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만철목사 코너

율법과 복음

사하라84 2009. 9. 4. 20:29

_율법과 복음_

 

요한복음 8:30~32절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 민족의 유교 사상 보다 더 전통적이고 규율적인 유대인들도 예수를 믿으면 1500년의 율법으로부터 벗어나 한없는 자유를 누립니다.

그런데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이 예수를 믿기 위해서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애쓴다면 그들이 진정 자유가 있는 그리스도인일까요?

 

 왜 예수를 믿노라 하면서도 자유함이 없이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그렇게 힘들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문제는 교인들이 예수를 잘 믿겠다는 열의만 앞설 뿐 말씀이 요구하는 죄와 율법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 누려야 할 자유가 무엇인지 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껏해야 이사 갈 때, 결혼할 때 날짜 따지지 않는 정도 내지는 사주관상으로부터 탈피하는 자유, 또는 거리낌없이 돼지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정도는 아닌지 궁금합니다.

 권리자가 당연히 누려야할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면 누군가가 틀림없이 그 자유를 강탈하여 자기 소욕을 채우고 맙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은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도대체 율법이 무엇이길래 그것으로부터 자유를 주고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으로 율법을 폐지했다는 말입니까?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느니라”(롬10:4)

원수된 것 곧 율법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2:15)

성경은 율법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히길래 “원수”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은 복과 저주의 종교법이자 실정법으로써 100% 지키면 복을 받고, 1%라도 어기면 저주를 받는 실로 무섭고 두려운 성문법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율법을 경외하였는데 그럼에도 온전히 지킬 수 없게 되자 결국 율법의 노예가 되어 항상 공포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유대인을 억압했던 그 율법은 바로 십계명, 율례, 규례, 할례, 절기, 제사, 제사장, 안식일, 성전, 십일조, 금기 음식 등입니다.

이와 같은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던 유대인들이 저주가 두려워 지킨 척 하려는 위장에서 나온 것이 바로 회칠한 무덤이라 책망 받은 바리새인들의 억지, 형식적, 습관적, 액막이 식의 신앙이었습니다.

오늘날 억지, 형식, 습관, 액막이 식의 주일 성수, 또는 십일조를 드린다면 그들 역시 바리새인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율법의 의를 얻지 못하고 도리어 율법의 저주 아래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사 독생자의 생명을 지불하며 원수된 율법을 폐지시켰기 때문입니다.

더 분명한 것은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는 율법을 주신 일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주는 자유란 바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정작 그리스도인이 이 자유를 얻으면 신앙생활이 자원하는 마음, 신령한 감사, 하늘에서 오는 기쁨, 즐거운 섬김의 신앙이 충만케 됩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이 자유가 없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교회가 말로는 율법의 폐지를 외치는데 실상 교회 속에는 율법이 버젓이 살아 복과 저주로 교인들을 끈적끈적 옭아매며 힘들게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이 아닌 삶에서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체험해야 하며 실제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원함과 기쁨 속에 주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이미 나는 율법에 중독되어 복과 저주를 떼어버리면 예수 믿을 필요성까지도 흔들릴 만큼 맹신적이고 무속적인 율법의 노예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봅시다.

어떤 이는 이렇게 항변합니다.

구약도 성경이므로 구약의 말씀도 무조건 지켜야 되고 구약의 복과 저주도 오늘날 살아 있으므로 구약의 복도 다 받는 것이 예수를 잘 믿는 것이라 말합니다.

십자가를 꺽어 버리고 절에서, 고목에서 복 빌던 마음 그대로 하나님께 복을 비는 영적 무지를 어찌하면 됩니까?

교인을 겸손히 섬겨야할 지도자가 저주 운운하며 교인을 자신의 종으로 취급해도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현실을 어찌해야 합니까?

 

 누가 그리스도인이 누려야 할 이 자유를 빼앗아 갔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저주의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주시고자 십자가 위에서 피와 물을 쏟으면서 율법의 저주를 속량했는데, 어떻게 오늘날 율법이 되살아나 갈라디아 교회처럼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경고의 대상이 되었습니까?

