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십일조의 재조명_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십일조 제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십일조 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혹시 이런 것은 아닙니까?
만복의 근원, 물질 축복의 지름길, 사업 성공의 밑거름 등등...
사업 실패의 원인, 가난의 원인, 가정문제의 원인까지도 십일조를 하지 않은 저주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까?
교회 성장의 초석이며 신앙의 척도인 십일조, 한국교회의 불문율인 십일조에 대하여 이제는 올바른 성경 해석으로 재조명되어야 합니다.
물론 성경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관점이 철저히 무시되고, 기복과 전통적인 것에 너무 익숙한 십일조를 건드린다는 것부터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부패, 심지어 기독교의 부패 뒤에도 마귀의 미끼가 돈이었다는 역사적 사실로 볼 때,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라는 위기 의식을 갖고 순수하고도 냉철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1. 십일조의 뜻
십일조(十一條)의 조(條)는 법 시행에 따른 세부적 규정으로 조항, 조례, 조규, 조문처럼 법적인 용어입니다.
따라서 십일조는 소득의 십분의 일을 의무적으로 바쳐야 하는 근거법 입니다.
십일조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법에 해당하는 강제적인 십일조와 감사의 발로인 헌금의 구분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드린 것은 십분의 일의 감사헌금이었습니다.
이것은 복과 저주의 강제적인 성격을 띤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자원하는 헌금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십분의 일을 드리면서 우리처럼 복을 달라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십분일(十分一)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十分一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14:20) ↓
honor and thanks(영광과 감사)
야곱의 십분일(十分一)
“야곱이 서원하여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먹을 식량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주신 것에서 十分一을 드리겠나이다”(창28:20~22)
아브라함의 십분의 일의 감사헌금과 달리 십일조는 율법시대에 제정된 하나님의 법으로서 강제적 회수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따라서 십일조는 자원하는 감사의 헌금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당연히 돌려드리는 세금 같은 납세의 의무로 보아야 합니다.
2. 율법의 십일조
율법 시대의 신앙이 성전 중심이었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전의 존재목적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백성의 죄를 사해 주시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 성전은 죄인들이 구원받는 장소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성전은 항상 거룩하게 관리하고 유지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유일한 성전을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레위 지파를 택하여 일체의 노동을 금지시키고, 오직 성전에서만 제사와 봉사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기업이 없이 성전 관리만을 위해서 일하는 레위인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습니까?
바로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열한 지파에게 성전에 십일조를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십일조는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생계를 위한 절대필요조건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이자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거하실 곳(성전)으로 찾아 나아가서 너희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드리고”(신12:5,6)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민18:24)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히7:5)
“레위인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성전 庫間(창고)에 두어야 제사장들이 성전을 버리지 아니함”(느10:37~39)
▶ 십일조는 율법의 제사 제물에 해당하는 거제입니다.
거제(擧祭) ⇨ 구약의 제사 예물 중에서 단상에서 불사르지 않고 제사장의 몫으로 돌리기 위하여 높이 드는 제물을 말한다. 첫 열매도 거제에 해당한다.(민15:2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고로”(민18:24)
십일조는 거제라는 제사 제물에 해당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제사는 폐지되었는데 십일조라는 거제의 제물만 살아있다면 이것이 얼마나 모순됩니까?.
십일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부여된 세금이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내는 세금은 국가의 재정이 되고 공무원의 보수가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국민이 내야할 세금은 국가의 것이고 세금을 낸 국민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반면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보호가 아니라 오히려 형벌을 받음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십일조 역시 하나님의 것이기에 바친 자는 복을 받고 도적질 한 자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를 시험하여 너희에게 복을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8~10)
3. 율법에 속한 십일조의 폐지
십일조 폐지라는 지엽적인 것보다 십일조의 근거법인 율법의 폐지에 주목해 보십시오.
