비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이비나 삯군들이
자기들만이 그 비밀을 알수 있다고 헛소리들을 합니다.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의 비밀을 자기들만이 풀 수 있다고 난리도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에서 목사들이 교인들을 말씀앞에 나가지 못하도록
조직적으로 계획적으로 방해를 한것 때문입니다.
오로지 교회에서 만든 온갖 프로그램 적응 시키느라 바쁩니다.
씨잘대기도 없는 온갖 잡다한 의식과 규범들을 만들고 계발해서
무슨 운동이니 공부니 모임이니 세미나니
해가면서 교인들이 바빠서 곤죽이 되도록정신 못차리게 부려 먹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교인들이 차분하게 성경을 읽을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신학교도 동일한 구조입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아는것보다는
교회사속에 명멸했던 신학자들의 괘상한 논문과 서적을 부지런히 읽고
레포트 작성하느라 시간 다 보냅니다. 오히려 신학교 입학하기 전보다
성경을 개인적으로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정기적으로 모범적으로 교회 출석, 소위 성수 주일 잘하는 분들역시
성경을 차분하게 읽으실 분들 별로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교회 자주 못나오는 분들이 오히려 공연한 죄의식 때문에
집이나 개인적인 시간을 이용해서 성경을 읽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깊은 깨달음을 얻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또 새 힘을 얻어서 교회에 다시 열심으로 나아갑니다.
가서 교인들과 말씀을 통해 얻은 은혜를 나누고 싶어서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어느새 교회안에서 눈치를 받는 이상한 교인으로 전락해 버리기 일쑤입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말씀과 다르더라 하고 말하였는데...
목사님의 눈밖에 나고 공공연하게 의심하는 불신앙 교인으로 찍히고
잘못 된 영을 받았다느니 하며 노골적으로 교회안에서 왕따가 되어가는 분위기가 연출이 되면...
이 사람은 어쩔 수없이 교회를 나가던지 아니면 침묵하는 바보로 자신을 숨기는 것이 되고...
(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다시 말씀을 읽고나면 분명하게 잘못된 것들이 보여지면...
이제는 교회가 점점 멀어지는것이 되고...
그래도 교회라는 그동안의 익숙함과
교회만이 주님이 계신 곳이라는 세뇌상태에서 몸부림을 치는 것이고...
이런 답답함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다가...
자포자기한 상태가 되어서 소가 푸줏간에 끌려 가듯이
그렇게 다가오는 주일이 두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상담실을 노크해도 들리는 답변이라는게...
교회에서 사람을 보면 실망하니 하나님만 보라고 하는 답변들 밖에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 보라느니...
겨우 한다는 소리가 교회를 옮겨서라도 교회를 떠나면 안된다느니....
(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다른 교회 목사의 답변도 별 수 없지요.
뭐가 문제일것 같습니까?
복음이 없어서그런 것입니다.
교회에 원래부터 복음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니면 복음과 율법 주의가 짬뽕으로 임)
이런말 하면 곡괭이 들고 달려올 교인들 엄청 많겠지만....
교회에 복음이 없기에 이러는 것입니다.
복음이 교회안에 충만하였더라면....
누구나 그안에 들어가는 자에게 생명의 복음이 심겨지게 되고...
복음 안에서 영원한 자유함을 알고 누릴 것인데....
이 복음이 없으니까
복음을 듣지 못한 기갈 때문에...
부르짖고 기도하며 온갖 교회 일과 행사에 충성해 보기는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고...
교회는 그것을 아는양 계속해서 새로운 프로그램 수입해오고
다양한 서비스 문화를 만들고 드라마틱한 쇼를 연출도 해가면서
세상의 온갖 문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혼과 육적 본질을 만족시키려고 발버둥을 치니....
거기다가 무슨 십자가의 복음을 말할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더구나 이미 세상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교인들에게는 그것 마져도 시시하니까...
그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라도 그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나오는 것이고...
세상에서도 가난한 교인들에게는 그나마 교회에서나마
그러한 문화를 접할 수있다는 묘한 행복감을...
그것이 복음보다 더 가치있는 것인양 세뇌당한 이들이....
복음을 들으면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하는 이 현실....(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그래도 여전히 한국의 교회는 부르짖음을 강조할 것입니다.
그것으로 계속 재미를 보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는 이 말씀이 과연 당신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도 이렇게 자꾸만 부정적인 글을 쓸 수 밖에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복음을 말하면...눈에 들보를 먼저 빼라고... 충고하는 이들이 있겠지요....
느혜미야가 개혁을 시작할 때에,도비아가 자연스럽게 방해를 하였습니다.
이 시대에도 복음을 전하는 길을 도비아처럼 흔들고 물타기를 하면서
은근하게 협박과 공갈을 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본인이 아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은 본인도 모르게 이용을 당하는 이들이 있습니다.(해당없는 분들은 걸러들으시기를...)
진정 복음을 아는 자라면 알아듣고 화답할 것입니다.
그러한 복음안에서의 형제들이 속속 들어나기를 소망하면서....
2009/08/10.ⓒ사랑그리고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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