혹시 나는 율법 아래 있지 않는지 다음에서 확인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지상 명령, 또는 신의 계시를 운운하며 분수를 가리지 않고 그저 최고를 지향하며 최선의 정성으로 그리고 최상의 헌금 모금(?)으로 성전건축(?)에 목숨을 건 사람들. 하나님이 계시지도 않는 건물을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성전으로 부르도록 가르치는 것은 분명히 사람을 속이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언어는 생각을 유발한다는 원리에서 볼 때 벽돌 건물을 신전으로 둔갑시켜 그곳을 거룩한 처소로 주입시키며 그곳에 복이 있는 것처럼 하여 성전이라 부르도록 가르치거나 묵인하는 것은 벽돌 건물을 신성화시키는 죄악이요, 벽돌 건물을 성전이라 부르는 것은 무속처럼 사람이 만든 것을 우상 숭배화 시키는 신성 모독 죄악입니다.

 

 오늘날 성령의 전인 성도의 몸 곧 참 성전이 죄를 멀리하여 진정한 성전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교회인 성도를 겸손히 섬겨야 할 목사가 어느 날 복과 저주의 칼날을 휘두르는 제사장, 심지어 대제사장으로 둔갑하여 교인들 위에 교주처럼 군림해도 교인들은 그저 맹종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아니 목사에게 바른 소리를 하고 싶어도 목사의 심기를 건드리면 저주가 올까봐 벌벌 떨고 있다면 만민제사장 교리는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속임수입니다.

진정 겸손히 낮아지고 섬김의 본을 보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참 목자의 모습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신령과 진정의 바탕 위에서 자발적이며 감격에 찬 예배가 아니라 율법의 안식일을 지키듯 억지와 형식의 시간 때우기에 급급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액막이 식으로 주일성수(?)를 해야 마음이 놓이는 무속적 신앙방식에 익숙해 있지는 않는지 돌이켜 봅시다.

땀 흘린 것에 대한 정직한 보상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헌금의 십일조가 아니라 십일조를 복채처럼 드리며 위안과 희망을 좇아가고 있다면 신앙의 재점검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심지어 교회를 믿지 못하고 주보의 십일조 난에 자신의 이름이 있어야 안심하는 실로 믿음(?) 없는 사람들, 아니 혹시라도 헌금의 이름을 통해서 나를 드러내려 한 적은 없습니까?

아니면 헌금을 더 걷기 위한 지도자의 얄팍한 속셈은 아닌지 하나님은 다 아시겠지요.

우리는 주님의 종으로서 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드리지 못하고 십분의 일만을 드림에 오히려 죄송스러워 하는 겸손한 마음의 십의 십조 정신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무당 앞에서 싹싹 빌던 손을 씻지 않고 그대로 하나님 앞으로 가져와서 싹싹 빌며 신명기에 기록된 복을 달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만약 신명기가 살아 있다면 그들은 복이 아니라 엄청난 저주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명기의 약속은 복보다 저주가 훨씬 더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처럼 성경을 덮어버린 무지한 신앙이 교회에서 버젓이 자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마 아직도 복음을 모르는 소경지도자들의 율법 선생 노릇에 맛붙인 까닭일 것입니다.

아직도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구분 못하고, 자기 과시를 위한 건물, 헌금, 지배의 극대화를 위해 지도자의 편리대로 구약의 율법을 교인들에게 문자 적용시키는 무당의 속성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시효 지난 약을 처방해주고 환자는 그것을 전혀 의심없이 먹으며 죽어간다면 성경대로 소경이 소경을 만난 연고 외에 무슨 답변이 있겠습니까?

지도자가 율법을 교인들에게 주입시키면 교인들은 최선을 다해 지도자를 하나님처럼 섬기게 됩니다.

만일 그렇게 죽도록 지도자에게 순종했건만 심판 날 하나님이 그를 모른다 하면 정말 땅을 치며 통탄할 일입니다.

폐지된 율법을 이용해 사람의 종을 만든 지도자도 주님께서 모른다 할 것이며 아니 연자 멧돌을 메고 물에 빠져야겠지요. 물론 이 땅에 그런 지도자는 없어야겠지요.