왜냐하면 십일조는 분명히 율법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히7:5)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2:15)
율법의 폐지에 따라 벽돌 성전도 없고, 동물 속죄제사도 없고, 거제라는 제물도 없으며, 레위인의 제사장도 없다면 레위인을 위한 거제의 제물인 십일조도 당연히 함께 폐지되고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시대는 율법적인 십일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을 덮어 버리고 돈이기 때문에 무조건 십일조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무지의 소치 내지는 금전 만능 주의자 또는 복에 눈 먼 무속의 결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은혜와 감사의 십분의 일 헌금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결코 헌금의 폐지가 아니라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동기와 목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구원받은 인물들을 살펴보면 어느 누구도 율법의 십일조를 한 흔적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들처럼 십일조로 믿음의 대소를 판단하고, 십일조가 직분을 부여받는 절대 조건이라 할만큼 중요한 신앙의 요소였다면 사도 바울도 최소한 한 번쯤은 십일조에 대해 긍정적 언급을 했어야 합니다.
교회론의 잣대가 되는 바울 서신에서 볼 때 십일조 제일주의의 우리 신앙은 복음과 분명히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복과 저주 때문에 벌벌 떨며 액막이 식으로 그냥 넘길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 주님이 주시는 자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두렵다면 진정 그리스도인인지 묻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 받는 것이라면 예수, 부처, 공자를 따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교인들까지도 축복이라면 구약과 신약을 가리지 않고 아전인수격으로 적용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가치관의 변화 없이 종교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거듭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 복을 받기 위한 십일조 내지는 저주가 두려운 액막이 식의 십일조는 옛사람을 십자가에 죽일 때 같이 죽이고 단절시켜야 합니다.
어떤 교회는 십일조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주보에 십일조 명단을 공표하는 너무 유치하고 속보이는 하등 종교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이유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강대상에서 이름을 호명해야 하나님께 상달된다든지 또는 교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부득이 라고 말합니다.
결국 이런 제도가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십일조을 제일 중요시 여기고 하나님은 돈을 좋아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듭니다.
설령 지도자는 사람인지라 돈을 보고 십일조를 강조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을 사람처럼 바라보지는 마십시오.
진정 교회와 지도자에게 신뢰가 있다면 십일조 이름 확인이라는 불신의 찌꺼기는 처음부터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려서 복을 받겠다는 사람들의 내면 세계를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에게 아들의 생명을 값없이 주셨는데, 그 생명을 받은 내가 생명의 가치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돈의 십일조를 드리며 보상을 기대한다면, 그가 과연 생명의 가치를 체험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은 곧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종의 소유는 곧 주인의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십분의 구는 내 것이고 십분의 일만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이제는 복과 저주의 십일조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거듭난 소유의식 속에 감사와 자원의 십분의 일 또는 그이상의 헌금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4. 십일조의 변천
▣ 사도시대 ⇨ 바울을 중심으로 한 사도시대는 십일조를 바친 기록이 없음(행15:1~21)
▣ 교부시대 ⇨ 사도 요한의 2대 제자 이레니우스가 보기 드문 언급을 했는데
"그리스도인은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으므로 십일조의 의무가 없다"라고 선언함.
⇨ 순교자 저스틴도 헌금은 각자 마음에 정한대로 바치라고 하였음.
사도시대와 속사도시대에는 기독교 안에 십일조 제도가 없었음
(한국 교회 어떻게 살릴 것인가, 1995, 대장간, P81)
▣ 카톨릭시대 ⇨ 주후 585년 마콘회의에서 십일조를 교회법으로 제정함. 지금은 폐지됨.
▣ 신성로마시대 ⇨ 샤레망 황제(742~814)때 십일조를 나라의 법으로 제정한 후 프랑스는 1789년에 폐지하고 영국은 1868년에 폐지함. ☞ 라투렛(K. Latourette), 기독교사 참조
▣ 루터시대 ⇨ 그리스도인에게 모세법의 십일조가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이것을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통찰력을 통하여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The Theology of Martin Luther 중에서)
5. 복음시대의 헌금
◑ 인색함이나 억지가 아닌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고후9:7) ⇨ 헌금 동기
◑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함(고후9:7) ⇨ 헌금 자세
◑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함(고후9:5) ⇨ 헌금 방식
◑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마6:20) ⇨ 보상 시기
◑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둠(고후9:6) ⇨ 보상 방식
▶ 시대별 헌금의 동기와 목적
양심시대 → 하나님 → 아브라함 → 감사표현
율법시대 → 하나님 →이스라엘 → 성전유지
은혜시대 → 하나님 → 그리스도인 → 감사표현
6.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명하셨다는 말씀에 대하여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일조에 관하여 유일하게 언급하신 부분인데,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오늘날 율법적 십일조의 존재유무가 결정됩니다.
복음서를 볼 때 꼭 분별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과 복음의 분별이며, 또한 유대인에게 하신 말씀과 그리스도인에게 하신 말씀의 분별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완성과 폐지의 분기점이 십자가의 성취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공생애 3년 동안이 율법이 아직 폐지되지 않은 시기였다면 십일조뿐만 아니라 다른 율법도 함께 존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율법 폐지는 십자가 위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공생애 기간은 아직 율법이 살아있던 시대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도 다른 율법을 충실히 지켰음에서 증명됩니다.
◐ 성전 존속 ⇨ 예수님과 베드로가 성전 세금을 바침(마17:24~27)
◐ 제사 존속 ⇨ 예수님이 제사와 제사장 그리고 제사 예물을 허락하심(마8:1~4)
◐ 십계명 존속 ⇨ 예수님이 영생을 얻으려면 십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심(마19:16,17)
◐ 율법 존속 ⇨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가르침을 지키라고 말씀하심(마23:2,3)
◐ 할례 존속 ⇨ 예수님도 할례를 받으심(눅2:21)
◐ 유월절 존속 ⇨ 예수님도 유월절을 지키심(눅2:41,42)
이상에서 보듯 예수님께서 율법에 준하여 바리새인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말씀하심은 그 시대가 율법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율법의 십일조를 지키라는 대상이 우리가 아닌 유대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율법의 더 중한바” 에서 보듯 이미 십일조도 율법 속에 포함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또한 십일조를 하라고 명령하신 대상을 볼 때도 그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이라는 사실은 그 시대가 바로 율법시대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우리가 무조건 지켜야 한다면 우리 역시 위에 열거한 사항을 다 지키면서 십일조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십일조를 포함한 위의 사항을 전혀 지키지 않았을까요?
바울 시대는 이미 십자가에서 율법이 폐지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가 바울과 같은 복음 시대가 아닙니까?
결론적으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은혜에 대해 감사에 근거한 십분의 일, 또는 그 이상의 헌금이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열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아들의 생명을 값없이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내 모든 물질을 다 드려도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율법적인 십일조를 강조하거나, 복과 저주에 얽매인 십일조를 드리며 하나님을 빚 독촉하듯 복 달라고 협박하거나, 오직 돈을 더 걷기 위한 방법으로 십일조를 강조한다면, 정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좋은 천국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인지, 진정 돈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 돌이켜 봐야 할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우리가 십일조보다 의와 인과 신을 더 중시하고 있는지 돈을 잠시 내려놓고 측량해 봅시다.
7. 말라기의 십일조
우리는 말라기의 말씀을 붙들고 복의 밑천처럼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우리가 정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을까요?
진정으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도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마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 것처럼 하늘의 복을 달라고 한다면 우리가 오히려 강도가 아닐까요?
좀더 겸손한 마음에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없다면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말라기의 십일조를 내가 정한 십일조로 변개 시키지 말고 나의 밖에서 온전한 십일조를 찾는 것이 말라기의 의도임을 찾아야 합니다.
말라기의 온전한 십일조는 예수님을 뜻합니다.