율법을 쓰면 헌금이 척척 걷히고, 교인들이 벌벌 떨며 말을 잘 듣는다 해도 율법의 종국을 생각한다면, 아니 지옥의 뜨거운 불 못을 생각한다고 바울처럼 굶어도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순진한 교인들은 지도자만을 믿고 자신의 영혼을 지도자에게 맡긴 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율법에 중독되어 율법의 노예가 되었으며 억지와, 형식, 기복과 저주 속에서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민에게 주신 참 자유가 누군가에 의해서 강탈당하고 있습니다.

진정 천국을 믿고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고 간다면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을 배설물처럼 버려야 마땅하며 더 나아가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을 자랑하며 낮은 자세로 겸손히 교인들을 섬기는 복음적인 지도자와 교회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지금도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양들에게 준 자유를 누군가가 갈취하면 언젠가는 양들이 눈을 뜨고 분노합니다.

정말로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고 천국을 가고자 한다면 오직 십자가 복음만을 붙잡읍시다.

그러나 율법이 복음의 그림자인 까닭에 율법도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결코 율법 무용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과 목표가 성취되도록 복음으로 적용하되 복과 저주의 문자적 적용은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율법은 무엇인가?

1. 율법의 정의

律:법률, 法:법법 ⇨ 토라(히) ⇨ 노모스(헬) ⇨ The Law ⇨ 율법은 ‘꼭 지켜야 할 법’이란 뜻입니다.

∘율법의 다른 표현 ...... 모세의 율법(행13:39),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요1:17)

하나님의 율법과 모세의 율법을 통칭하여 율법, 또는 옛 법이라고 부릅니다.

∘율법의 적용 대상 ......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신31:11)

우리 같은 이방인은 처음부터 율법을 받지 않았습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롬2:14)

 

2. 율법의 내용

①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출20:1~출31:18)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출20:1)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라”(출31:18)

▶ 십계명(지키면 천대 복, 지키지 않으면 삼대 저주 포함)......................................출20장

▶ 상전과 종의 제도(딸은 여종으로 팔 수 있음)....................................................출21장

▶ 죄의 벌(눈은 눈, 이는 이, 살인은 살인)...........................................................출21장

▶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출22장

▶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을 지키라....................................................................출23장

▶ 토지 소산의 첫 열매는 여호와의 전에 드리라....................................................출23장

▶ 우상을 훼파하면 물질의 복을 받고 무병 장수하리라...........................................출23장

▶ 성전 건축...................................................................................................출25장, 26장, 27장

▶ 제사장 예복................................................................................................출29장

▶ 제사법.......................................................................................................출29장

▶ 성전 세금...................................................................................................출30장

▶ 안식일을 범하면 죽이라................................................................................출31장

 

② 모세가 성막에서 받은 율법(레위기, 민수기)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레1:1, 민1:1)

▶ 금기음식(돼지, 장어, 미꾸라지)......................................................................레11장

▶ 할례(The religious act of becoming a Jew).........................................................레12장

▶ 간음자는 돌로 쳐 죽이라...............................................................................레20장

▶ 십일조(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은 십일조가 기업이 됨)....................................민18장

 

③ 모세가 모압 땅에서 받은 율법(신명기)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신1:5)

▶ 모든 복(토지, 창고, 손, 출입, 꾸어 줌, 머리 됨, 만민 중 으뜸).........................신28장

▶ 모든 저주(재산, 질병, 재앙, 만국 중 패망, 자녀 고통, 꼬리 됨)........................신28장

이것이 바로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모세의 율법입니다.

이 모든 율법이 우리에게 살아 있다면 한 가지 라도 위반한 우리는 저주밖에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모든 율법을 폐지한 것입니다.

물론 정죄와 몽학선생, 그리고 영적 재해석의 기능은 유효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문자적으로 똑같이 적용하여 성전을 짓거나 율법의 복과 저주를 믿는 것은 스스로 모세의 법을 세워 지키려는 것이며, 그 결과는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만드는 죄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 나는 어디에 속하는지 아래에서 골라 보십시오.

▷ 유대인 ........................ 율법만을 지켜야 구원을 얻고 세상 복도 받는다.

▷ 유대기독교인 ............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고, 율법을 지킴으로 세상 복을 받는다.

                                    예수를 믿음으로 거듭나고, 율법을 지킴으로 성화 된다.

▷ 기독교인 ....................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성령을 따라 성화 된다.