율법이 예수님의 그림자이기에 율법의 십일조 역시 예수님의 그림자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말라기의 주제 : 이스라엘의 종말과 예수님의 오심
말라기의 배경: 예수님이 오시기 400년 전,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전까지 건축하였으나 제사를 무시하여 구원을 스스로 포기하는 풍조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패망하고, 진정한 구세주 예수님이 오신다는 구약의 마지막 예언서.
1장 주제 : 부정한 헌물을 드린 이스라엘
1-5........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을 받은 백성
6-8........부정한 헌물과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께 열납이 안됨(레22:20)
14........온전치 못한 선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사기치는 죄악
12-13........제사를 번폐스럽게 여기고, 온전한 헌물 드리는 것에 코웃음을 침.
9-11........부정한 헌물이 가져온 결과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함(이스라엘 버림)
▷ 성전 문을 닫으리라(성전 폐지)
▷ 제사 헌물을 받지 않으리라(거제인 십일조 폐지)
▷ 이방인이 하나님을 섬기리라(이방인 구원)
2장 주제 : 제사 헌물의 폐지
1-4........너희와 너희 후손이 저주를 받으리라.
5-9........너희가 율법을 버렸으므로 멸시와 천대를 받으리라.
10-12........저주받은 원인 ⇨ 궤사 없음(Judah has not been faith=믿음 없음)
⇨ 제사장이 이방신 딸과 결혼하여 성전을 더럽힘.
13........제사 헌물을 다시는 받지 않으리라.(거제인 십일조 포함)
3장 주제 : 예수님이 온전한 헌물
1........요한이 길을 예비하고 예수님이 성전에 임함(예수=성전)
2-3........예수님은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음
2-3........예수 자신을 의로운 제물(온전한 헌물)로 드림
4........그 때에 비로소 헌물(예수 드림)이 하나님께 기쁨이 됨.
5........그 때부터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시작됨.
(요9:39...예수님은 심판하러 세상에 오셨음)
☞종말에 이스라엘이 돌아와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됨(롬11:25~27)
6.........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이 소멸되지 않는 것
7-12.........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방법은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것.
16-18.........그 때는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see)하리라.
4장 주제 : 최후의 경고
1-3.........지옥과 낙원이 도래하리라
4.........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
5.........크고 두려운 날 곧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요한을 보내리라.
6.........세례 요한의 경고를 듣고 돌이키지 않으면 저주 받음(요한=엘리야, 눅1:17)
☆온전한 십일조의 의미
▶ 말라기의 십일조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 느헤미야 총독이 성전을 완공하고, 속죄제사를 드릴 제사장을 인친 다음 백성에게 십일조를 성전 창고에 채우라고 명령함에서 비롯됩니다.
십일조는 제사장을 성전에 존재케 하는 간접적 수단이므로 결국 십일조는 성전의 제사를 유지시켜 백성의 죄를 사함 받게 만드는 것에 귀결됩니다. (느10:37~39)
버림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방법은 십일조와 헌물입니다.(예수의 상징)
▶ 예수님 자신이 의로운 제물로서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로 드려졌기에 오늘 우리는 십일조라는 물질이 없어도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음.
이미 돌아와서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다시 돌아오기 위한 십일조가 필요 없음.
▶ 종말의 개념에서 이스라엘이 돌아올 때 물질의 십일조가 아니라 온전한 십일조인 예수님을 발견하고 믿게된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를 조명하는 말라기
모세① 말라기② 예수 초림 예수 재림
?????????????????????????????????????????????????????????????????????????????
???? 이스라엘 선택①
???? 부정한 헌물 드림②
???? 하나님께 사기침②
1장????? 제사를 피곤하게 여김②
2장????? 믿음이 없음②
???? 성전을 욕되게 함②
☞ 말라기는 마지막 예언서로서 율법의 종결과 예수님의 오심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말라기는 모세에서부터 요한까지 오직 십자가만을 향하여 달려왔음을 보여 줍니다.
말라기의 십일조는 종말에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수단으로써 예수님의 상징입니다.
말라기의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예수님께서 완성하셨습니다.