유대인이나 유대기독교인이 잘못된 것은 그들은 아직도 율법을 붙잡고 있을 뿐 성령의 역할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시대에 성령의 인도가 없이는 예수를 바르게 믿을 수 없습니다.

 

▣ 율법과 복음의 관계

1. 누가 영생에 들어가는가?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25:46)

↳ 의인 ⇨ 자신의 죄를 100% 씻음 받은 자 ⇨ 하나님의 義의 옷을 입은 자

2. 죄인이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될 수 있는가?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롬3:20)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롬3:28)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빌3:9)

3. 구원에 이르는 길은 은혜의 복음뿐이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롬1:17)

4. 율법을 믿고 따르면 어떻게 되는가?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갈3:10)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갈5:4)

“어찌하여 의문(십계명)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골2:20~22)

“우리(바울)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복음+율법)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

☆ 율법주의자에 대한 예수님의 판결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23:33)

↳ 율법의 선생인 바리새인

사도 바울은 율법을 따르는 자를 이단으로 정죄함(딛3:9~11)

5. 율법을 지킴으로 성령을 받을 수 있는가?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3:2)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그 안에서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엡1:13)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5:18)

6. 복음은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과 타협되지 않는다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2:15)

“내가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함이라”(갈2:19)

↳ The Law has no power over me.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2:21)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롬7:6)

성경은 이렇게 율법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오직 복음 안에 죄인의 구원이 있음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원을 얻은 후에도 율법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있음에도 성경을 무시하거나 덮어버리고 율법을 고집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외면한 대가로 주님도 그 영혼을 끝내 외면하고 말 것입니다.

 

▣ 율법의 폐지

이제 우리가 율법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았다면 율법의 폐지에 관하여 주먹구구식으로 알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확인 과정을 통하여 확실히 정립해야 합니다.

1. 율법은 언제까지 유효했는가? ⇨ 세례 요한의 때까지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후부터는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어”(눅16:16)

율법과 복음은 서로 중복되지 않고 시작과 끝이 분명합니다. 지금은 복음시대 입니다.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3:19)

↳ 그리스도(갈3:16) 율법은 믿음이 오기까지만 한시적으로 존재함(갈3:23)

루 터 의 견 해

율법과 복음의 구분은 구약과 신약 전체에 걸쳐있다. 구약의 내용은 율법을 가르치고.

죄를 고발하고, 선행을 요구하는 것이다. 신약의 내용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 용서로

인한 은총과 평안이다. 그러므로 구약은 율법서, 신약은 복음으로 불릴 수 있다.

율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민족의 율법이고, 이스라엘을 한데 묶고, 이스라엘

에게만 타당한 민족의 율법이다. 그 자체로서 구약은 그리스도인과 관계가 없고,

그리스도인들을 한데 묶지도 못한다. 율법은 모세의 의식법과 법전에 해당될 뿐만

아니라, 또한 상당히 일반적인 구분에 반하여 십계명도 해당된다. 왜냐하면

십계명은 이스라엘의 다른 모든 율법의 원천이자 중심이기 때문이다.

(The Theology of Martin Luther 중에서)

성전과 십일조 같은 행위로 구원받는 율법시대는 끝났습니다. 지금은 오직 믿음의 시대입니다.

 

2. 누가 율법을 폐지시켰는가? ⇨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

율법의 마침은 의(義)와 관계됩니다. 곧 영생과 영벌의 관계에서 볼 때 아직도 율법의 마침을 거부하고 율법을 지키서 천국을 가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가 성취한 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그리스도) 육체로 폐하셨으니”(엡2:15)

 

3. 어디에서 폐지시켰는가? ⇨ 십자가

“원수된 것(계명의 율법)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2:16)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심”(골2:14)

율법과 복음의 분기점은 오직 십자가입니다.

 

4. 무엇을 폐지시켰는가? ⇨ 모든 율법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2:15)

돌에 써서 죽게 하는 의문(儀文)(고후3:7) ➡ 돌판에 친히 쓰신 십계명(신4:13)

↳ 의문 ➡ The Law of Moses was written on stone(십계명)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히7:12)

↳ change ↳ change

"먹는 것절기안식일을 위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골2:16)

 

5. 어떻게 폐지시켰는가? ⇨ 예수님 육체의 죽음으로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 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도다“(히10:9,10)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2:15)

 

6. 왜 폐지시켰는가? ⇨ 의(義)를 이루기 위하여

시효가 만료됨“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3:19)

역부족옛 계명이 연약, 무익하며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함으로 폐함(히7:17,18)

제사 완성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히10:9)

율법 제사예수님의 몸을 드리는 제사

의(義) 완성“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심”(롬10:4)

율법 행위로 의를 얻지 못함(롬3:20)

율법의 제사를 드리는 곳이 바로 벽돌 성전입니다. 그런데 양을 잡는 제사가 없는데 어떻게

아직도 벽돌로 지은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그것은 복음에 대한 무지입니다.

 

☆ 율법 폐지의 언약적 근거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그리스도가 오심을 약속함. 그러나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첫 약속을 폐할 수 없고, 오히려 첫 약속의 그리스도가 오시면 둘째 것인 율법은 시효가 끝남. (갈3:15~19)

그리스도 오심(先 약속) (약속 성취) ??? 그리스도 

그림자 ?

창22:8 창26:4 창28:14 후 율법 ? 성령시대

?????????????????????????????????????????????????????????????????????????--------???→

아브라함 이삭 야곱 430년 모세 1500년 율법종료

 

▣ 율법의 복과 저주는 없다

 복음시대의 율법이란 구원의 그림자로서 죄를 깨닫게 해주고, 죄인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모세 시대는 율법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이며 죄 씻음 받는 법이기에 율법 속에 죄인의 생사화복이 걸려 있었습니다.

율법 자체는 하나님이 만드신 선한 도구이기에 결코 그릇됨이 없습니다.

문제는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인간에게 전적으로 저주의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지니고 있는 강력한 요구는 순종과 불순종에 따른 복과 저주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신명기에 기록된 복과 저주는 율법의 특성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구약의 말씀을 무턱대고 지키는 것이 예수님을 잘 믿는 신앙으로 적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신명기에 기록된 복을 받겠다고 기대하지만 만약 신명기의 문자적 효력이 지금도 살아 있다면 우리는 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잘 지킨다는 유대인들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여 결국 저주를 받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이방인인 우리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도 못하면서 막무가내로 율법의 복을 받겠다고 하니 하나님이 보실 때는 이 얼마나 어리석어 보이겠습니까?

 율법의 복과 저주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대로 율법의 저주를 떼어버리고 복만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린다면 그는 하나님까지도 자기 비위를 맞추도록 조작해 버리는 무서운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복이 아니라 끝내 율법에 따른 저주를 받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감히 고개들 수 없는 죄인입니다.

복을 빌기 전에 제발 지옥 불못에서 내 영혼부터 먼저 구원해 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해야 할 존재가 아닙니까!

지옥이 실체가 아니라 관념적인 나머지 자기 구원의 확증도 갖지 못한 채 율법의 복만 달라고 하니 그것이 정말로 지옥이 있다고 믿고 있는 신앙일까요?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원시키고자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율법을 폐지하셨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업신여긴 채 율법을 되살려 그 복을 받겠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섭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극단적인 인본주의가 아닙니까!

지옥 불못에 떨어져야 할 죄인들이 자신의 위치를 알지 못하고 돈 몇 푼 드려 세상 복을 훔치려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려는 강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지 결코 심지도 아니하고 낫 들고 나서는 것은 강도에 해당합니다.

십자가의 원리를 깨달으면 생명을 값없이 받은 엄청난 은혜 때문에 고개 들지 못하고 말없이 주께 헌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하를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영생의 복을 받았는데 어찌 세상 복에 생명을 걸고 매달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영생의 복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세상 복에 매달릴 수밖에 없기에 폐지된 율법을 붙잡게 됩니다.

 

 성경을 펴놓고 분명히 확인하십시오.

복음시대에는 율법의 복과 저주가 없습니다.

그것이 있다면 복음 시대가 아닙니다.

복이라면 구약․신약을 가리지 않고, 율법․복음을 구별하지도 않고, 양심․윤리 마저 따지지 않았기에 얻은 기복교라는 오명을 이제는 벗읍시다.

루 터 의 견 해

루터에게 있어 하나님 말씀의 결정적 구분은 율법과 복음의 구분이다.

루터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율법과 복음을 서로 반대 위치에 두고,

율법을 죽음의 사역으로, 복음을 영의 사역으로 설명한다.(고후3:6,7)

율법은 죽음으로 인도하고 복음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힘에 의해 영생을 선포한다.

율법은 인간을 하나님의 진노 아래 두고, 복음은 은혜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율법 곧 정죄하고, 의롭게 하는 율법은 무효화된 것이다.

(The Theology of Martin Luther 중에서)

 

1. 율법을 주신 목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복과 저주의 근거를 삼고자함에 있기보다는 죄를 멀리하여 하나님을 올바로 경외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갈3:19)

↳ It was given because of sin.(죄 때문에 주셨음)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를 위함이니”(딤전1:9,10)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심이니라”(출20:20)

↳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여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것

 

2. 율법에 따른 복과 저주

법의 힘이란 그 법이 지닌 형벌의 구속력에 있듯 율법도 복과 저주라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수8:34)

계명을 지킨 자는 천대 은혜 받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죄 값은 3,4대까지 내려감(출20:5,6)

다른 신을 섬기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신13:6~11)

부모 공경은 장수의 복, 부모 구타와 저주 자는 반드시 죽이라(출20:12, 출21:17)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이라(출21:12)

눈은 눈, 이는 이, 상함은 상함, 때림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21:23~25)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생명이 끊어지리라(출31:14)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姦夫)와 음부(淫婦)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레20:10)

온전한 십일조는 넘치는 복을 받고, 십일조 헌물 도적질하면 저주받음(말3:8~12)

모든 율법을 지키면 이 땅에 있는 재물, 권세, 지배, 토지, 건강 등의 복을 받음(신28장)

모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이 땅의 모든 저주를 받음(신28장)

 

3. 율법의 종국

죄를 멀리하여 복을 받으라고 주신 율법이지만 끝내 죄를 멀리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에게는 율법의 저주만을 받게되는 비극을 맞게 됩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2:10)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롬3:20)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롬9:31)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0)

 

4. 율법의 저주로부터 자유

이스라엘 백성 중에 율법의 의인이 없고 또한 율법의 복도 없이 다만 율법의 저주만이 존재하여 죽음과 저주의 공포에 질려 신음하는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주시고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육체에 율법의 진노를 퍼부어 율법의 요구를 성취시켰습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롬4:15)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갈4:4,5)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4:15)

*율법의 요구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으므로 오늘 우리에게 율법은 전혀 구속력이 없습니다.

이제는 율법의 문자적인 복과 저주가 없습니다.

아직도 저주받을까봐 움추리고 있다면 십자가를 붙들고 자유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5. 복음시대의 저주

복음시대는 율법의 저주가 없습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저주가 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의 형벌, 곧 지옥 불못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내세의 저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의 복과 저주에 모든 관심을 기울인다면 사후에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할 것입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16:22)

우리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

↳ 바울 ↳ 십자가의 도(갈6:14) ↳ 율법을 따르는 것(갈5:1)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12:4)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막11:21)

 

 혹자는 오늘날 목사에게 복과 저주권이 있는 것처럼 믿고, 목사와 양의 관계가 임금과 신하 같은 종속 관계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복음을 모르는 무지의 소산입니다.

복음 시대는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요, 한 형제입니다. 누가 누구를 저주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혈통적 레위 자손이 아닌 목사에게는 결코 율법의 복과 저주권이 없습니다.

율법시대는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에게 저주권이 있었습니다.

율법시대의 저주권자 왕(삼상14:24), 제사장(민5:21), 선지자(왕하2:24) ⇨ 육체적 형벌의 저주권

율법의 폐지와 함께 율법의 제사장도 함께 폐지되면서 저주권도 당연히 이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복음시대에 저주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뿐입니다. 오직 우리 주님만이 심판의 권세를 쥐고 죄인을 지옥 형벌에 처하십니다.

비록 그리스도인에게 주님의 징계는 있을지언정 율법에 기록된 문자적인 복과 저주는 없습니다.

아직도 율법의 저주 때문에 억지와 형식의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면 주님이 주신 참된 자유를 누리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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